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愛, 로路, 소설小說
02 카미노 데 산티아고

_ 도착 ARRIVAL

by Snoopyholi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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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뒤 이틀은 함께 별을 보러 나갔던 캐나다 청년 앤디와 길을 걸었다.

알렉스에 대해 이야기해준 사람이기도 한 그는 생장피데포트에서 3주 만에 산티아고에 입성할 계획을 세우고 이 길을 걷기 시작했다고 했다.

우리는 내내 말도 안 되는 국적 불명의 노래를 고래고래 부르다가 갑자기 심각해져서는 세계 정치나 경제에 대해 논평 하는가 하면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같은 이야기들을 잔뜩 늘어놓고 우리끼리 신나서 키득거렸다.

볕이 좋은 손바닥만 한 공원이나 아무도 없는 풀밭에서 게으름을 피우며 와인까지 동원된 긴 점심식사를 하기도 했다.

그와 함께 들렸던 강 옆의 고요하고 아름다웠던 알베르게를 떠나던 아침, 물안개가 강에서부터 피어올라 넓은 대지까지 뒤덮었다.

초록 풀에는 이슬을 잔뜩 뿌리고 멀어져 갈수록 짙어지며 스멀스멀 야트막한 능선을 타고 올라 산까지 휘감으려는 듯했다.

산꼭대기만 고개를 쏙 내밀고 어디 한 번 끝까지 올라올 수 있으면 올라와 보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이후 우리가 지났던 풍경은 거의 숲이었다.

우거진 나무 사이사이로 햇살이 비집고 들어와서 땅에 자취를 남기던 모습과 아주 작고 조용했던 마을에서 들려오던 이 지방 특유의 음악을 기억한다.

언젠가 들었던 아일랜드의 민속 음악과 닮은 구석이 있었더랬다.

걸으면 걸을수록 이 길었던 길이 끝난다는 사실을 믿을 수가 없었다.

이상한 느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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팜플로나에서 이 길을 막 걷기 시작했을 때만 해도 끝이 있을 거라는 상상을 하기 힘들었다.

그런데 나는 이제 점점 그 끝을 향해 가고 있는 것이다.

그토록 고대했던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라는 종착지로 한 발짝 한 발짝 다가간다는 사실 자체가 굉장히 흥분되기도 했지만 그와 동시에 두렵기도 했다.

과연 나는 그곳에 도착하면 이 길을 걷는 내내 갈망해왔던 영혼의 자유를 얻을 수 있을 것인가?

만약 그렇지 않다면 어떡하지?

내 영혼은 납덩이보다 훨씬 무거워서 그냥 깊고 깊은 바다 속으로 가라앉을 수밖에 없고 난 어떻게든 가라앉지 않으려고 몸부림치면서 그렇게 살아가야 한다면 어떻게 한담?

아니, 어쩌면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는 존재하지 않는 도시인지도 모른다.

걸어도, 걸어도 닿을 수 없는 도시일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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앤디도 나와 비슷한 심정이었는지 매일 40km이상을 척척 걸었다는 그가 막판에 나 같은 느림보와 함께 걷지를 않나, 심지어 산티아고에 도착하기가 두렵다고 칭얼대는 나와 함께 산티아고까지 불과 몇 km를 남겨두고 멈췄다.

나를 만나 처음으로 풍경을 둘러보는 즐거움을 알게 됐는데 끝난다는 사실이 아쉬웠기에 그곳에 도착하기 전에 심호흡의 필요성을 느꼈다나.

800개의 침대를 보유했다는 무슨 휴양단지 비슷하게 생긴 알베르게에서 우리는 팔을 뻗으면 손에 잡힐 것 같은, 반짝이는 불빛이 가득한 산티아고를 바라보며 와인 병이 비워질 때까지 오래도록 속 깊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아래층 사람에게 미안하게스리 유난히 뒤척이며 잤던 밤이었다.

변함없이 아침 해가 어둠을 몰아내고 하늘 위로 얼굴을 디밀었다.

배낭을 싸서 산티아고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렇게 고대해왔던 순간이 눈앞에 있는데도 나의 그곳으로 향한 발걸음은 감정적으로 상당히 힘들었다.

