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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고 Feb 14. 2016

마마무, <1cm의 자존심>

훔쳐라, 모두 다 집어삼키라. 대신 소울만 잃지 말아라.


자는 힙알못(힙합 알지도 못하는 것의 줄임말)이다. 스마트폰 이전 시절, 그러니까 문자 70자 꽉꽉 채워 보내던 시절에 영어 선생님이 에미넴 앨범을 추천해줘서 들어본 것이 첫 힙합이라고 하면 말 다했다. 해외 힙합은 캔드릭라마를, 국내는 빈지노를 듣다가 최근에야 JM(Just Music) 레코즈. 그중에서도 기리보이 음악만 듣는다. 소위 힙찔이(힙합 지질이)다. 그런데도 키보드를 두드리는 이유는 마마무가 발표한 음악 때문이다. 마마무가 힙합 장르 음악을 발표했다. 제목은 <1cm의 자존심>. 작곡가는 김도훈이다.



마마무 <1cm의 자존심>


필자는 2000년대부터 에미넴을 들었다. 다른 힙합 뮤지션은 몰라도 에미넴은 안다. 노래 시작부는 에미넴의 <슬림 셰이디The Slim Shady> 같다. 마마무의 "여기 나보다 큰 사람 있어?"라고 하는 부분은 에미넴의 "진짜 슬림 셰이디 일어서 주세요Will the real Slim Shady, please stand up" 같다. 메인 플로우는 음높이(pitch)만 바꾼 <언더 더 인플루언스Under the Influence>처럼 들린다. 물론 이 노래도 에미넴 곡이다.



사진: 마마무 공식 페이스북(@RBW.MAMAMOO)


<1cm의 자존심> 곡 설명에는 이렇게 적혀 있다.


‘1cm의 자존심’은 2000년대 초반의 웨스트 코스트 스타일의 힙합 비트와 익살스러운 멜로디 루프, 중독성 강한 후크가 반복되며 자신도 모르는 새 흥얼거리게 만들다가 후반부 템포를 높여 짧게 쪼갠 리듬과 트랩 비트로 반전을 선사한다



2000년대 웨스트 코스트 힙합의 대명사는 닥터 드레Dr. Dre다. '웨스트 코스트 힙합'은 힙합 역사의 오른팔이다. 힙합은 1970년대 뉴욕 브롱스에서 시작됐다고 알려져 있는데, 이 유행은 서부 해안(웨스트 코스트) 지역인 캘리포니아와 로스엔젤레스(L.A, 이하 엘에이) 일대에도 전파된다. 당시 엘에이는 미국 3대 흑인 폭동 중 첫 번째인 와트 폭동Watt Riot의 열기가 채 가시지 않은 상태였다. 70년대 웨스트 코스트 힙합에는 이런 와트 폭동의 색채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 미국 서부의 힙합은 삶의 역경과, 갱단의 폭력, 그리고 흑인들의 염원을 노래한다.


초기 웨스트 코스트 힙합에는 삶의 역경과, 갱단의 폭력, 그리고 흑인들의 염원이 담겨 있다.


이제 웨스트 코스트 힙합의 멜로디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눠 보자. 웨스트 코스트 힙합은 이스트 코스트(뉴욕, 브롱스 일대의 힙합 문화)의 그것에 비해 훨씬 더 리드미컬하다. 필자같이 영어를 못하는 사람도 투팍2Pac, 아이스 티Ice T, 스눕독Snoop Dogg, 그리고 50센트의 음악을 즐길 수 있는 이유는 그들의 시(詩)가 비트보다 살짝 더 올라온 리듬 위에 읊어지기 때문이다. 웨스트 코스트 힙합의 특징이다.


사진: <1cm의 자존심> 뮤직비디오 캡처


<1cm의 자존심>을 부담 없이 들을 수 있는 이유는 이런 웨스트 코스트 힙합의 리듬감 덕분이다. 오르락 내리락하는 멜로디 라인 사이에 <스틸 드레Still D.R.E.>에서 들었던 것 같은 하프 소리가 파고 든다. 가사는 마마무의 자전적 이야기다. 그런데 여기서 한 발만 더 나가면 외모지상주의를 비꼬는 음악이 된다. 사회 비판적 메시지다. 자전적이면서 사회 비판적인 메시지, 이번에는 이스트 코스트 힙합의 특징이 드러난다.



