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 어차피 이거 읽은 10분 뒤에도 조급할 거다
2008년, 쇼핑몰 창업 열풍이 불었다. <키작남>이니 <조군샵>이니 하는 쇼핑몰들은 이때부터 유명세를 탔다. 케이블 채널엔 새파란 20대가 나와서 성공을 과시했다. 벤틀리를 탔다. 어떤 쇼핑몰 사장은 화성인 행세를 하며 노이즈 마케팅을 했다. 실행력 있고, 메스미디어에 자극 잘 받는 젊은이 몇몇은 눈에 벤츠 마크를 키고 부랴부랴 동대문에 물건을 떼기 위해 달렸다. 필자와 친했던 동기 하나도 도메인을 하나 사더니 쇼핑몰 사업에 뛰어들었다. '김 사장'은 자본금 5,000만 원으로 쇼핑몰을 열었고, 다달이 물건을 떼러 이곳저곳 손을 벌렸다. 허나 김 사장이 영업을 시작했을 때, 쇼핑몰은 이미 포화상태였다. 김 사장은 창업 1년 만에 '사장'에서 다시 '동기'가 됐다. 그는 2010년 힙합 쇼핑몰로 다시 한 번 재기를 시도했다. 이번에는 영영 소식이 끊겼다.
한참 엠넷의 <쇼 미더 머니show me the money>를 즐겨봤었다. 힙합 정신으로 무장한 두 젊은이가 TV에 삿대질을 하고, 쌍욕을 날리면서 리듬을 탔다. 마냥 멋져 보였다. 저들의 인생에 어떤 모진 풍파가 있었기에 잘 곳이 없고, 배를 곪았는지 안타까웠다. 롤모델 삼고 싶었다. 내가 몇 년을 더 살면 저들의 한(恨) 서린 문장을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을까. 나이를 검색했다. 왼쪽 가수(MC)가 열일곱 살이었다. 옆에 있는 얼라는 스무 살이었다. 티비를 껐다.
요새 매스컴에는 20대 스포츠, 연예인, 주식, 그리고 스타트업 스타 이야기가 심심찮게 등장한다. 초등학교 선생 친구에게 메신저로 자문을 구했다. 그리고 요즘 초딩들의 '대세 꿈'이 무엇인가 물었다. 2년 전만 하더라도 여자는 김연아, 남자는 박태환이었다. 최근에는 여자는 연예인, 남자는 연예인 아니면 프로게이머란다. 모두 20대 초반에 성공이 판가름 나는 직업이다.
화재의 아이돌 육성 프로그램 <프로듀스 101>의 연습생 평균 나이는 17.8세다. 3년 만에 정산받은 걸그룹 AOA의 평균 나이는 23세다. 게임 <리그 오브 레전드> 프로게이머 이상혁(faker)의 나이는 올해 19살이다. 자타공인 현재 최고 주가를 달리는 미디어 스타들의 나이는 보통 25세 이하다.
비단 매스미디어뿐만이 아니다. 스타트업 시장은 20대가 CEO 명함을 팔 수 있는 가장 쉬운 자리다. 페이스북을 창업한 마크 주커버그는 창업한 회사를 위해 하버드를 박차고 나온다. 몇 년 지나지 않아 마크 주커버그는 타임지 올해의 인물로 선정된다. 그의 나이 25세의 일이다. (2010) 대학가 젊은이들은 '혹시 나도?'하는 마음에 너도 나도 사업자 등록증을 인쇄한다. 사라진 줄만 알았던 필자 동기, '김 사장'이 다시 등장한 것도 이쯤이다. 명함을 두 개 정도 바꿔 돌리던 그는 올해 초 다시 한 번 소식이 끊겼다.
물론 과거에 비해서 젊은 나이에 성공하는 사람들이 많아진 건 사실이다. 필자의 지인은 미디어 스타트업 대푠데 회사가 성장하면서 주식 몇 번 교환하더니 인스타그램에 포르쉐 키 사진을 올렸다. 인터넷 방송국 자키(BJ)들은 20대에 독일 3사 프리미엄 세단을 탄다. 이 사람들을 매니지먼트하는 MCN(Multi Channel Network) 사장들도 투자받은 돈으로 목에 힘 좀 준다. 과연 10대들은 '연예인 병', 20대는 '창업 병'에 걸릴만하다.
10대 더미(dummy) 연예인 지망생들이 발견하지 못하는 게 '스타성'이라면, 20대 더미 대표이사들이 자각하지 못하는 것은 '문제의식'과 그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본인의 '고유 기술'이다. 설령 앞서 말한 기술들을 가지고 있다 한들 기획사나 투자사 눈에 띄지 못하면 소용이 없다. 이건 운이다. 그리고 기획사나 창투사(창업투자회사)들은 귀신같이 더미를 골라낸다. 실패한 사장들은 재기에 도전하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이력서를 돌린다.