이유라도 알 수 있으면 좋으련만, 이유도 모른 채 정말 힘들다는 느낌만이 내 육신을 지배할 뿐이었다.

내 옆에서 걷고 있던 앤디도 뭔가 골똘히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아무 말도 없었다.

시골길은 사라지고 아스팔트와 자동차들, 건물들이 띄엄띄엄 보이는 도시 변두리 쯤 다다랐을 때 그가 슬그머니 내 손을 잡았다.

조금 당황하긴 했지만 나도 뿌리치지 않았고, 우리는 여전히 침묵을 지킨 채로 황금빛으로 빛나는 햇살과는 상관없이 잠들어 있는 성스러운 도시를 향해 맞잡은 손의 온기에 조금은 기운을 얻어 성큼성큼 걸어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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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티아고 대성당이 내 눈앞에 웅장한 자태를 드러냈다.

여태껏 지나온 불고스나 레온의 대성당이 순백의 대리석에 빛나는 천국의 이미지였다면 산티아고의 대성당은 조금은 음습하면서 중후한 기운을 뿜어내는 고딕의 느낌이 어울렸다.

앤디와 나는 침묵을 깨고 동시에 소리쳤다.


“우리가 해냈어!”


하지만 감동의 순간도 잠시였을 뿐, 나는 곧 무얼 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공허감에 휩싸였다.

마음속의 목소리는 자꾸 길이 끝나지 않았으니 더 가라고 했지만 산티아고에 도착한 이 시점에서 도대체 어디로 더 가라는 말인가? 혹시 여기 있지 말고 지금 당장 세상의 끝이라는 그곳으로 가라는 이야기인가?

그렇다는 대답이 들려올까 해서 기다려봤지만 일렁이던 마음속의 바다가 갑자기 잠잠해졌다.

공허감과 불안이 바다 위에서 떠돌아다녔다.

아직 미사 시간이 되려면 세 시간이나 남았기에 일단 순례자 사무소로 향했다.

언제 몰려들었는지 산티아고로 향하는 길을 걸었다는 증명서를 받기 위한 순례자들로 북새통을 이뤘다.

다행이 줄은 기다리면 줄어드는 것이었기에 문제없이 내 차례도 돌아왔다.

내 여정이 차곡차곡 빼곡하게 도장으로 기록된 순례자 여권과 증명서 발급에 필요한 쪽지를 내놓았더니 친절한 미소를 짓고 있는 단발머리의 담당자가 근사한 글씨체로 무언가가 잔뜩 적힌 증명서 위에 내 이름을 또박또박 적었다.


‘그래, 어쩌면 나는 이 길을 정말 끝마친 것일지도 모르지.’


사무실에 배낭과 증명서를 맡겨놓고 밖으로 나왔다.

열두 시 미사까지는 아직도 두 시간이나 남아서 앤디와 간단한 아침식사를 하기로 했다.

카페로 가는 길에는 정말 오랜만에 커다란 상자와 함께 택시 안에 있는 롭을 봤다.

그와 내 시선이 교차하자 롭은 싱긋 웃더니 귀엽게 윙크하며 거수경례를 했다.

나는 그냥 반가움의 미소만 지어줬다.


“앤디, 지금 심정이 어때?”

“나야 목표대로 3주 만에 이곳에 닿았으니 목표달성을 한 셈이지 뭐.”

“그런데 왜 그렇게 힘이 없어?”

“그러게. 목표를 달성했는데 기쁘기도 하면서 너무 아쉽기도 해. 특히 너를 만나고 네 이야기를 듣고부터는 그동안 내가 너무 빨리 걷느라 놓친 수많은 풍경들과 만날 기회조차 없었던 친절한 사람들에 대한 생각이 떠나질 않아. 분명 굉장한 경험이었을 텐데.”

“하지만 너에겐 3주라는 시간밖에 주어지질 않았잖아. 넌 최선을 다했어. 만약 네가 천천히 풍경을 음미하고 길에서 마주치는 친절한 사람들과 일일이 대화하느라 시간을 보냈다면 지금 이렇게 산티아고의 어느 카페에서 나랑 아침식사를 할 수 없었을 거야. 레온쯤에서 다음을 기약하고 캐나다로 돌아갔어야 했을걸?”

