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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고 Feb 16. 2016

사진 한 장의 힘은 강력하다

유럽 난민 문제

[경고]
본 포스팅에는 아이의 주검 사진과 난민 문제에 대한 내용이 있습니다.
심약자나 임신부의 열람을 엄중히 금지합니다. 이후 내용은 경고 없이 이어집니다.
본 경고를 무시하고 일어나는 모든 책임은 열람자 본인에게 있음을 밝힙니다.














진 한 장의 힘은 강력하다. 사진은 사람들에게 큰 영향력을 발휘할 뿐만 아니라 사회의 관점을 결정할 정도로 중요한 자료가 되기 때문이다. 최근 이슈가 되고 있는 유럽 난민 문제는 단 한 장의 사진 때문에 그 흐름이 전복됐다.




터키 도안통신의 닐류페르 데미르Nilufer Demir가 찍은 아일란 쿠르디Aylan Kurdi의 죽음 (출처 하단 기재)



유럽의 난민 문제는 사실  어제오늘의 문제가 아니었다. 난민은 5년 전부터 꾸준히 있었다. 그러나 유럽 연합은 대체로 난민의 망명을 외면했다. 그 수가 많지 않았을 뿐 아니라 자신들의 경제 논리와 닿아있는 부분이 있었기 때문이다. 프랑스 경제는 종주국이었던 알제리와 튀니지(아랍권 국가)에 연결되어 있었다. 이 두 나라 체제가 흔들릴 경우 프랑스 경제도 덩달아 휘청거릴 가능성이 높았다. 이탈리아와 그리스는 이미 자국 경제 위기와 난민 문제가 겹쳐 골머리를 썩고 있었다. 이 와중에 독일과 영국은 나몰라라 했다. 이민 문제가 자국 경제에 중요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유럽연합은 '아랍의 봄'(아랍권 국가 민주화 운동)에 미온적이었다.



반무바라크 세력이 경찰과 대치하고 있다, 이집트 수에즈 / 사진출처: 가디언지 15년 8월 23일자



유럽 연합과 더불어 미국도 아랍권 국가의 민주화를 적극적으로 지지하지 못했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아랍권 국가들의 현 체제유지(독재)가 석유의 안정적인 공급을 보장했기 때문이다. 간단한 경제논리다.

그런데 사건이 터졌다. 2009년, 아랍권 국가의 심각한 식량난과 위키리크스가 국가의 부패상을 고발한 것이 국민들을 분노케 했다. 성난 군중들은 연쇄적으로 민주화 운동을 일으켰고, 군대와 무력 충돌했다. 이 과정에서 많은 사람들이 삶의 터전을 잃는다. 시리아는 생지옥이 됐고, 900만 명의 난민(참고로 서울시 인구가 천만이다)이 망명길에 오른다.

리비아도 마찬가지다. 리비아의 독재자 무아마르 카다피(Moammar Gaddafi)는 숙청된다. 카다피는 유럽으로 향하는 난민 문제에 중요한 부분을 해결해주고 있었다. 유럽으로 불법적으로 건너오는 난민을 국경 단속을 빌미로 처리하는 일이었다. 카다피는 난민 유입을 막아주는 대신 유럽 연합으로부터 뒷돈을 받았다. (출처: 가디언) 그런데 카다피의 죽음으로 리비아에 권력공백이 생겼다. 리비아는 순식간에 밀입국자와 난민들의 주요 망명 루트가 됐고, 1500만에 가까운 난민들이 유럽으로 뱃머리를 돌린다. 난민 문제가 폭발한다.



지중해를 건너는 난민들 / 사진출처: 라파틸라lapatilla, 15년 8월 4일자


난민 문제는 곧 유럽 전역의 가장 큰 이슈로 부상한다. 오스트리아 정부는 냉동 짐칸에 숨어 밀입국하던 71구의 난민 시신을 수습해야 했고, 외신들은 앞다퉈 시체가 든 냉동 트럭의 사진을 보도하며 오스트리아의 이름을 들먹였다. 국가 이미지 실추다. 영국 정부는 2015년 지중해 수색 및 구조 활동에 배정된 예산을 삭감했다. 난민들이 유럽으로 밀입국을 하는 것을 방지한다는 이유다. 이탈리아는 지중해 수색을 전면 중단했다. 이미 이탈리아와 그리스는 폭발하는 난민 문제로 골치를 앓고 있었다. 가뜩이나 좋지 않던 나라의 재정은 난민 지원 금액으로 줄줄 새고 있었다. 줄어든 예산과 치안의 공백으로 난민 캠프는 무법지대로 변했다. 이런 소식이 연일 세계 뉴스에 보도됐다. 유럽 연합 어느 국가도 난민의 분산 수용에 적극적으로 나서지 못했다.


