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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고 Feb 20. 2016

서툴지만 진심으로 소통하는 것

영화 <동주> (2016)


영화의 장면을 하나라도 놓치고 싶지 않았다.
눈물 때문에 화면을 놓치고 싶지 않아서
손가락을 떨다가 이내 몸을 떨었다.
그리고 마음으로 눈물 지었다.


자의 <동주> 한 줄 감상평이다. <동주>는 감정적인 영화다. 영화는 인물들 간의 대화와 강하늘(윤동주 역)의 내레이션 위주로 전개된다. 심심하다면 심심할 영화다. 그러나 학창 시절, 윤동주 시인의 시를 밑줄 그어가며 읽었던 사람들에겐 한없이 애틋하고 가슴을 후벼팔 영화다.



이준익 감독은 배우의 얼굴로 관객과 소통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왕의 남자>(2005)에서 공길의 애틋하게 떨어지는 눈빛이 그랬다. <구르믈 버서난 달처럼>(2010)에서는 황정민의 미간 주름 하나에 주인공의 복잡한 심경을 담았다. <사도>(2015)에서는 송강호의 앙 다문 입매와 눈꼬리의 떨림을 잡아서 텍스트로는 도저히 이해 못할 부자 간의 갈등을 영리하게 풀었다. <동주>(2016)에선 시선과 감정이 끊어지지 않도록 얼굴에서 얼굴로 화면을 전환한다. 배우의 표정으로 관객과 대화를 시도하는 것. 이준익 감독의 장기다.



동주 촬영장, 사진출처: 순천시


이준익 감독은 이 영화에 흑백 필름을 사용했다. 감독은 <동주> 제작발표회에서 이렇게 말한다. "영화를 흑백으로 촬영하는 것이 당시의 느낌을 더 잘 전달할 것 같았다. 암흑의 시대 이미지에 충실하고 싶었다."고. 그리고 말을 이어 "(흑백으로 영화를 찍은) 두 번째 이유는 제작비 부담 때문"이라고 밝힌다. 후자의 이유가 더 컸을 것이라 감히 짐작해 본다.

촬영을 결심하면 안 되는 것도 되게 해야 하는 것이 감독이고, (영화를) 찍고자 하면 책임지고 매듭지어야 하는 것도 감독이다. 영화 <동주>는 이준익 감독이 작품성과 제작비 사이에서 최선을 다해 타협한 결과물 같다. 녹음 품질은 요즘 시대의 것보다 두 단계 정도 떨어져 있는 듯하고, 화면은 바스트 샷과 클로즈업 샷이 번갈아가며 등장한다. 이것은 영화에 노스탤지어(nostalgia, 향수)를 불러일으키기도 하지만 감독이 영화와 현실을 어떻게 조율했는지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부분이기도 하다.



이준익 감독을 음악에 비유하자면 시골에서 평생을 혼자 국악과 산 사람 같다. 감독은 기교 없이, 어떤 속임수나 장치도 없이 소리를 시원하게 뻗어 내는 소리꾼이다. 그 소리는 이치에 밝지 않고, 세련되지 못하다. 그러나 노력이 하늘에 닿으면 마음이 통하는 법이다. 감독은 <동주>에서 어설프지만 정직하게 자신이 부르고 싶은 소리를 낸다. 진심이 들린다.


이준익 감독의 첫 번째 영화는 <키드캅>(1993)이었고, 두 번째 영화는 <황산벌>(2003)이다. 두 영화 사이의 간격은 10년이다. 이 글을 읽는 분들께 10년의 기간 동안 무언가를 간절히 염원해본 경험이 있는지 묻고 싶다. 필자는 없다. 그런데 이준익 감독은 자신의 영화를 위해 10년의 공백을 기꺼이 인내했다. 10년 사이에 의지가 한두 번 정도만 흔들리진 않았을 거다. 주변 사람에게 한두 번 쓴소리를 들어 본 것도 아닐 것이다. 세월이 아까워서 고시도 3년 하고 포기하는 세상이다. 그런데 이준익 감독은 10년의 기간을 견뎠다. 그런 그가 <동주>의 메가폰을 잡았다.

감독은 윤동주 시인과 닮은 부분이 있다. 윤동주 시인은 평소 소심하고 말이 없어 좀체 거절하는 일이 없었다고 한다. 그런 그가 유일하게 거절하는 것은 자신의 글에 대한 참견이었다. 시인은 친구들이 그의 글을 읽고 "이 부분을 고치면 어떤가" 하고 물으면, 좀처럼 응한 적이 없다고 한다. 며칠이고 몇 달이고 고민한 뒤에 완성한 시만 공개했기 때문에 자기 작품에 대한 신념이 확고한 것이다. 감독이 <동주>를 연출하기 위해 얼마나 고민했는가는 알 길이 없지만 (감독은) 과거 10년의 암흑기를 견딘 것만으로 국민 시인의 형상을 재현할 자격이 있다. 그리고 그는 충분히 잘 해냈다.



윤동주와 송몽길을 연기한 강하늘과 박정민의 연기 호흡도 좋았다. 감독의 설정 속 인물이지만 '동주'의 생애에 자연스럽게 녹아든 쿠미(최희서)와 여진(신윤주)에게도 박수를 쳐주고 싶다. 실제 윤동주 시인은 연희전문학교(지금의 연세대학교) 시절 순이라는 여학생을 짝사랑했으나 일본으로 유학을 떠나는 날까지도 끝내 마음을 고백하지 못했다고 한다. 이렇게 애틋한 시인의 감정은 강하늘의 몸짓과 신윤주, 최희서를 통해 재해석된다. 그리고 장면 사이엔 윤동주의 연정(戀情)의 시가 흐른다.



스물아홉살, 윤동주 시인은 후쿠오카 형무소에서 생을 마감한다. 안타깝게도 광복 6개월 전의 일이다. 그의 죽음 위로 하염없이 슬픔의 시가 흐른다. 필자는 영화의 한순간도 놓치고 싶지 않았다. 감정이 벅차오를 때면, 손가락과 입술을 떨었다. 시인의 시가 화면을 타고 흐를 때, 마음으로 눈물지었다. <동주>는 감정적인 영화다. 복잡한 기교 없이, 어려운 은유 없이 담담하게 시인을 추억한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이 영화는 윤동주 시인의 노래(時)와 닮았다. 시인이 붙인 곡 제목은 <하늘과 바람과 별과 時>다.

F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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