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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고 Feb 24. 2016

자리의 경제학

항공권과 호텔 가격은 왜 이렇게 요동치는 건지.


자는 며칠 전, 애슐리를 갔다. 매니저는 자리에 앉으려면 3분 정도를 대기해야 한다고 말했다. 자리는 텅텅 비어있었다. 세팅하는 시간을 고려하더라도 제법 오랜 시간을 기다려야 했다. 가만히 있다 보니 '이것도 프리미엄 마케팅인가?'하는 생각이 들었다.


프리미엄 마케팅은 고객보다 자신의 브랜드 가치를 중시하는 마케팅 방식이다. 명품 브랜드가 흔히 사용하는 방법이다. 루이뷔통 매장은 수용 인원수를 제한해 놓고 줄을 서서 사람들을 들여보낸다. 손님은 매장에 설 공간이 있음에도 차례를 기다려야 한다. 상품을 보고 싶은 마음이 점점 커진다. 명품은 줄 서서 사야 하는 제품이라는 인식이 생긴다. 인식이 욕구로, 욕구가 구매로 이어진다. 마케팅이 성공하는 순간이다. 필자는 애타는 마음으로 애슐리를 기다렸고, 허겁지겁 음식을 먹었다. 애슐리의 승리다.


명품은 줄 서서 사야 하는 제품이라는 인식이 생긴다. 인식이 욕구로, 욕구가 구매로 이어진다

우리는 '손님은 왕'이라는 표제에 익숙하다. 그러나 현대 경제에서 '왕'은 사람이 아니라 재화가 되기도 한다. 주객이 전도된다. 왕권을 탈취하기 위한 재화의 가치(가격)가 시간마다 달라지기도 한다. 호텔과 항공권이 그렇다.


항공권 가격은 오늘 주제인 <자리의 경제학>을 이야기하기 위한 훌륭한 교보재다. 이코노미 좌석은 열 종이 넘는 가격 등급이 있다. 퍼스트/비즈니스/이코노미로 구분되는 캐빈 클래스(cabin class, 객실 등급)는 서비스의 등급일 뿐이다. 다양한 항공권 가격은 여러 사람들의 뒷목을 잡게 하는데, 여행사는 이것을 부킹 클래스(booking class, 예약 등급)라고 부른다. 부킹 클래스의 가격 결정이 항공사의 매출을 결정한다. 항공사는 이 노하우를 경영 비밀에 부친다.


항공권 가격이 결정되는 원리를 파악하려면 적어도 여섯 가지 기준을 이해해야 한다. 대화가 길어지기 전에 결론만 먼저 이야기하면, 수요의 불확실성이 클수록, 아이들 타임(idle time, 한가한 시간)이 길수록 (항공권) 가격 편차가 커진다.

가령 [한국-미국] 항공편처럼 고정 수요가 분명하고 데이터베이스 축적이 오래된 항공편은 할인을 기대하기 어렵다. 항공사가 수요에 맞춰 항공편을 배정하고, 이윤을 극대화하기 때문이다. 티켓 가격은 똑같이 비싸진다. 그러니까 긍정적으로 생각하자. '옆 사람과 항공권 가격을 비교하다가 얼굴을 붉힐 일이 줄었다'고.


[한국-미국] 항공편처럼 고정 수요가 분명하고 데이터베이스 축적이 오래된 항공편은 할인을 기대하기 힘들다


항공사는 1년 치 항공 스케줄을 조정하고, 이 스케줄을 3월에 배포하는 방식으로 운영된다. 모든 항공편의 숫자가 3월에 결정된다. 항공사는 이 공급을 가지고 비행기를 탈 권리, 즉 항공권을 판다. 항공권은 정가에 구매한다고 했을 때, 약 1년 정도의 효험을 가진다. 1년 사이에 예약 변경이나 취소가 자유롭다. 이 권리가 만기에 이를수록 할인율이 높아진다.


항공권은 '좌석'이기 이전에 '권리'에 가깝다. 제약이 많이 붙은 항공권일수록 (당연히) 가격은 내려간다. 유효기간이 몇 개월 남지 않았거나, 항공편이 고정되어 있거나, 환불 규정이 까다로울수록 티켓 가격은 저렴해진다.



요일별 편차도 있다. 항공권은 화요일에 제일 저렴하고 금요일에 가장 비싸다. 화요일 가격은 월요일에 항공사 임원들이 할인율을 재조정하기 때문이고, 금요일 가격은 출장과 관광 수요가 폭등하기 때문이다.


항공권 가격은 '얼리버드'와 '땡처리'가 가장 저렴하다. 이 둘의 발행 시점은 항공권 판매의 처음과 끝이다. 일반적으로 항공사들은 항공권 수요가 발생하는 구간을 비행 90일부터 120일 전으로 예측한다. 장거리 항공은 출국 약 120일 전부터, 단거리는 약 90일 전부터 티켓 수요가 발생한다고 판단한다. 이 시점에 얼리버드 티켓이 풀린다. 이코노미 클래스를 기준으로 10~20% 정도 규모다. 항공사들은 얼리버드의 판매 추이를 보고 부킹 클래스와 가격을 점진적으로 인상한다. 이렇게 인상되는 항공권 가격은 비행 일주일 전에 최고점을 찍는다.


