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愛, 로路, 소설小說
02 카미노 데 산티아고

_ 산티아고로 향하는 별들의 길을 보다

by Snoopyholi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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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 북부에 위치한 갈리시아 지방은 아무래도 여태껏 지나온 다른 지방보다 훨씬 낙후된 것 같았다.

어쩌면 이 길 자체가 시골스러운 곳만 통과하는지도 몰랐지만 유난히 시골적인 풍광이 자주 나를 반기는 이 지역이었다.

늦가을부터 겨울을 지나 초봄까지는 늘 비만 내린다는 날씨를 생각하면 무리도 아니지 싶다가도 이 지역 사람들이 안됐다는 생각이 들었다.

상점이나 선술집도 별로 없고 갈리시아 정부에서 지어서 관리하는 알베르게가 많다고 하는데 시설이 꽤 열악한 경우가 태반이었다.

이번에 도착한 알베르게도 다르지 않았다.

심지어 이 알베르게에는 관리자도 없었다. 그냥 기부함이 떨렁 있고 저녁에 불을 꼭 끄고 자라는 주의사항 정도가 적혀있는 수준이었다.

식량을 사지 않고 이곳까지 흘러들어온 것이 후회됐다.

하긴, 딱히 식량을 마련할 곳이 없긴 했다.

그래도 굶어 죽으라는 법은 없는지 꽤 자주 마주쳤던 동유럽에서 온 순례자 라퓨틴이 오다가 채집했다는 야생 버섯으로 요리를 한다고 나섰고, 영어도 스페인어도 잘 못하는 일본인 하나는 있는 쌀을 다 털어 리조또 비슷한 것을 일본식으로 만들어주겠다며 얼굴에 최대한 불쌍하게 ‘나에겐 음식이 하나도 없는데 배는 고프고 어떡하지?’라고 써진 나를 저녁 식사에 초대해줬다.

사실 15분 걸어가면 나온다는 식당에 갈 수도 있었다.

하지만 나는 오래도록 걸었고 피곤했다.

그리고 따뜻한 타인의 호의를 무시해서는 안 된다는 믿음도 강하게 작용했다.

그래서 다국적 순례자들이 테이블에 모여 앉아 맛있는 저녁식사를 즐겼다.

솔직히 라퓨틴의 버섯요리를 먹을 때는 걱정이 되기도 했다.

전문지식 없이 버섯을 먹고 병원신세를 지는 순례자도 있으니 절대 함부로 버섯을 채취하지 말라는 주의를 몇 번이나 들었던 것이다.

우려와는 달리 그가 동유럽에서 가져왔다는 특별했던 향신료 덕분이었는지 맛도 신체 반응도 괜찮아서(만약 독버섯이었다면 즉각 반응이 왔을 터였으므로) 요리사를 제외한 나머지 일행은 가슴을 쓸어내렸다.

오랜만에 먹는 쌀로 된 음식도 참 반갑고 고마웠다.

나는 넉넉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기꺼이 음식을 나에게도 내준 그들의 호의에 대한 대가로 설거지를 자청해서 해치웠다.

설거지가 끝날 무렵 어제 내게 알렉스에 대한 이야기를 해줬던 순례자가 알베르게로 들어왔다.

식당에서 식사를 마치고 오는 길이라고 했다.

그리고 다짜고짜 우리에게 지금 당장 밖으로 나가봐야 한다고 했다.

지금 밖으로 나가지 않으면 반드시 후회할 테니, 다소 춥긴 하지만 외투를 걸치고 어서 나가보라며 재촉했다.

뭐가 있냐고 물으니 그냥 ‘아름다운 무언가’가 있다고만 했다.

사실 이제는 제법 쌀쌀해진 밤공기가 무서워서 귀찮다는 기분도 들었지만 저렇게까지 이야기하는데 뭔가 좋은 것이 있으리라 믿기로 하고 껴입을 수 있는 옷은 다 껴입고, 길을 잃지 않기 위해 손전등을 준비해서 우르르 밖으로 나갔다.

찬 밤공기를 뚫고 꽤 걸은 것 같은데 아무것도 나오지 않았다.

더군다나 이 지역에는 정말 아무 것도 없는지 알베르게가 시야에서 사라지자 손전등에서 뿜어져 나오는 불빛에만 의지할 수밖에 없었다.


“뭐야, 어둠과 차가운 밤공기밖에 없잖아?”

“다들 어쩜 그렇게 무뎌? 어둠 덕에 뭘 볼 수 있는지, 위를 올려다보라구.”


세상에.

공들여 오래도록 갈아낸 먹물보다 까만 밤하늘을 바탕으로 숫자를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은 별들이 총총히 박혀 빛나고 있었다. 그리고 한쪽으로는 야곱을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로 인도했다는 은하수가 흘렀다.

우윳빛 별들의 강.

심장이 터지기라도 할 것 같이 방망이질 쳤다.

우리는 모두 침묵과 감동에 잠겼다.

손전등을 끄고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손을 잡고 둥근 원을 만들어 서서 하늘을 가득 채운 별들을 바라보며 소원을 빌었다.

특별한 순간이었고 특별한 밤이었다.


“너무 아름답다.”

“무슨 소원들 빌었어? 이렇게 많은 별들 중에 하나 정도의 별은 소원을 들어주겠지?”

“그래. 우리 모두의 소원을 별들도 똑똑히 들었을 거야.”

“그거 알아? 지금 우리가 바라보는 별빛은 오래 전에 우주를 가로질러 여행을 시작했던 빛이래.”

“어디서 들어본 이야기 같은데, 그래서 우리에게 보이는 저 별들 중에서는 사라진 별이 있을 수도 있다는 이야기 아니야?”

“맞아. 참 이상하지 않아? 우리는 현재를 사는데 별빛은 과거에서 온 것이고 저 은하수의 어딘가에는 우리의 미래 목적지인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가 있을 거라는 사실이.”

“그러게. 심지어 이틀이나 사흘만 더 걸으면 도착할 수 있는 곳이라고.”

“기분이 이상해.”

“나도.”


다들 이 길었던 길의 목적지가 손에 잡힐 듯 가까이 있다고 생각하니 기분이 이상해졌는지 다시 말들이 없었다.

게다가 감동하느라 잊고 있던 추위가 옷 속으로 파고들기 시작했다.

저마다 부르르 떨며 얼른 들어가자고 호들갑을 떨었다.

반짝반짝 별이 빛나는 까만 밤하늘을 흐르는 우윳빛 별들의 강만이 오랜 세월을 그래왔듯 묵묵하게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 방향으로 흐를 뿐이었다.



to be continued.....


******* 이 글은 픽션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