햄릿의 현대적 재해석
책은 단도직입적이다. 빙글빙글 돌리지 않고 하고 싶은 말을 간결하고 명확하게 해낸다. 덕분에 어디에서 햄릿의 대사를 오마쥬 했는지, 우리가 알고 있던 햄릿의 재창조는 어디서 일어났는지 분명하게 알 수 있다. 마치 샘플링을 잘 해낸 대중가요 같다. 읽기 편하다는 뜻이다.
넛셸의 뜻부터 잠깐 이야기하자.
nutshell 미국·영국 [nʌ́tʃèl]
영국식
1. 견과의 껍질
2. 아주 작은 그릇[집]; 작은 [적은, 짧은] 것
3. 요약하다, 간결하게 말하다
소설에서 넛셸은 견과의 껍질 의미로 쓰인다. 그러나 사전에 쓰인 중의적인 의미 모두 <넛셸>에 가져다 붙일 수 있다.
소설의 주인공은 '태아'다. 표면적으로 넛셸은 모태의 아기집이다. 이곳에서 태아는 성인과 비슷한 수준의 지능과 인지 능력으로 빛의 세계를 상상한다. 엄마의 기분과 호르몬을 공유하고, 갈등과 분노를 자의적으로 해석한다. <넛셸>의 태아는 명백한 타자다. 그러나 존재는 엄마와 운명적으로 연결되어 있다. 엄마의 몸이나 탯줄 문제로 이상이 생기면 바로 <햄릿>의 독백이다. 그것은 "사느냐 죽느냐 그것이 문제로다".
<넛셸>은 영국 작가 이언 매큐언(69세)의 열네 번째 장편 소설이다. 앞서 설명했듯 태아가 주인공이지만 그녀(혹은 그)는 모체와 운명 공동체다. 결국 아기는 모친이 가진 운명의 굴레에 휩쓸린다. 그녀가 겪고 있는 갈등은 삼각관계다. 세 남녀의 삼각관계 속에서 태아는 존재론적 성찰을 계속한다. 아이는 이름도 없지만 존재의 의미와 정의를 고민한다. 이름이 없는 것은 작가의 장치다. 이 아이는 우리 모두가 될 수도, 모든 타자일 수도 있다.
태아는 물구나무선 자세로 트루디(엄마) 몸 안에 갇혀 사는 신세지만, 국제정세와 고전문학에 해박하다. 다 엄마가 태교로 들은 팟캐스트 덕분이며, 그의 아버지가 시인이기 때문이다. 덕분에 아이가 표현하는 문장은 풍성하고 교양 넘친다. 그러나 그는 (엄밀히 말하자면) 이 모든 문화적 산물을 '상상밖에 할 수 없는' 존재다. 때문에 겪어보지 못한 세상에 대한 풍성한 묘사만큼이나 그것을 상상하며 다루는 태도는 어설프다. 독자는 그 간극에 헛똑똑이인 '우리 지인 누군가'를 떠올리며 실소한다. 이 책이 가지는 어느 정도의 유머다.
태아는 정부의 자식이고, 삼각관계인 새 남자는 정부를 독살하고 저택을 차지하려는 음모를 꾸민다. 영국 런던의 집 값이 실로 어마어마하니, 금전 문제로 인한 범행은 충분한 알리바이리라. 음모가 성공하면 태아는 버려질 것이다. 실패한다면 아이는 엄마와 함께 감옥에 갈 것이 뻔하다. 태아는 엄마를 향한 사랑과 대상이 가지고 있는 도덕성에 혐오한다. 두 가지 모순된 감정이 소용돌이처럼 나선으로 독자를 휘감는다.
태아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 그것은 발길질과 양분을 공유하며 함께 운명의 소용돌이에 휘말리는 것뿐이다. 행동으로 할 수 있는 것은 없다. 그러나 이것은 우리네 인간사와 유사한 면이 있다. 우리는 살면서 한 번쯤은 '탯줄처럼 엮여 있는' 공동체에 의도치 않게 마구 휘말려버린 경험이 있다. 세 명의 갈등과 휘말린 주인공. 네 사람의 운명이 <햄릿>과 오버랩되며 현대 소설로 완성됐다.
소설 제목 넛셸(Nutshell)은 <햄릿> 2막 2장에서 가져왔다. "아아, 나는 호두 껍데기 속에 갇혀서도 나 자신을 무한한 왕국의 왕으로 여길 수 있네. 악몽만 꾸지 않는다면". 태아는 무한한 왕국의 꿈을 꾸며 악몽 같은 현실을 해친다. 현학적 교훈은 발견하기 쉬워졌고, 문장 전개는 속도감 있어 금방 읽힌다. <햄릿>을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모르는 예비 독자나 그것을 더욱 깊게 음미하고 싶은 문학 애호가들이 좋아할 책이다. 이것은 69세 소설가가 묘사한 태아다. 한국 나이 70세면 '종심'이라 하여, 뜻대로 행하여도 어긋나지 않는 나이를 의미한다. 이언 매큐언은 꼰대적 어투로 삶의 교훈을 서술하는 대신, '문학'과 '아이의 입'이라는 세련된 술회를 택했다.
앞서 잠깐 비유했듯, 이 책은 샘플링을 잘 마친 대중가요다. 그(셰익스피어)의 과격한 팬이 아닌 이상, <넛셸>을 싫어할 이유를 찾긴 어려워 보인다. 책을 모두 읽은 나는 먼 곳을 바라보며 기지개를 켰다. 지난 셰익스피어의 비극을 읽었을때도 그랬다. 먼 곳을 음미하게 되는 책이다.
오랜만이다.
F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