“그러고 보니 그러네. 그래. 맞아. 세라 넌, 넌 기분이 어때? 아까부터 쭉 시무룩한 것 같던데.”

“이상해. 여기 도착하면 그냥 무조건 신나고 행복하고 모든 고민이 사라지고 해탈의 경지에라도 이를 줄 알았는데, 전혀 그렇질 않아. 내게 변한 것이 있는지 전혀 모르겠어. 솔직히 여기 대성당이 특별히 아름다운지도 모르겠고, 배낭은 여전히 무거워서 맡기고 나와야 했고, 내 마음에 평안이 찾아온 것도 아니고 이제 곧 복잡한 일상으로 돌아갈 일만 남았잖아. 그 전에 미사가 끝나면 배낭을 찾아야 하는 시간 전까지 값싼 숙소를 찾느라 바쁘겠지. 아까 들었지? 알베르게는 이미 다 찼다는 이야기.”

“왜 그래, 세라. 네가 해주었던 수많은 행복하고 감사한 일들은 이제 기억나지 않는 거야?”

“모르겠어. 그냥 아무 것도 모르겠어.”

“그리고 우린 아직 산티아고에 도착하지 않은 거나 마찬가지야.”

“응?”

“대성당에서 순례자들을 위해 여는 미사를 아직 드리지 않았잖니.”

“무슨 소리야, 너나 나나 종교도 없는데.”

“아니야, 종교와는 상관없이 산티아고로 향한 길로 이곳까지 다다른 순례자라면 그 미사를 드리는 것이 진짜 마지막 코스라구. 그러니까 너나 나나 사실은 아직 이 길의 끝에 닿은 소감을 말하긴 일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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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당 안에는 발 디딜 틈 없이 많은 사람들이 미사에 참여하기 위해 들어차 있었다.

이런 대성당에서 미사에 참여해보기는 처음이었다. 성당 안에서 반가운 얼굴들이 속속 눈에 띄었지만 서로 반가움의 눈인사만 나누고 미사에 집중했다.

순례자를 위한 미사였기에 미사의 시작은 순례자 증명서를 이미 발급 받은 사람들을 토대로 출발지와 나라, 이름까지 일일이 호명해주는 일이었다.

워낙 많은 순례자들의 숫자 덕분에 읽는 속도가 엄청 빨라 감동적이고 엄숙해야 할 호명의 시간이 약간은 코믹스럽게 느껴졌다.

제일 큰 문제는 도대체 언제 내 이름이 나올지를 모르겠다는 것이었다.

그래도 나는 운이 좋아 이 날의 유일한 한국인이었다.

솔직히 다른 건 다 못 듣고 ‘꼬레아’만 들었다.

그래도 그게 어디냐며 아예 자신의 이름 듣기를 포기한 앤디와 키득거렸다.

호명이 끝나자 이제는 다소 심각한 분위기로 미사가 진행되었다.

장엄한 파이프 오르간 소리야 그냥 들으면 된다지만 신부님의 말씀은 전혀 알아들을 수 없는 나는 자꾸 마음속에서 떠오르는 정말 이게 끝인가, 라는 질문과 씨름판을 벌였다.

‘끝이다’가 청 샅바, ‘끝이 아니다’가 홍 샅바, 두 선수 팽팽하게 대립하는 상황에서 좌중이 술렁이기에 무슨 일인가 했더니 수도사들이 무언가를 줄에 매달고 있었다.

말로만 듣던 보타푸메이로(Botafumeiro)를 준비하는 모양이었다.

연기가 나는 커다란 향로가 드높은 대성당의 천장에서부터 내려온 굵은 밧줄에 매달려 있고 그 주위에는 똑같은 옷을 입은 여덟 명의 사제들이 엄숙하게 서 있었다. 솔직히 아름답다고는 표현할 수 없지만 꽤 심각한 태도로 노래를 부르고 있다는 느낌이 확실하게 전달되는 여자의 노랫소리가 들리고 끈을 붙잡은 자주색 복장의 수도사 두 명의 몸이 움직이기 시작하면서 향로도 곡선을 그리며 움직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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곡선의 길이가 점차 길어졌다.

