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소고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소고 Feb 04. 2016

레이디 고디바: 관음(觀淫)의 유혹

미안하지만 관음보살 얘기가 아니다. 변태 성욕 얘기다. 관음증 말이다.

안하지만 관음보살 얘기가 아니다. 관음증, 그러니까 제목에 쓰여있는 관음은 변태 성욕인 관음증을 의미한다. 이런 저급한 컨텐츠로 찾아뵙게 되어 미안하다. 독자분들의 너그러운 양해를 구한다. 

며칠 전 초콜릿을 선물 받았다. 고디바(Godiva) 초콜릿이었다. 블로그를 재밌게 보고 있다고 박차를 가하라는 달콤한 채찍질이었다. 어찌나 달착지근하던지 이 기쁨을 사진으로 남겨야겠다고 생각했을 땐, 이미 초콜릿 봉지만 나뒹굴고 있었다. 포장지에는 전라의 고디바 부인(Lady Godiva)이 그려져 있었다.


고디바 초콜릿은 블로그 야만인(Savage)에게 너무나도 과분한 선물이었다.


고디바 부인은 잉글랜드 코벤트리라는 한 지방의 귀족 부인이었다. (남편인) 영주의 무리한 세금 징수로 백성들이 고통받자, 고디바는 그에게 세금을 감면해주길 간청한다. 남편은 그녀를 조롱한다. "나체로 나의 영지를 한 바퀴 돌면 생각해 보겠다"고 했다. 고디바는 고민 끝에 영주의 제의를 받아들이기로 한다. 그녀의 나이 열 여섯살의 일이다. 소식을 들은 마을 사람들은 그녀에게 감사와 존경의 마음을 갖게 됐고. 부인이 마을을 돌 때 그녀를 쳐다보지 않기로 약속한다.


, John Maler Collier (1898)


그런데 톰 브라운(Tom Brown)이라는 양복점 직원은 본능을 이겨내지 못하고 커튼 사이로 그녀를 몰래 훔쳐본다. '피핑 톰'(Peeping Tom, 훔쳐보는 톰)이라는 표현이 관음증을 나타내는 상징이 된 경위다. 전설에 의하면 톰은 그녀를 쳐다보는 순간 장님이 됐다고 한다.

고디바 부인은 결국 세금을 감면하는 데 성공했고, 남편은 아내의 행동에 감화되어 선정을 폈다고 전해진다. 백성들은 그녀를 추앙했다. 오늘날에도 코벤트리 마을의 상징은 말을 탄 여인이다.


코벤트리에 있는 고디바 동상


열 여섯의 여인이 나체로 마을을 돈다는 건 지금의 상식으로도 쉽사리 내릴 수 없는 결정이다. 그녀의 정신을 나타내는 고다이버즘(Godivaism)은 불굴의 의지, 대담한 의지로 뚫고 나가는 정책을 의미한다. 감히 함부로 입에 올릴 수 없는 최고의 찬사다.

, Harry Callahan, Atlanta (1984)


그런데 이런 고디바를 그린 그림은 아이러니가 있다. 그림이 감상자 모두를 '엿보는 사람'으로 만든다는 것이다. 그녀의 정신을 기리기 위해 하베르트 뮤지엄(Harvert Museum)을 방문하거나 검색으로 고다이버즘을 찾는 사람들, 아니면 나와 같이 고디바 초콜릿을 먹게 된 사람들은 모두 피핑 톰이다. (이 문장은 '관음'의 정의 때문에 오해의 소지가 있을 수 있다. 여기서는 피핑(Peeping)을 관음(觀淫, 훔쳐봄으로써 성적 만족을 느낌)이 아니라 훔쳐본다는 의미로 사용했다) 카메라가 없다는 듯 연기하는 포로노그라피는 오늘날 가장 성공한 관음 상품이다. 비록 각각이 음미하는 형태는 다를지라도, 피사체의 사적인 몸짓을 훔쳐본다는 점은 다르지 않다.

신윤복의 풍속도는 조선사람들의 관음욕을 해소해 준 화첩이다. 우리는 그림 감상자임과 동시에 여성들의 사적인 영역을 훔쳐보는 관음자가 된다 / <단오풍정>, 신윤복 (18세기 초)


나는 고등학교 시절, <레이디 고디바>를 처음 접했다. 한 모의고사의 국어 지문 속에서였다. 나는 그녀의 알몸에 대고 문제를 풀었다. 함께 문제를 풀었던 다른 수험생들도 힘없이 고개를 떨군 그녀를 봤을 것이다. 또 이 전설을 아는 모든 사람들, 그리고 고디바 초콜릿을 구매했던 사람들은 한 번쯤은 그녀의 전라를 응시했을 것이다. 다른 형질의 관음이라 할 수 있다. 색정을 의미하는 관음(觀淫)은 아니다. 감상하고, 음미한다는 의미의 관음(觀吟, 관찰하고 음미함)이다. 그렇지만 그 기준은 분명치 않은 것 같다. 관음의 아이러니다.


#Thumbnail Info: <Untitled>, Garry Winogrand, New York, 1969.

매거진의 이전글 원나잇 스탠드가 핵심이 아니야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