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좋아해줘>(2016)
영화 <좋아해줘>는 소재가 좋다. 배우도 좋다. <스물>(2015)과 <동주>(2016)의 강하늘과 모델 이솜의 발견이 신선하다. 다른 배우의 연기도 흠잡을 곳 없다. 그럴 수밖에 없기도 하다. 이미연과 김주혁, 유아인, 그리고 최지우까지. 배우력(俳優曆, 배우를 한 기간)이 연기력과 정비례는 아니라곤 하지만 출연진이 이미 베테랑이다. 경력으로 대충 잡아도 연기에서 논란이 생길 구멍은 거의 없다. 그런데 이 영화는 두 가지 문제를 안고 있다. 하나는 필자가 아무리 이 영화가 좋다고 해 봐야 큰 흥행을 못할 것 같다는 것과 다른 하나는 이 영화가 좋다가, 싫다가 한다는 것이다.
먼저 좋은 이야기를 해 보자. 영화는 현대적 사랑을 그린다. 싱글녀, 재혼남, 장애인, 미혼모 그리고 파혼을 이야기한다. 모두 '문제를 삼으려면 문제가 되는' 것들이다. 주제 선택이 과감하다. 또한 영화는 여성의 수동적 사랑이 아닌, 주체적인 사랑을 묘사한다. 기존 로맨스 영화가 답습하던 것과는 다른 차원의 이야기를 꺼낸다.
박현진 감독은 제작발표회에서 "보통 로맨스의 구성이 남자가 여자의 사랑을 쟁취하는 것으로 그려지는데, 여자 캐릭터가 부각되는 이야기를 쓰고 싶었다."고 밝힌다. 이것은 극 중 유아인의 대사로도 표현된다.
야, 이 촌스러운 사람(남자)들아.
여자가 할 말 다 하면
드세고 기가 센 거고,
남자가 할 말 다 하면
강단 있는 거고 시원시원한 거냐?
, 유아인(노진우 역) 대사 中
유아인은 제작발표회에서 박현진 감독과 함께 영화에 페미니즘 담론을 담았다고 밝혔다. 유아인의 이런 모습은 드라마 <밀회>(2014)를 연상시킨다. 드라마에서 유아인(선재 역)은 김희애(혜원 역)에게 여성의 주체적 사랑을 요구 한 바 있다.
걱정 같은 거 하지 마시고,
너무 어른인 척도 마시고
그냥 저 사랑하시면 돼요.
밑질 거 없잖아요.
분명 제가 더 사랑하는데.
, 유아인(선재 역)
각본은 유영아 작가가 썼다. 작가의 대표작은 <7번 방의 선물>이다. 유영아 작가는 생활고를 겪던 중 드라마 <태왕사신기>의 보조작가로 바닥을 치고 올라왔다. 그녀는 과거에 여중생 딸을 키우는 싱글맘이기도 했다. 작가는 작년 6월, 초혼이면서 그녀를 사랑하는 멋진 연하남과 화촉을 밝혔다.
이쯤 되면 <좋아해줘>는 유영아 작가의 자전적 모습을 담고 있는 것도 같다. 영화가 유머 감각을 잃지 않으면서 현실적인 전개가 가능한 이유를 이쪽에서 찾을 수도 있을지 모른다. 물론 (좋은 영화의) 제 일 근거는 작가의 출중한 역량이다.
영화는 이솜(장나연 역)을 열쇠 삼아 세 커플을 돌아가며 방문한다. 흐름은 어색하지 않고 자연스럽다. 감독이 여섯 사람의 이야기에 얼마나 꼼꼼히 신경을 썼는지가 느껴진다.
이제 아쉬운 이야기를 해 보자. <좋아해줘>는 결말이 아쉽다. 유아인(노진우 역)이 이미연(조경아 역)을 찾기 위해서 강수를 두는 부분이 어색했다. 스포일러가 될 수 있기에 자세히 언급할 순 없지만, 주인공의 선택이 너무 극단적이었다. 물론 탤런트나 작가들의 일반적인 성격상 아예 말도 안 되는 이야기를 한 것은 아니다. 그러나 문제는 대중이다. 대다수 관객들은 배우 노진우의 극단적 선택을 받아들이기 어렵다. 주인공의 행동과 이유 사이에 연결고리가 약하다. "두 시간 동안 세 커플의 이야기를 옴니버스식으로 전개해야 하기 때문"이라고 말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것은 결과론적인 변명이다. 결말은 개연성이 떨어진다. 단 한 장면이 유머와 진지 사이에서 몰입하던 관객들의 집중력을 흩뜨린다.
