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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고 Feb 11. 2016

맥심 완판과 허니버터칩 품귀 현상

시노자키 아이(篠崎愛)가 표지 모델이다. 좋다, 근데 정말 좋은거 맞나?

본 그라비아 아이돌(비키니 촬영 잡지 모델) 시노자키 아이(篠崎愛, Ai Shinozaki)가 한국 잡지 맥심(MAXIM)의 표지 모델이 됐다. 잡지는 완판(완전판매)을 기록했다. 이는 서유리(2014.10), 정인영(2014.1) 이후로 1년 만이다. 이번 맥심은 기존의 완판 기록보다 다섯 배나 빠른 속도로 판매되고 있다고 한다. 이대로라면 최단기간 완판 기록을 세울 것이 분명하다. 시노자키 아이나 맥심을 몰라도 좋다. 매달 5만 부 정도 나가는 잡지가 두 배로 팔리고 있고, 웃돈이 얹혀 거래되고 있다는 사실만 기억하자.


(오른쪽) 시노자키 아이나 맥심을 몰라도 좋다. 매달 5만 부 정도 나가는 잡지가 두 배로 팔리고 있고, 웃돈을 얹어가며 거래되고 있다. 참고로 맥심은 전체이용가다.


이례적인 판매고를 올리며 완판을 기록한 또 다른 사례는 해태제과에서 만든 허니버터칩이 있다. 허니버터칩은 발매 후 두 달 만에 850만 봉지가 팔린 완판 과자다. 매대에는 늘 매진 딱지가 붙어 있었다. 허니버터칩을 공수하기 위한 방법도 기상천외했다. 편의점 트럭을 따라다니면서 물건이 들어갈 때마다 과자를 구매했다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편의점 주인과 친분을 맺고 몇 봉지를 빼돌렸다는 사람도 있었다. 그러나 폭발적인 수요와 달리, 허니버터칩은 생산량을 쉽게 늘리지 않았다. 2011년 꼬꼬면 사태 때문이었다.

꼬꼬면의 제조사인 한국 요구르트는 급증하는 꼬꼬면의 수요를 충족시키기 위해 500억 원을 들여 새로 공장을 지었던 적이 있다. 공장 설계 당시 꼬꼬면의 점유율은 17.1%였다.(11년 12월) 그러나 그로부터 8개월 뒤인 12년 8월, 꼬꼬면의 시장 점유율은 2.7%로 추락했다. 한국 요구르트는 막대한 손해를 입었다. 이렇듯 꼬꼬면의 사례는 허니버터칩 생산 설비 증설 문제의 반면교사가 됐다. (관련기사: 한겨레 <대박 허니버터칩 증산 안 하는 이유?>) 결과적으로 허니버터칩의 생산량 증설 재고는 이 과자의 품귀 현상을 더욱 부추긴 꼴이 됐다. 허니버터칩이 주저하는 동안 발 빠른 '허니' 아류작들은 뻔뻔하게 틈새를 파고들었다. 허니팩, 허니 폼클렌징, 허니 쥐포, 아이스크림, 그리고 발효버터까지. 제품 종류와 관계없이 너도 나도 '허니' 열풍에 편승했다.



허니팩, 허니 폼클렌징, 허니 쥐포, 아이스크림, 그리고 발효버터까지, 제품 종류와 관계없이 너도 나도 '허니' 열풍에 편승했다.


이런 '완판 현상'은 현재 슬슬 진압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맥심은 지방에 남은 물량을 끌어올리는 방식으로 서울의 폭발적인 수요를 잠재우려 하고 있고, 허니버터칩은 이제 매대에서 주인을 기다리는 상품이 됐다. 그렇지만 맥심의 이번 달 잡지는 여전히 구하기 어려웠다. 포기하고 있었다. 그런데 친한 동생이 수완 좋게 강남 교보문고에서 B 타입을 구해다 줬다. 이 포스트를 통해 감사의 말을 전한다.


