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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고 Mar 07. 2016

인간성 상실의 시대에서

영화 <트윈스터즈>, 2016


1. 거리를 나설 때는 무언가 일이 있을 때뿐이다

2. 밖에서 물건을 직접 보지 않고 인터넷으로만 주문한 적이 있다

3. 주말에 혼자 하루를 보낸다

4. 심심하다

5. 가끔 외롭지만 못 견딜 정도는 아니다


단 필자에게만 한정된 이야기만은 아닐 것이다. 인터넷과 스마트폰은 우릴 편안하게 만들어준다. 배달음식과 인터넷 계좌 이체는 인간을 마음만 먹으면 한 달 내내 집에서 생활할 수 있도록 돕는다. 우리는 사춘기 반항하던 시절처럼 현관문을 꼭 잠근다. 택배나 받으러 움직인다. 물론 우리가 방구석으로 내몰린 적은 없다. 스스로 방 안에 걸어 들어갔다. 더 이상 나오지 않아도 된다. 이미 이불 밖은 충분히 위험하다.


서울, 2006년 08월 07일, ⓒ e-영상역사관


바람을 쐬러 산이나 바다로 떠난 적이 언젠가? 잠 많던 학창 시절, 내 귀를 붙잡고 끌고 가는 부모님이 계시던 시절의 이야기 아닌가? 등산은 어느새 아저씨, 아줌마 문화가 됐다. 그렇다. 시대가 조금 변했다. 거리에서 만나는 사람들의 표정은 점점 굳어간다. 목적 달성과 효율이 최대 가치인 사회다. 감정은 그 우선순위가 조금 밀렸다. 365일 24시간 경쟁하다 보면 감정을 챙길 새가 없다. 감정이란 녀석은 다루기 까다롭고 당신은 시스템을 돌리기에 바쁘다. 어쩌면 21세기 사회는 감정 없는 녀석이 경제적으로 성공하기 쉬운 세상일 지도 모른다.


눈물 흘려본 적이 언젠가? 감동받은 적은? 사랑하는 마음에 가슴 설렌 적은 언젠가? 만약 방금 말한 모든 것들의 과정 이후에 남는 게 뭔데?라고 묻는다면 오늘 이 글을 읽을 필요가 없겠다. 감정은 뭘 남기는 게 아니라 '그냥' 느끼는 거니까.




1막. 만남



<트윈스터즈>는 입양된 두 여성에 대한 이야기다. 두 여인은 1987년, 부산에서 태어났다. 둘은 태어나자마자 각각 미국과 프랑스로 입양된다. 둘은 스물여덟 살이 될 때까지 서로의 존재를 몰랐다. 이들은 소셜미디어(페이스북)를 통해 처음 서로의 존재를 알게 된다. 사만사(쌍둥이 중 하나)가 영화배우였고, 그녀의 작품을 유튜브에 올린 것이 계기가 됐다. 우여곡절 끝에 둘은 화상 채팅을 한다. 둘은 외모가 무척이나 닮았고, 입양 전 이야기가 대부분 일치한다는 걸 확인한다. 서로가 너무나도 궁금해진다. 없는 돈을 모아 미국으로, 영국으로 날아간다. 영화는, '지구 반대편에 있는 사람을 내가 믿을 수 있나?', '혹시 날 닮은 그 사람이 쌍둥이가 아니면 어떡하지?'와 같은 질문을 말한다. 그리고 둘이 겪었던 화두를 관객들에게 다시 한 번 던진다.



(둘은) 쌍둥이가 아닐 수도 있어요. 그럴 때를 위해 꾸준히 상상하고 대비하셔야 해요. 만약 쌍둥이가 아니라면, 이 관계를 이어갈지 말지도 결정하셔야 해요.


쌍둥이임을 확인하는 유전자 검사 직전에 교수가 어렵게 꺼낸 말이다. 이 세상에 나와 생김새와 행동이 똑 닮은 사람을 하나 찾았다. 그런데 쌍둥이가 아닐 수도 있다. 어찌 보면 당연하다. 70억의 인구 중 두 명이 쌍둥이가 아닌 건, 주먹구구식으로 계산해도 확률이 낮다. 그런데 저 질문을 나의 것으로 내재화해 보자. 정도 많이 들고, 나와 닮은, '입양된' 사람과의 관계를 테스트 한 번 후에 결정해야 한다. 상황은 조금 다르지만 정들었던 연인과의 관계를 통장 잔고로 결정해야 하는 우리네 이야기와 닮았다. 숫자로 결정되는 인연만큼 냉랭한 건 없다. 가슴 한쪽이 저릿했다.



자려고 누웠다가 네게 묻고 싶은 질문이 수만 가지가 떠올랐어.
- 아나이스 브로디에 Anaïs Bordier가 사만사에게 -


난 오늘 하루 쉬고 싶어. 세상만사로부터. 너만 빼고.
- 사만사 푸터만 Samantha Futerman이 아나이스에게 -



둘은 "팡 Pop"이라는 서로의 언어를 만든다. 사랑을 막 시작하는 연인들이 그렇다. 두 사람이 애정을 가지고 가까워지면 둘만의 언어가 생긴다. 세상에 흩어져 있는 가장 사소한 단어 하나를 주워다 자신의 것으로 만든다. 세상 사람들에게 "팡 "은 작은 방울이 하나 터지는 소리일 뿐이지만, 아나이스와 사만사에겐 서로가 지구 어딘가에 존재하고 있음을 알리는 생존 신호다. 둘 만의 사랑의 언어다. 둘은 곧 사랑에 빠지고, 자신들이 공통적으로 처한 입양이란 공통 분모를 함께 줄여가기 시작한다.





