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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고 Feb 04. 2016

원나잇 스탠드가 핵심이 아니야

영화 <그날의 분위기>

랜만에 한국 영화를 봤다. 논란이 될 만한 영화다. 흥행 못할 것 같다. 줄거리는 간단하다. 남자는 원나잇 스탠드를 권하고 여자는 거절한다. 아니, 갈등한다. 주제 선정에서 이미 천만 관객은 물 건넜다. 댓글에는 이런 말도 있었다. '문디 경상도 놈을 멋쟁이로 만들어 놓은 쓰레기 영화'. 그렇게 해석 할 수 있다. 그런데 난 아니었다. 나는 당당하게 만점을 줬다.

만점을 준 이유가 원나잇 스탠드에 동조하기 때문은 아니다. 나는 원나잇 스탠드를 못한다. 그런데 대사 한마디 한마디가 주옥같다. 조연들의 연기도 일품이다. 여주인공(문채원 역)은 10년 된 남자친구가 있다. 상처주고 싶지 않아서 "헤어지자"라는 말을 수백번도 아끼는 여성이다. 선택을 하기 보단 선택받고, 싫어도 싫은티 내지 못한다. 천상 '착한' 여자다. 그러나 여자는 오래 전부터 자신에 대한 염증을 느껴왔다. 그렇지만 어디다 하소연 할 수도 없고 그럴 용기도 없다. 생활은 점점 더 권태롭게 흘러가는데, 마음은 풀어 낼 곳이 없다. 내면의 벽이 너무 두터운 탓이다.


영화 <그날의 분위기> 포스터


남주인공(유연석 역)은 순수했던 자신을 외면하고 싶어한다. 그는 과거에 마음에 상처를 입었던 경험이 있다. 진실된 것은 아프다고. 그것을 정면으로 마주 할 용기는 진작에 잃은지 오래다. 그래서 그 아픔을 얕게나마 해소하려는 나쁜 남자다. 그는 갈증을 느낀다며 수원지를 찾는 수고를 하지 않는다. 그저 약간의 습기가 남아 있는 벽을 핥는다. 뒤끝 없는 남자다. 허무함을 느끼곤하지만 그게 편하다. 더 이상 상처입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가 원나잇을 추구하는 논리다.

영화 내내 남주인공은 여주인공에게 원나잇을 강요하지 않는다. 이 영화가 재미있는 부분이다. 그는 항상 그녀에게 선택하게 한다. 길을 내고 유혹(노력이라고 해석하자)까진 하지만 선택을 하라고 강요하진 않는다. 남녀관계에 있어 그는 제안을 할 뿐이다. 그런 그에게 여주인공은 서서히 마음을 연다. 선택하는 법을 배우고, 자신을 찾는 법을 배운다.


평생 그렇게 지우면서 살아요,
그 지우는 인생에서 꺼져 줄 테니까.
- 영화 중에서


사랑에 있어서 그는 용기 없는 남자다. 여성에게 선택지를 주는 모습이 멋져보인다 해석할 수도 있지만 그는 진실을 마주하기 두려워 보인다. 그는 선택받는 삶을 택한다. 선택 받고 나면 이후의 결과는 내 탓이 아니다. 선택한 사람 탓이다. 내 안에 있는 모든 카드를 꺼내놓고 상대더러 선택하게 한다. 젠틀해 보이지만 매너가 아니다. 겁 많은 자의 선택법이다.

여주인공 역시 용기가 없기는 마찬가지다. 그녀는 남자친구가 서운하게 할 때면 함께 해 온 아름다운 추억을 떠올린다. 감상에 젖고 자신을 다잡는다. '그이가 그렇게 나쁜 사람은 아닐거야', '바빠서 나에게 소홀한 거야'하고 자신을 이해시킨다. 항상 참는건 자신이다. 상대가 아니다. 이별이라는 단어를 꺼내기가 두렵다. 상처 줘야 하고, 상처 받기 때문이다. 자신을 수련한다는 빌미로 자기 마음 그릇을 상대의 뾰족한 모양에 맞추어 찌그러뜨린다. 이런 그녀의 사랑법도 겁 많은 자의 선택이다.

겁 많은 두 남녀가 어떻게 자신을 극복하는 지 함께 지켜봤으면 좋겠다. 영화 홍보팀이 '원나잇이 다가 아니야! 그 안의 메시지를 봐줘!'라고 한 적은 없다. 달을 가리킨 적은 없다. 그러나 손가락만 보지 않았으면 좋겠다. 마케팅은 그래. 그럴 수 있다고 치워버리자. 故 정승혜 대표의 원래 기획도 원나잇이 포인트가 아니었던 것 같다. 그러니까 원나잇 말고 무엇을 말하고자 했는지 생각해보자. 이 영화는 당신의 첫 인상보다 괜찮은 영화가 될 수도 있다. 

마지막으로 영화는 O.S.T 가 좋다. 이 곡을 당신과 함께 듣고 싶다.

Rachel Yamagata - Dealbreaker, 레이첼 야마가타


좋은 하루 보내기 바란다. 나도 그래볼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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