시노자키 아이가 표지인 16년 2월호 맥심 B 타입(왼쪽) / A 타입(오른쪽). C 타입은 품절됐다.


시노자키 아이가 나온 맥심은 어떤 느낌일까. 두근거리며 잡지를 폈다. 가감 없이 말하겠다. 잡지는 5년 전, 군대에서 봤던 수준 그대로였다. 말초신경을 자극하기 위한 기사와 상식 이하의 단어가 난무했다. '호를 거듭하며 간행한다'는 의미의 잡지(誌)가 아니라 난잡하고 상스러운 잡(雜)지였다. 한자는 같다. 그러나 맥심의 잡지로서의 존엄은 바닥에 있었다. 나는 수준 이하의 잡지를 유행 따라 구매한 꼴이 됐다.


맥심은 전체 이용가 잡지다. 속옷이 나왔다고 흥분하지 말자.


우리나라의 소비문화는 다소 기형적이다. 유행에 민감하다. 아니, 유행에 절대적으로 의존한다. 노스페이스 패딩 사태나, △ △ 교복(너도나도 사 입는 옷을 교복에 빗대어 이르는 말)으로 통칭하는 비속어는 획일적인 대중들의 소비문화를 조롱한다. 놀이 문화도 유행을 따라 급격히 변했다. 00년대 당구장이 있던 자리에 PC방이 들어섰고, PC방 자리에 플스방이 들어서나 싶더니 이내 카페가 자리를 차지했다. 식(食) 문화도 다르지 않다. 홍대 거리는 시대를 바꿔가며 엽기 떡볶이에서, 찜닭, 파닭, 치즈 등갈비를 거쳐 이제는 연어 무한리필 집으로 간판을 바꿔 달고 있다.



유행하는 과자를 사 왔는데 왜 먹질 못하니.


우리나라 소비 상품의 폭이 좁다는 것은 공급의 폭이 좁다고도 해석할 수 있다. 기업들은 한정적인 수요에 대고 함부로 공급을 다각화시키지 못한다. 다각화된 공급은 경영 언어로 '리스크'를 키우는 행위기 때문이다. 기업은 위험 부담을 꺼린다. 국내 기업의 경우 해외로부터 유입되는 경쟁력 있는 상품은 제도적 장벽을 십분 활용하여 팔로우업 할 시간을 버는 전략을 취했다. 아이폰 수입이 그랬고, 우버가 그랬다. 조금 신랄하게 표현하자면, 한국형 OOO란 말은 빛 좋은 개살구다.

결국 유행에 민감한 소비문화는 신제품 생산과 같은 도전정신을 약화시키고, 공급의 스펙트럼을 제한하는 결과를 가져온다. 제한적인 공급은 소비자들에게 제한적 선택을 강요한다. 소비자들이 향유할 수 있는 선택의 폭은 순환고리를 돌면서 점점 더 좁아진다. 치킨-에그 문제다. 악순환의 고리를 끊을 유일한 방법은 다양한 상품에 대한 꾸준한 관심과 획기적인 상품의 창출이다.


치킨-에그 문제다. 악순환의 고리를 끊을 유일한 방법은 다양한 상품에 대한 꾸준한 관심과 획기적인 상품의 창출이다.


스티브 잡스는 "소비자들은 자신들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모른다"고 말한 바 있다.(포브스 기사: Five Dangerous lessons to learn from Steve Jobs) 물론 본 기사처럼 시대를 읽는 능력 없이 무작정 시도하는 제품 개발은 창업자의 근거 없는 고집에 불과할 것이다. 그러나 우리나라 기업은 철저한 시장조사나 고증을 통한 상품 개발조차 쉽사리 시도하지 않고 있다. 신상품은 해외 제품을 카피하고, 스테디셀러는 원가 절감에 혈안이 되어 있다. 이 과정에서 기업이 잘못한 것은 없다. 소비자들의 행동에 맞춰 리스크를 줄여나간 결과다.


친한 동생이 일본을 다녀오면서 필자에게 사진을 보냈다. 자국 맥주가 산더미처럼 다양하게 포진해 있는 모습이었다.