유럽 연합 어느 국가도 난민 수용에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았다 / 사진: 텔레그래프The Telegraph, 16년 1월 15일자


유럽 연합엔 유럽도 없고 연합도 없다. 이런 상황은 변해야 한다.
- 장 클로드 융커Jean Calude Juncker (EU 집행위원장)


그런데 이 문제를 인도주의적 관점으로만 접근하기엔 무리가 있다.


재산 한 푼 없는 1,000만 정도의 인구가 우리나라 국경 앞에서 줄을 서고 있다고 생각해 보자 / 사진: 스파이크 다음 블로그 13년 4월 22일자


재산 한 푼 없는 1,000만 정도의 인구가 우리나라 국경 앞에서 줄을 서고 있다고 생각해 보자. 교육 수준도, 테러 단체 가입 여부도 알 수 없다. 이들이 들어오면 서울역, 명동을 비롯한 각종 번화가는 거지촌이 될 것이고, 패스트푸드나 김밥집 앞은 저렴하게 끼니를 해결하려는 난민들로 북적거릴 것이다. 아파트 문을 열었더니 복도에 천 쪼가리를 걸친 사람들이 잔뜩 누워 있다. 각종 강력범죄에 대한 우려도 피할 수 없다. 게다가 CNN, BBC, 가디언지 같은 권위적 외신들은 앞다퉈 우리나라에 들어와 눈에 불을 켜고 이들을 지켜보고 있다. 자칫 소홀이 대우했다간 세계적으로 망신을 당할 판이다. 난민 수용을 인도적인 관점에서만 접근할 수 없는 이유다.


시리아 난민들이 터키를 건너 유럽으로 향하려 하고 있다 / 사진출처: 인디팬던트 15년 9월 1일자



유럽 국가들은 더블린 조약(Dublin Regulation, 난민들이 처음에 당도한 나라에만 난민 지위를 신청할 수 있도록 제한한 조약. 난민들의 중복 수혜 방지를 위함)을 빌미로 난민 문제를 서로 떠넘기고 있었다. 유럽 국가들은 자국 국경 경비를 강화했다. 경비를 강화할수록 자국으로 향하는 난민의 수가 줄기 때문이다. 헝가리 정부는 철조망을 새로 쳤고, 오스트리아 정부는 국경 통과 절차를 강화했다.


난민 수용 문제는 세살 배기 아일란 쿠르디Aylan Kurdi의 주검 사진 한 장으로 반전된다


그런데 이런 난민 수용 문제가 세 살 배기 아일란 쿠르디Aylan Kurdi의 주검 사진 한 장으로 반전된다. 터키 도안 통신의 닐뤼페르 데미르Nilufer Demir가 찍은 이 사진은 아일란 쿠르디라는 세 살 배기 남자아이가 유럽으로 이동하는 와중에 사망하여 터키 해안가로 떠밀려온 사진이다. 이 한 장의 사진은 유럽의 여론을 동정의 물결로 완전히 뒤집어 놓았고, 독일의 메르켈 총리가 입장을 선회하여 난민을 수용하게 하는 계기가 됐다. 영국의 캐머런 총리도 향후 5년간 시리아 난민 2만 명을 수용하겠다고 발표하기에 이른다. 사진 한 장의 힘이 이렇게 강력하다.