이제 향로는 그저 높아만 보이는 대성당의 천장에 닿을락 말락 아슬아슬하게 곡선운동을 했고 그 안에서 퍼져 나오는 향료의 연기까지 더해진 모습은 마치 향로가 춤을 추는 듯한 느낌을 자아냈다.

격렬한 수도사와 향로의 움직임과는 대조되게 성당 안에는 조용한 노랫소리와 은은한 향기가 퍼졌다.

그리고 나는 울고 있었다.

향로가 움직일 때마다 가슴 밑바닥 속에 있던 감정의 덩어리가 하나씩 훅 솟구쳐 올라와 눈물로 쏟아져 내렸다. 향로의 곡선운동이 잦아들수록 나의 감정도 함께 진정되어 갔다.

마침내 향로가 움직임을 멈추었을 때 눈물도 함께 멈췄다.

하지만 아직도 내가 제대로 산티아고에 도착했는지는 확신이 서지 않았다.

내 마음속의 씨름판에서 선수들이 인사를 하고 퇴장했다.

무승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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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사가 끝난 대성당 앞 광장은 그야말로 열광의 도가니였다.

사람들은 저마다 성당 안에서는 자제하느라 표출하지 못했던 기쁨의 마그마를 화산이 폭발하듯 광장에서 분출시켰다.

수많은 순례자들이 반가움에 서로를 얼싸안고 축복의 말을 전하느라 곳곳에 행복의 에너지가 충만했다.

나도 광장 속에 뛰어들어 정신없이 아는 얼굴들과 뜨거운 포옹과 덕담을 나누고 기념사진을 찍었다.

초반에 만났던 친구들과 모두 함께 이곳에 있을 수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살짝 아쉽기도 했지만 지금 이곳에서의 기쁨과 행복이 금세 그런 감정을 불도저처럼 밀어냈다.

무사히 고통과 고뇌를 이겨내고 산티아고로 걸어온 순례자들은 모두 흥분과 자신에 대한 자랑스러움으로 얼굴이 상기되어 있었다. 그리고 그 열기는 밤까지 계속되며 식을 줄을 몰랐다.



to be continued.....


******* 이 글은 픽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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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저와 함께 세라의 산티아고까지의 여정을 함께해주신 여러분께 감사합니다.

세라의 여정은 피니스테레로, 다시 바르셀로나로, 런던으로, 서울로, 스위스로 이어집니다만,

브런치에서의 연재는 여기에서 끝마칠까 합니다.

출판이 결정됐냐구요?

그건 아닙니다만....

(훗, 그건 세라의 여정이 가진 운명이 결정할 일이겠지요.)

어찌됐건 저도 이 이야기를 책으로 엮고 싶어서 썼던 것이니 나머지 이야기들은 언젠가 이 이야기가 출판됐을 때 책으로 읽어주실 독자들을 위하여 남겨놓고 싶네요.

...

서랍속에 잠들었던 이 이야기를 이렇게 꺼내어 여러분 앞에 펼쳐내어 보일 수 있어서 행복했습니다.

저로서는 이 연재를 통해서 잊고 있었던 길 위에서 체득한 지혜들을 먼지를 털어내고 다시 선명하게 마주할 수 있었답니다.

산티아고로 향하는 길은 참 신비하고 아름다운 길입니다.

벌써 제가 걸었던 10년 전의 길과는 한참 다른 길이라는 이야기들이 많이 들려오지만.....천 년 전에 그 길을 걸었던 사람이든 앞으로 100년 뒤에 그 길을 걸을 사람이든 그 길이 그들의 인생을 바꾸는 힘이 있는 길이라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을 것임을 믿습니다.

...

산티아고를 향하는 길 위이든 혹은 그저 매일의 일상 위에 놓여진 길 위이든 우리가 어딘가를 향해 걷는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겠지요.

그러니 우리 모두에게 이 말을 전하며 연재를 마칠까 합니다.

iBuen Camin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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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_

외장하드 속의 자장가는 쭉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