동화 같은 연출로 만들어 낸 퇴폐적인 스토리
웨스 앤더슨(Wes Anderson)은 우리에게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2014)로 잘 알려진 영화감독이다. 마니아들은 <로얄 테넨바움>(2001)이나 <문라이즈 킹덤>(2012)을 기억한다. 웨스 앤더슨은 동화 같은 색채와 장난감을 가지고 노는 듯한 연출을 사용한다. 이런 연출과는 달리 스토리는 잔인하고 퇴폐적이다. 총격으로 롤리팝 같은 벽지가 튀어 다니는가 하면, 건물 벽에 매달려 곧 떨어질 것 같은 사람들은 초등학생이 그린 그림 같다. 열두 살 소녀의 가출을 그린 영화에서는 프렌치 키스는 물론이고 누드도 나온다. (영화 <문라이즈 킹덤>) 마치 초등학생이 범행 현장을 재구성 한 것 같다.
감독은 장난감 같은 소품의 사용과 아이 같은 카메라 워크, 그리고 작은 사람과 큰 사람을 대조시키는 등의 기법을 사용하여 자신만의 색깔을 완성한다. 커다란 배의 어설픈 단면이나 인터뷰를 하듯 등장인물의 성격을 설명하는 방법도 앤더슨의 방식이다. 이런 동화같은 연출 기법과는 달리 전달하는 메시지는 지극히 퇴폐적이다. 암살, 모사, 가출, 도둑질이 그의 영화 주제다. 관객들은 사태의 심각성과 장면의 아름다움 사이의 간극을 메꾸기 위해 더욱더 스크린에 집중한다. 인지부조화다. 사람들은 인지 부조화 상태가 오면 이를 불쾌하게 여긴다. 때문에 불쾌함을 해소하기 위해 태도나 행동을 바꾸려 시도한다. 우리는 행동(영화를 보는 상황)을 바꿀 수 없으니 행동에 일치하도록 태도를 바꾼다. 그를 이해하려 드는 것이다. 사람들이 앤더슨의 영화에 높은 집중력을 보이는 이유다.
이런 앤더슨에게 프라다(PRADA)가 광고를 의뢰했다. 100년이 넘은 명품 브랜드가 왜 앤더슨을 선택했는지 모르겠다는 제보를 받았다. 프라다는 왜 앤더슨에게 광고를 의뢰했을까? 이를 이해하려면 먼저 프라다의 역사를 알아야 한다.
프라다의 시작은 여타 명품 브랜드들과 다르지 않았다. 프라다 형제가 1913년 밀라노에 가죽제품을 판매하기 시작한 이후, 형제는 고급스러운 소재나 최고 품질의 물건을 만들기 위해 노력한다. 그러나 1,2차 세계대전과 경제공황을 겪으며 프라다는 파산 위기에 놓인다. 1977년, 마우치아 프라다는 이런 프라다를 이어받는다. 파산 위기에 놓인 프라다에 새 바람을 일으켜야 한다는 사명을 갖고 혁신을 주저하지 않는다. 프라다는 변하기 시작한다.
프라다의 생존 전략은 혁신이었다. 마우치아 프라다는 1977년 국제가죽박람회에 참석한다. 그곳에서 파트리치오 베르텔리를 만나게 된다. 당시 베르텔리는 프라다의 모조품을 만들어 팔고 있었다. 이 사실을 알게 된 마우치아가 화를 내며 따졌지만 베르텔리는 되려 프라다의 사업 확장을 논한다. 자신의 모조품을 보여주며 진품과 퀄리티가 다르지 않음을 보여준다. 우습게 들리겠지만 이 사건을 계기로 두 사람은 서로를 사업 파트너로 인정하게 된다. 현재 베르텔리는 마우치아 프라다의 남편이다.
이후 마우치아는 디자인 보다는 새로운 소재 개발에 집중한다. 다른 디자이너들이 쉽게 선택하지 못하는 소재를 과감히 사용한다. 그러던 중 당시 천막이나 낙하산의 소재로 쓰이던 포코노 원단을 발견한다. 포코노는 가볍고, 튼튼한 방수 천이다. 고급스럽기보다는 실용적인 소재다. 프라다는 이 천을 가지고 가방을 만든다. 프라다의 포코노 가방은 프라다를 일으키는 상품이 된다. 아마 이 가방을 한 번쯤 본 적이 있을 거다.(모조품이든 진품이든, 아니면 그걸 구분하지 못했든 간에)
프라다는 기본에 충실하면서도 전통을 현대에 융화시키는 디자인으로 전문직 여성의 패션을 대변하는 브랜드가 되어 90년대를 주도한다. 관리가 까다로운 고급 제품이 아닌 일상생활에서 빛나는 명품을 만드는 브랜드가 된 것이다.
프라다는 도전하는 회사다. 프라다의 광고는 여타 명품 브랜드들과 다르다. 그들은 유행을 선도하거나 신제품을 과시하기보다는 이미지를 만드는 전략을 취한다. 가방을 팔기 위해서 가방을 주인공으로 만들지 않는다. 그들은 가방을 광고하는 대신 가방과 가장 잘 어울리는 커리어 우먼을 한 명 만든다. 그리고 그녀의 삶을 설명한다. 요즘에야 이런 구성이 클리셰가 됐지만 당시에는 파격적인 시도였다. 프라다는 전문직 여성들이 선망하는 브랜드다. 원래 손 끝에 채이는 것이 더욱 갖고 싶은 법이다. 프라다는 손 끝에 닿을 듯하게 걸리는 가격으로 소비자들을 유혹한다.
다시 앤더슨의 이야기를 꺼낼 차례다. 프라다는 웨스 앤더슨이 가지고 있는 고유의 스타일이 마음에 들었을 것이다. 기존 영화인들이 답습하지 못하는 연출 방식과 인지부조화를 일으키면서까지 관객을 빨아들이는 스토리텔링 방식 말이다.
프라다와 웨스 앤더슨은 모두 어른이다. 어른스러움을 표현하는 방식이 남들과는 조금 다를 뿐이다. 포코노 가방이 프라다의 DNA를 상징하는 결정체라면, 퇴폐적인 스토리를 동화같이 빚는 방식은 웨스 앤더슨의 DNA다.
친구들 중에도 이런 녀석이 꼭 한명쯤 있다. 평소 하는 짓은 초딩(초등학생) 저리 가라 할 만치 유치한데, 때가 되면 기지를 발휘하고 차분하게 문제를 풀어나가는 애들 말이다. 그래서 이런 친구들은 평소에 무시당하지 않는다. 프라다와 웨스 앤더슨이 그렇다. 감히 무시할 수 없다. 한 가지 재미있는 사실은 우리가 그런 친구들을 멸시한다거나, 반대로 존경을 표한다고 해서 그들의 창조성이나 행동에 변화가 생기지는 않는다는 점이다. 이들은 신경조차 쓰지 않는다. 그냥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묵묵히 할 뿐이다.
프라다가 웨스 앤더슨의 도마에 자신의 브랜드를 감히 올릴 수 있는 이유는 이들의 비즈니스 조리법이 서로 닮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