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숭이들이여, 태평성대를 이뤄보세!
강렬한 첫인상
살다 보면 많고 많은 사람들을 만나게 된다. 그리고 스스로의 삶에서 구축된 논리를 바탕으로 3초 안에 상대방에 대한인상을 결정한다. 문제는 첫인상을 깨는 것이란 멀고도 긴, 그리고 쉽지 않은 여정이라는 데 있다. 그래서 사람들은 ‘좋은 인상’을 가지기 위해저마다 노력한다.
비슷한 경우로 우리는 살면서 수많은 차들을 마시게 된다. 그동안 마셨던 차들에 대한 종합적인 정보를 바탕으로 어떤 차를마실 것인가 선택하게 된다. 그래서 상품인 차들도 포장이든 향기를 입히든 브랜드를 무기로 삼든 각자 선택받기 위해 고군분투 하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봤을 때 태평후괴는 조금 불리한 위치에서 출발하는 차인지도 모르겠다. 부추 같은 채소나 미역 같은해조류를 눌러서 말려둔 듯한 기이한 외모. 처음 맞닥뜨리면 이게 진짜 차인가 고개를 갸우뚱거릴 정도로 독특하다. 혹은 반대로 그 덕분에 강렬한각인효과와 차 맛에 대한 기대감 상승시키거나.
여린 연둣빛의 부드러운 맛
태평후괴太平猴魁는녹차의 일종으로 중국 안휘성 황산에서 생산되는 차이다. 손가락 크기만 하고 납작하게 눌려 있으며 연둣빛부터 진녹색까지 층층이 섞인 것이특징이다. 우리면 찻잎이 갈라지는 모습을 관찰하기 위해서는 기다란 유리잔에 우리는 것이 가장 적절하다. 예열된 잔에 찻잎을 가지런히 넣은 뒤80도 정도의 물을 1/3 정도 부어준 뒤 30초 기다렸다가 나머지 물을 부은 뒤 1분 30초 뒤부터 마시면 된다.
좁고 긴 잔에서 흐느적거리는 녹색을 바라보며 이 차의 고향인 황산의 기운이 서린 힘찬 맛을 기대했다면 마침내 잔에 담긴차를 마시게 됐을 때 부드럽고 상쾌한 맛에 놀라게 될 것이다. 찻자리를 수줍게 감싸는 꽃향기는 처음 마주했던 3초 동안 형성된 첫인상 타파의귀여운 마침표다. 사람도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고 이모저모 다양한 경험을 해봐야 알 수 있듯이 차도 역시 직접 마셔봐야만 진면모를 알 수 있다.
태평을 기원하는 차
청나라 때부터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고 만드는 과정이 꽤 복잡하고 섬세해서 가격이 비쌈에도 불구하고 중국 밖에서는 쉽게찾을 수 없이 귀하신 몸이다. 그렇게 되기까지는 마오쩌뚱의 역할이 컸다.
태평후괴의 ‘후’는 원숭이를 뜻하고 ‘괴’는 최고 품질의 차라는 등급을 의미한다. 그래서 마오쩌뚱이 국빈이 방문했을 때사람을 원숭이에 빗대어 ‘국가 대표 원숭이들이 만났으니 서로 태평성대를 이루자’는 뜻을 담아 선물하기 시작했다. 실제로 중국에서는 지금도외국의 정상이 방문했을 때 주석이 태평후괴를 선물하느냐 마느냐가 큰 이슈가 된다고 한다. 그러자 기업이나 돈이 많은 사람들도 상대방에게 이차를 대접하기에 이르렀다. 그러던 것이 이제는 많은 양의 찻잎을 넣어 마시는 것으로 부를 과시하는 수단이 됐다고. 그 결과 ‘부자들의 차’로알려지기도 했다.
은은한 꽃향기가 입 안에 머무는 이 차는 인후염에 특히 좋다 하니 미세먼지가 신경 쓰이는 요즘 같은 때 더욱 마시고싶은 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