요즘 세대는 너무 일찍 대박의 꿈을 꾼다. 빠른 시도의 장점은 빠른 성공이다. 그러나 반대로 '이른 패배자'를 배출한다. 당연한 말이겠지만 성공하는 사람들보다 패배자들의 수가 훨씬 많다. 다수의 젊은이들은 이른 나이에 실패를 경험한다. 오늘의 패배는 내일의 밑거름이 된다고들 한다. 그러나 성공 이전의 패배는 트라우마적 성격이 짙다. 이것이 심해지면 히스테리가 된다. 어린 나이에 빛을 본 사람들이 멘탈 관리가 부족한 것은 이 때문이다. 성공하지 않은 이들도 다를 바 없다.
(선천적인 재능도 기술이라고 했을 때) 성공의 가능성을 조금이라도 높이기 위해서는 자기 기술을 키워야 한다. 그리고 이 기술을 타인에게 인정받기 위해서는 우리의 생각보다 더욱 오랜 시간이 필요할지도 모른다.
배우의 세계에서 10년 무명은 예삿일이다. 배우 배성우는 36살에 첫 영화에 나왔고, 그가 유명해진 것은 44살이다. 영화 <신세계>의 박성웅은 결혼할 때 통장에 딱 300 만원이 있었다. 그는 10년의 무명 생활을 견뎠다. 신세계는 그의 나이 마흔둘의 영화였다. 배우 오달수는 돈이 없어서 대학로에서 자신의 집까지 걸어 다니길 5년을 했다고 고백한 바 있다. 영화 <동주>의 이준익 감독은 입봉(감독 데뷔) 이후 두 번째 작품이 나오기까지 10년이 걸렸다. 일반적으로 영화감독의 첫 입봉은 35세 전후다. 그 전까지는 업계 관계자들을 제외하고는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다. <배달의 민족> 김봉진 대표의 올해 나이는 마흔 하나다. 이 사람들은 모두 "이제 시작"이라고 입을 모은다.
이제 막 이름을 알리는 사람들의 나이가 모두 마흔을 넘는다. 웃기는 얘기로 삼성 사장단 평균 나이가 57세다. 세상엔 늦은 성공을 한 사람들의 수가 훨씬 많다. 40대 이후의 성공도 결코 호락호락하지 않다. 그러나 20~30대의 성공보다 그 숫자가 훨씬 더 많을 뿐 아니라 단단하다. 성공의 가능성을 높이는 두 번째 비결은 지금보다 장기적인 안목으로 접근하는 것이다.
이른 나이에 실패했다고 세상 다 산 거 아니고, 늦은 나이라고 해서 날개가 꺾이는 건 아니다. 그러나 외모도 실력이라고 했을 때, 실력 없이 성공한 사람은 없다. 모든 실력 있는 사람이 성공하는 건 아니지만 성공한 사람이 실력 없는 경우는 없다.
성공은 '될 놈 될'이다. 실력에 천운까지 따라줘야 한다. 그런데 천운이 따라주기 전까진 자기가 '될 놈'이라고 생각하고 꾸준히 밀고 나가는 고집이 필요하다. 뻔뻔해야 한다. 자기 확신 없는 사람이 성공을 유지한다는 건 어불성설이다. 그러니 지금 당장 엄마한테 전화를 걸자. "엄마, 나 영화배우 할 거야."라고 말하자. 만나는 모든 사람들에게 배우의 꿈을 펼치자. 그러면 가족, 친지, 친구들, 애인 등, 당신을 진정으로 사랑한다고 생각했던 사람들이 대부분 당신을 뜯어말릴 것이다. 지금 영화에 나오는 배우들 중 십 중 육칠은 그 짓을 10년 동안 해낸 사람들이다. 만약 당신이 하는 일에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하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면 둘 중 하나일지도 모른다. 천재이거나, 그 일에 열정이 없거나. 이건 운명 이전의 문제다.
마지막으로 당부의 말 하나만 남기고 싶다. 이 글은 아무것도 안 하는 청춘에게 위로를 전하는 글이 아니다. 스물세 살, 군 생활을 하면서 자신을 돌아본 적이 있었다. 나는 전적으로 소비자였다. 나는 조금이라도 세상에 기여하고 있는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단단히 착각하고 있었다. 그 날 이후부터 지금까지 꾸준히 뭐라도 만드는 인생을 살았다. 자리가 없으면 몸을 줄이고 나를 낑궜다. 다른 사람들이 나를 불편해하면 멋쩍게 고개를 숙였다. 성공하고 싶었으니까. 그런데 그렇게 열심히 살아도 하루 네 시간 이상은 집중하기 어려웠다. 가끔은 타고난 친구들을 질투했다. 이젠 질투하지 않는다. 어떤 바닥이든 최고에 자리엔 날라리가 없다는 사실을 깨달은 이후로.
불가에선 어린 나이에 맞이하는 성공은 인생의 3대 재앙 중 하나라고 했다. 성공의 추구는 당신이 사랑하는 사람 여럿을 정말로 힘들게 만들 것이다. 그럼에도 당신이 성공하고 싶다면 부디 근시적 성공에 너무 많은 것들을 걸지 않았으면 좋겠다. 확실하게 자신을 믿고 밀어 부칠 수 있는 일을 찾아보자. 당신의 재능은 근성 이후에 빛을 발할지도 모른다.
Fin.
Special thanks to: bizkitz, SweetGayBar
Thumbnail Info: Near and Fear, Oil on Canvas, 2010, Kristin Vestgå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