친한 동생이 일본을 다녀오면서 필자에게 사진을 보냈다. 사진에는 자국 맥주(일본)가 산더미처럼 다양하게 포진해 있었다. 동생과 나는 한국의 맥주 선택의 폭이 좁아서 아쉽다는 이야기를 나누다가 한국의 근대화와 구조주의에 대해 잠시 소고 했다.



획일화된 소비문화가 문제를 일으켰던 적은 없었다. 적어도 아직까지는. 그러니까 현상 자체를 문제 삼기엔 아직 근거가 부족하다. 그저 우려의 목소리를 제기할 뿐이다.

연예인 유행의 문제는 생각보다 간단히 해결되고 있다. 매년 새로운 끼와 재능을 가진 신예들이 데뷔하기 때문이다. 시장으로 치면 다양한 상품이 끊임없이 공급되는 꼴이다. 소외받는 연예인은 있을 수 있어도 예전처럼 10주, 20주가 넘도록 1위를 차지하는 연예인은 없다. 그런데 경제 상황은 조금 다르다. 국내 기업들은 해외 상품으로부터 제도적인 유예 기간을 둬가며 국내 시장 경쟁력을 확보한다. mp3 종류가 수십 가지던 10년 전의 상황과 오늘의 시장은 많이 다르다. 대기업 느낌이 나지 않는 상품에는 계열사란 이름의 새로운 그물망이 쳐져 있다. 소비자들이 눈치채지 못할 뿐이다. 자본은 진공청소기 마냥 몇몇 기업으로 빨려 올라간다.


획일화된 소비문화가 문제를 일으켰던 적은 없었다. 그러니까 현상 자체를 문제 삼기엔 아직 근거가 부족하다.



필자는 유행을 좇아 허니버터칩과 맥심을 구매했다. 냄비근성이라 불러도 좋다. 꼬꼬면 때도 그랬었다. 그런데 너도 나도 꼬꼬면을 찾던 시절은 결국 지나갔다. 이제 꼬꼬면은 기호에 따라 구매하는 상품이 됐다. 허니버터칩도, 시노자키 아이도 언젠가 선호의 문제로 돌아설 것이다. 진짜 팬은 그때도 팬이면 된다. 다만 꼬꼬면과 허니버터칩, 그리고 시노자키 아이가 적자를 버텨주기를 바라야 한다. 팬질(?)은 생존 이후의 문제다.

이번에는 우리가 공급자라고 가정해 보자. 아마 소비자들의 극단적인 패턴에 미칠 노릇일 게다. 로또 등수에 '중간' 등은 없다. 극단적인 소비 체제에서 '그냥저냥' 사는 사람들을 만나는 건 점점 어려운 일이 되고 있다. 마치 승자독식 알고리즘(Winner-Take-All Algorithm, WTA)같다. WTA 알고리즘은 특징 벡터의 최적점으로 수렴(Gradient Descent)하면서 입력 집단의 특징을 표현하지만, 이 특징을 결정하는 것은 오직 한 뉴런 뿐이다. 무슨 소린지 모르겠다고? 유행이 지배하는 독식 사회에서 한 사람이 경제적으로 성공하기 위해서는, "힘들다"는 말을 달고 사는 사람들이 극단적으로 많아야 한다는 뜻이다. 물론 아직까진 이 현상이 심각한 문제로 번진 적은 없다. 그러니까 현상 자체를 문제 삼을 순 없다. 다만 우려의 목소리를 제기할 뿐이다.


"뭔가 잘못되어 가고 있는 것 같지 않느냐"고.




참고자료:
1] 모더니티: http://viumgraphy.tistory.com/97 
2] 구조주의: http://www.kimweonhee.com/board/view.php?id=essay&page=4&sn1=&divpage=1&sn=off&ss=on&sc=on&select_arrange=headnum&desc=asc&no=74

3] SOM(Self Organizing Map): http://www.aistudy.com/neural/self_organizing_map.ht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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