카메라 구도는 영화의 것이라기보다는 드라마에 더 가깝다. 식탁에 앉아 있는 모습을 로우 앵글로 촬영하는 부분이나, 배우가 사다리차에 이삿짐과 함께 올라가는 모습은 드라마에서 주로 연출하는 장면이다. 김주혁(정성찬 역)이 운영하는 식당은 일본 드라마 <심야식당>(2009)과 배치와 구도가 유사하다. 마치 <심야식당>의 주간 버전 같다. 영화는 한편의 드라마를 보는 것 같았다. 그러나 이것은 흠이라기보다 취향의 영역일 것이다.
영화는 제목부터 '좋아해'달라고 노골적으로 말한다. 어떤 소셜미디어 기업이 떠오른다. 참고로 <좋아해줘>의 원제는 <해피 페이스북>이다. 법적 문제로 제목을 바꿀 수밖에 없었다고 하는데, 제목을 순화했지만 숨죽인 표현마저 상업적이다. 노골적인 표제는 영화를 보기 전부터 거부감을 준다. 한국 사람들이 원래 그렇다. 자본주의 사회에 살고 있고, 공짜로 뭐 받아 가는 거 좋아하면서, 재화에 '상업' 냄새가 나면 인상부터 찌푸리고 본다. 이 문제는 한국 사람들의 재고가 필요한 부분이기도 하지만 (구조주의적 관점에서) 이들보다 먼저 반성해야 하는 사람은 이런 한국인의 속성을 알면서도 <좋아해줘>의 홍보 방향을 조정하지 못한 관계자들이다.
정직하게 말하자. 영화가 주는 메시지는 매우 좋다. 영화는 '좋아요' 뒤로 연정의 마음을 숨기는 소극적인 현대인을 그린다. 여섯 배우의 '좋아요'를 통해 관객들이 느끼는 것은 여섯 각도의 자신이다. 우리는 프로필 사진으로, 상태 메시지로 상대를 감시한다. "요즘 어떻게 지내?"라고 적극적으로 다가가지 못한다. 영화는 우리가 소셜미디어 뒤에서 감정을 가리고 타인을 관찰하지 않길 바란다. 이렇게 무거운 메시지를 가지면서도 유머를 잃지 않는다.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런데 제목과 광고만 보면 똑 '페이스북' 홍보 영화 같다. 이건 문제다.
영화에 "좋아해줘"라니. 이해가 가지 않는 것은 아니다. 관객들이 (한국 영화를) 이래도 안 보고, 저래도 안 보니까. 제목과 광고에서 강수를 둔다. 정기훈 감독의 <열정 같은 소리하고 있네>(2015)가 그랬고, <쓰리썸머 나잇>(2015), <그날의 분위기>(2015)가 그랬다. 광고는 점점 자극적인 방향으로 흐른다. 광고가 시청자들의 뇌리에서 쉬이 잊히지 않는 효과는 있겠지만 거부감은 비례해서 커진다. 광고만 보고 "요즘 한국 영화 왜 이래?"란 소리가 절로 나온다. 내용도 안 보고 비판부터 하게 된다.
<그날의 분위기>때도 적은 바, 홍보팀은 달을 가리키지 않는다. 광고는 자극적이고 선정적이다. 그런데 너무 손가락만 보는 것도 좋지 않다. 버스 배차 시간표처럼 늘어져 있던 <검사외전>의 상영 시간 문제는 다양성의 문제 이전에 한국 영화판의 생존을 위한 몸부림에 가깝다. <좋아해줘>의 홍보나 마케팅도 몸부림에 가까운 행동이었으리라. 그러나 그 정도가 지나치진 않았는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
제작보고서의 하트 남발이나 배우들 간 스킨십으로 기삿거리를 만드는 건 팬심과 동원 관객 수를 동일 선상에서 놓고 접근하는 방식으로 밖에 해석되지 않는다. 제작보고서는 유아인의 티켓파워에 초점이 맞춰진 발표회처럼 느껴졌다. 이미연, 김주혁, 최지우의 노련함이나 배우로서 본 작품에 대한 진지함을 들을 수 있는 자리를 원했다면 너무 철없는 소리를 한 걸까. 마케팅이, 홍보가, 감독, 작가와의 조율이 아쉬운 영화다. 한 번 더 접었으면 했다.
영화는 페이스북 홍보 영화가 아니다. 그런데 광고는 페이스북 홍보 영화처럼 나갔다. 근데 이렇게 밖에 광고를 할 수 없었던 진짜 이유는 (영화를) 이래도 안 보고, 저래도 안 보는 한국 관객의 눈높이에 맞췄기 때문일 것이다.
F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