항공사들은 얼리버드의 판매 추이를 보고 부킹 클래스와 가격을 점진적으로 인상한다.  인상되는 항공권 가격은 비행 일주일 전에 최고점을 찍는다


땡처리 항공권은 보통 비행 하루나 이틀 전에 풀린다. 가장 비싼 비행기 표가 팔린 직후에 가장 저렴한 표가 나오는 것이다. 불확실한 수요를 빨리 처리하기 위해서다. 비행 후에 생기는 공석은 항공사의 비용이 된다. 가장 비싼 비행기 표를 낸 사람이 땡처리 항공을 탄 사람의 비용을 내줬다고 생각하면 쉽다. 비싼 표를 구매한 고객은 빈자리의 금액도 부담하는 셈이다.


비행 형태에 따라 가격 편차가 생기기도 한다. 일반적으로 출장 목적의 항공권이 가장 비싸고, G 클래스라 부르는 패키지여행 좌석이 가장 저렴하다. 왕복 비행인지, 편도 운행인지, 환승을 하는지, 마일리지를 사용하는지에 따라서도 가격 등급이 달라진다. 이쯤 되면 소비자는 사기를 당하는 것 같은 기분을 감추기 어렵다. 그런데 어쩔 수 없다. 항공권은 편재적(재화가 특수 지역에 분포하고 분쟁이 발생하는 자원)이고, 날짜와 시간에 영향을 많이 받는 자원이기 때문이다.



이제 항공사 논의를 벗어나서 시간에 편중된 재화를 생각해 보자. 호텔이 가장 먼저 떠오른다. 호텔보다 더 쉽게 가자. 모텔을 예로 들자. 모텔은 (일반적으로) 11시까지 대실 손님을 받는다. 모텔의 숙박 비용은 내 고정이다가 새벽 두 시가 넘어가면 할인에 들어간다. 새벽 두 시 이후에 발생하는 수요가 거의 없거니와 공실은 곧 모텔의 손해기 때문이다. 모텔이 방 떨이를 하는 이유다. 예약 취소는 당일에 가까울수록 환불 비율이 낮다. 모텔마다 다르겠지만 당일 환불은 전체 금액의 약 20% 정도다. 객실의 불확실성을 키운 대가다. 필자가 모텔 운영을 어떻게 이리도 자세히 알고 있는가는 묻지 않기로 하자. 중요한 건 시간에 따라 수시로 변하는 방의 가격이다.


호텔도 마찬가지다. 수요 예측이 비교적 정확한 특급 호텔 몇몇을 제외하면 비즈니스호텔의 가격은 천차만별이다. 어떤 호텔은 매 시간마다 가격을 바꾸는 알고리즘을 갖추고 있다. 모두 불확실성을 두고 이윤을 극대화하기 위한 가격 차별이다.



이와는 반대로 확실한 수요에 대한 소비 가격은 안정적이다. 소비자든 판매자든 불확실성에 대한 위험을 부담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반면 불확실성이 커지는 요인이 발생할 경우, 누군가는 손해를 보기 시작한다. 피해자는 모텔 주인부터, 비행기 옆 좌석 아저씨, 횟집 주인, 휴가철 펜션 예약을 취소하는 학생들이 될 수 있다. 물론 나쁜 점만 있는 건 아니다. 회나 생선, 빵, 우유를 저렴하게 사 먹을 수 있거나, 여행을 저렴하게 하는 행운의 주인공이 될 수도 있다. 전자는 시간 때문이고, 후자는 시간 덕분이다.


시간을 잘 이용하면 회나 생선, 빵, 우유를 저렴하게 사 먹을 수 있거나, 여행을 저렴하게 하는 행운의 주인공이 될 수도 있다


불확실성과 아이들 타임(idle time)은 기업 입장에서 기회가 되기도 한다. 영업실적이 저조한 요일이나, 식당이 한가한 3시와 5시 사이, 비나 눈이 내릴 때, 프로모션을 통해 인지도를 끌어올릴 수 있다. '여성 클럽 입장 무료!' 같은 행사는 수익의 불확실성을 감소시키기 위한 클럽 오야붕(두목)의 노력이다. 단체 고객에 할인을 적용하는 것과 '오피스텔 거주민 와인 무료'와 같은 혜택도 모두 고정 수요 확보를 통해 매출을 안정시키려는 노력이다.


조금 더 과학적으로 접근하고 싶다면, 수익 마케팅(yield marketing, 산출 관리 모형) 모형을 공부하자. 지면의 특성상 자세히 설명할 순 없지만, 산출 관리 모형은 잠재 수익과 실제 수익을 비교하여 이상적인 소비자 가격을 환산할 수 있는 모델이다.

불확실성이나 정보이론(information theory)을 공부하는 것도 도움이 될 것이다. 그런데 원활한 자영업을 위해서 위 모델을 애써 공부할 필요는 없다. 장사가 안 되는 건 일차적으로 불확실성보다 재화의 문제가 더 크다. 쉽게 말해 당신의 식당에 손님이 없는 이유는 엔트로피 문제가 아니라 밥맛이 별로일 가능성이 더 높다. 가격 차별은 고정 수요 확보 이후의 문제다. 꾸준히 안되는 식당은 가격 차별 이전에 밥맛부터 고쳐야 한다.



F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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