참고로 필자는 솔라 팬이다 / 사진: <1cm의 자존심> 뮤직비디오 캡처


음악은 2분 25초쯤 트랩(Trap)으로 장르를 바꾼다. 노래 절반을 지배하던 붐뱁 비트가 트랩이라는 최신 유행으로 자연스럽게 변주된다. 잘게 쪼개진 하이햇 사이로 "너보다 내가 더 커"라는 메시지가 반복적으로 주입된다.

웨스트 코스트와 이스트 코스트 힙합, 그리고 트랩 비트까지. <1cm 자존심>에는 힙합의 어제와 오늘이 3분 8초로 함축되어 있다.


필자에게 마마무는 (아직까지는) 팔색조 차용 그룹이다. <Mr. 애매모호>에서는 블루스가, <피아노맨>에서는 스윙이 들린다. 그런데 팔색조가 추락하면 박쥐가 된다. 팔색조의 명성을 유지하기 위해선 꾸준하게 자신을 가꿔나가야 한다. 실력을 바탕으로 다양한 장르를 섭렵해야 한다. 그런데 실력은 노래를 잘 하는 것뿐 아니라 장르에 대한 깊은 이해도 포함한다. 장르에 대한 분명한 이해 없이 부르는 노래는 모창(模唱)이다. 뮤지션에게 필요한 건 음악색이다.




마마무가 음악 구성을 잘 하는 것과 노래를 잘 하는 가수임은 이미 여러 TV프로그램에서 검증된 바 있다. 그런데 이번 곡에서 마마무는 뮤지션으로서 어떻게 자신의 색을 표현했는지, 필자는 잘 모르겠다. 영화감독 짐 자머시(James R. Jarmusch)가 했던 유명한 말을 감히 인용한다.



독창적인 것은 없다.
영감을 불어넣거나 상상력에 불을 지르는 것이라면 무엇이든 훔쳐라.
그것이 오래된 영화든 새로운 영화든 음악이든 책이든 그림이든 사진이든 시든 꿈이든 우연한 대화든 건축이든 다리든 거리 표지판이든 나무든 구름이든 물줄기든 빛과 그림자든 집어삼키라.

독창성이란 존재하지 않으며, 진정성이 가장 귀중하다.
- 짐 자머시(James R. Jarmusch)



사진: 마마무 공식 페이스북(@RBW.MAMAMOO)

<1cm의 자존심>은 재미있는 곡이다. 잘 '오마주' 한 음악에 비판적인 메시지를 실었다. 중간에 <언프리티 랩스타 시즌 1>의 한 장면을 패러디 한 것은 음악 전반적으로 깔려 있는 샘플링을 '오마주'라 변용할 수 있는 음악적 알리바이가 될 것이다.

필자는 <1cm의 자존심> 시작부에 들은 것 같다던 <슬림 셰이디>의 메시지를 이야기하고 싶다. 에미넴은 <슬림 셰이디>에서 독자적이고 당당한 자신을 노래한다. 자신을 따라 하고 에미넴의 힙합을 모방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에메넴은 유아독존이라는 메시지를 뱉는다. 필자는 마마무가 이 곡위에 1cm의 키 차이를 얹었다고 생각한다. '1cm 차이는 도찐 개찐'이라는 메시지를 덮어쓴다. 이것이 음악 형용이고 촌극(Skit, 스킷)이라면 즐겁게 듣겠다. 다만 한 가지 묻고 싶은 게 있다. 1cm의 외모엔 지켜야 할 자존심이 있는데, 존엄을 노래한 곡을 차용한 뮤지션의 자존감은 어디에서 느낄 수 있는가를 말이다.




참고자료:
[1] The Secret History of West Coast Hip Hop: http://westcoastpioneers.com/articles/secret-history-of-west-coast-hip-hop.html
[2] 마마무 1cm의 자존심은 어떤 곡을 표절 혹은 레퍼런스 한 걸까: http://blog.naver.com/beattheodds/220624850106
[3] 김도훈(작곡가), 표절 의혹 및 논란 부분: https://ko.wikipedia.org/wiki/%EA%B9%80%EB%8F%84%ED%9B%88_(%EC%9E%91%EA%B3%A1%EA%B0%80)#.EB.A7.88.EB.A7.88.EB.AC.B4
[4] West Coast? East Coast? Hip Hop Explained: http://music.tutsplus.com/articles/west-coast-east-coast-hip-hop-explained--audio-9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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