해안가에 떠밀려 온 아일란 쿠르디



(왼쪽) 세르비아에서 헝가리를 건너는 난민 / 사진출처: 알자지라 15년 8월 26일

(오른쪽) EU 국기를 태우는 장면 / 사진출처: 포브스 12년 8월 12일 자



그러나 인도적인 여론과는 달리, 유럽 연합은 사상 초유의 위기를 맞고 있다. 그리스의 경제 위기는 이탈리아, 포르투갈, 스페인까지 번졌고, 이제는 프랑스의 채권마저 위협하는 상황이다. 영국은 유럽 연합을 탈퇴하는 내용의 국민투표를 준비중이다.(브렉시트Brexit) 경제 부담을 함께 떠안을 수 없다는 뜻이다. 경제적 여건이 좋지 못한 동유럽 국가들은 여전히 난민 문제를 외면하는 중이다. 유럽 연합은 지금 혼돈의 도가니탕이다. 사진 한 장은 여론을 반전시켰지만, 유럽 각국의 내각과 총리, 그리고 대통령은 전례 없는 위기를 맞아 밤 낯으로 회의 중이다. 필자는 회의가 끝난다고 해서 문제가 해결될 뾰족한 수가 나올 것이라고 생각지 않는다. 유럽 연합의 생각도 필자와 비슷한 것 같다. 이제는 북대서양에서도(나토NATO, 북대서양조약기구) 회의가 열리기 시작했다.


유럽 연합은 사진 한 장 이후로 4개월이 넘는 기간 동안을 회의 중이다.


속된 말로 '헬 에우로페'다.




참고자료:
[1] 아일란 쿠르디의 죽음: http://www.independent.co.uk/news/world/europe/aylan-kurdi-syrian-boys-family-took-deadly-voyage-after-canada-refused-refugee-application-10483968.html
[2] 직썰 <유럽이 직면한 난민 문제>: http://www.ziksir.com/ziksir/view/2315
[3] 2010-2011 아랍권 민주화 운동: http://hopia.net/kime/mid_special04.htm
[4] 시리아 내전/참상과 난민 사태: https://namu.wiki/w/%EC%8B%9C%EB%A6%AC%EC%95%84%20%EB%82%B4%EC%A0%84/%EC%B0%B8%EC%83%81%EA%B3%BC%20%EB%82%9C%EB%AF%BC%20%EC%82%AC%ED%83%9C
[5] 유럽 난민 사태: https://namu.wiki/w/%EC%9C%A0%EB%9F%BD%20%EB%82%9C%EB%AF%BC%20%EC%82%AC%ED%83%9C#s-2.2
[6] 리비아 내전: http://www.huffingtonpost.kr/news/ri-bi-a-nae-jeon/
[7] 그리스 경제 위기: https://namu.wiki/w/%EA%B7%B8%EB%A6%AC%EC%8A%A4%20%EA%B2%BD%EC%A0%9C%EC%9C%84%EA%B8%B0#s-3.4
[8] EU keen to strike deal with Muammar Gaddafi on immigration, 가디언: http://www.theguardian.com/world/2010/sep/01/eu-muammar-gaddafi-immigration
[9] 영국 총리 "향후 5년간 시리아 난민 2만 명 수용", 연합뉴스: http://www.yonhapnews.co.kr/bulletin/2015/09/07/0200000000AKR20150907210751085.HTML
[10] 영국 'EU 탈퇴 국민투표 법안' 하원 통과, 한겨레: http://www.hani.co.kr/arti/international/europe/695415.html
[11] 고개 든 브렉시트 도전받는 '하나의 유럽', 조선비즈: http://biz.chosun.com/site/data/html_dir/2015/05/11/2015051101497.html
[12] 독일 난민 신청 100만 명 넘을 듯, 메르켈 "경제 이주 철저 차단", 연합뉴스: http://www.msn.com/ko-kr/news/world/%EB%8F%85%EC%9D%BC-%EB%82%9C%EB%AF%BC-%EC%8B%A0%EC%B2%AD-100%EB%A7%8C%EB%AA%85-%EB%84%98%EC%9D%84-%EB%93%AF%E2%80%A6%EB%A9%94%EB%A5%B4%EC%BC%88-%EA%B2%BD%EC%A0%9C%EC%9D%B4%EC%A3%BC-%EC%B2%A0%EC%A0%80-%EC%B0%A8%EB%8B%A8/ar-AAdNxV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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