2막. 벽



두 사람은 친모를 찾기 위해 한국을 방문한다. 생모는 둘의 존재를 부인한다. 자신은 딸을 낳은 적이 없다고. 자신의 자식이 쌍둥이인지 한 명인지가 아니라 둘의 존재 전체를 부정한다. 벽 넘어 벽이다. 잃어버린 쌍둥이와의 재회를 기뻐할 새도 없다. 또 다른 장벽이 둘 앞을 가로막는다.



쌍둥이 자매인 아나이스 브로디에(Anaïs Bordier)는 점점 얼굴이 굳는다. 아나이스는 입양에 대해, 그리고 자신의 존재를 부정적으로 생각했다. 본인의 생일은 '부산에서 태어난 11월'이 아니라 프랑스로 온 3월이었다고 말한다. 아나이스는 자신이 툭 떨어져 있었던 것 같다고 말한다. 이 감정은 친구를 만나도 해소되지 않고, (길러주신) 부모님의 사랑으로도 해소되지 않는 감정이었다고. 그녀는 자신의 생애 중 대부분을 그렇게 보냈다. 사만사의 등장만으로 활짝 열릴 수 있는 문이 아니다. 이미 문은 30년 동안 그렇게 굳게 닫혀 있었으니까.



그녀는 다른 쌍둥이 자매(사만사)의 설득으로 생모에게 자신의 존재를 알리고자 한국을 방문했다. 그런데 생모는 자신의 생을 부정한다. 마음이 아프다. 그녀는 잿빛 얼굴로 사만사를 따라다닌다. 입양 전 둘을 길렀던 대리모를 만나고, 한국 가이드를 만난다. 모두들 사만사와 아나이스를 미소로 반긴다. 두 팔로 끌어안는다. 차가운 줄 알았던 아나이스의 눈에는 어느새 굵은 눈물이 맺힌다. 자신은 태어난 그때를 부인했었는데, 그게 아닌 것 같다고. 나는 부산에서부터 존재했다고. 나의 부모는 여럿이었다며 눈물짓는다. 유독 말수가 없는 그녀였기에 담담한 고백이 주는 울림은 배가 된다. 영화에서 아나이스는 사만사를 유독 많이 끌어안는다. 말수는 적지만, 그녀는 가장 여린 소녀고 마음이 깨끗하다.



입양 기관에서 둘이 편지를 쓰면 생모에게 전달해주겠다고 하는 장면이 나온다. 둘은 편지 서두에 이렇게 적는다.


엄마, 저희에게 생명을 주셔서 감사해요.
Thank you give me a life.


라고.

트윈스터즈는 둘을 끌어안았던 대리모, 양육해주신 부모님, 형제, 친구들의 온기를 기억한다. 이들은 서로를 끌어안듯, 자신을 낳아준 엄마에게 감사를 표한다. 세상에서 자신의 존재를 지운 사람을 끌어안는다. 영화 초반, 발끝을 간지럽히며 관객들을 미소 짓게 했던 감동은 어느새 밀물처럼 가슴까지 들어찬다. 가슴이 덥혀진다. 트윈스터즈는 부정당한 자신들의 지난 삶을 보듬는다. 관객들은 그들의 팔에 함께 안긴다.





어쩌면 이 영화는 입양에 관한 가장 정직한 이야기를 담고 있는 것 같다. 한쪽은 여럿의 사랑 속에 정상으로 잘 자라나는 마음이 있고, 다른 한쪽엔 버림받았다는 마음이 있다, 그리고 다른 한편은 자신이 동떨어져 있다는 외로운 감정도 존재한다. 복합적이고 다양한 입양의 시각과 갈등이 두 사람의 손끝과 발끝, 그리고 입술을 통해 관객들에게 훈훈하게 전달된다.



영화 촬영 기법은 아직 미숙하다. 그러나 메시지에 손상이 갈 정도는 아니다. 이제 막 서른이 된 감독의 입봉작에 너무 많은 것을 기대해선 안 될 것이다. 영화는 자유롭고, 인간적이다. 그리고 따뜻하다. 그거면 됐다.


기자:
친모가 영화를 보고 연락하면 어떨 것 같아요?

사만사:
더없이 행복하겠지요. 아나이스를 처음 만났을 때처럼 입에서 제대로 된 문장이 안 나올 거예요. 연락하지 않아도 괜찮아요. 우리는 엄마를 미워하지 않으니까. 밝게 자란 우리 모습이 엄마에게도 위안이 됐으면 좋겠어요.

(조선닷컴, 박돈규 기자, 2015년 10월 15일 자 기사)



영화 <트윈스터즈>는 크라우드 펀딩(작품 제작 전에 제작 금액을 대중에게 모금하는 방식)으로 제작됐다. 최근 위안부 문제를 다룬 영화 <귀향>과 그 방식이 같다. 필자의 생각보다 아직 세상은 훈훈한 것 같다. 바라기는 세상이 지금보다 조금만 더 따뜻해졌으면 좋겠다. 상실의 시대에 <트윈스터즈>는 우리가 놓치고 사는 따뜻함을 노래한다.


오늘은 동료들과 과일이라도 나눠먹어야겠다.



F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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