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P_ week 35

오늘을 살다보면 내일이 온다

by Snoopyholic

왠지 영원히 끝나지 않을 것 같던 8월이 끝나고 9월이 왔다.

놀라운 일이 아니지만 놀랍다.

의외의 일들이 많았던 한 달이었다. 아무튼 잘 마무리가 되고 새로운 9월을 열었다.

새던 천장으로부터 드디어 물이 안 떨어지고 프로젝트는 끝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

수리 맡겼던 자사호 뚜껑을 찾았고, 책 작업은 계속 ing 중이다.

물론 병원도 주구장창 다니고 있다.

이번엔 피부과다.

거기서도 똑같은 소리를 했다.

"면역력이 떨어지셔서 그래요. 쉬시기 바랍니다."

아 네. 저도 매우 쉬고 싶은데요, 돈이 없으면 병원비는 어떻게 지불하나요....

사는 게 그냥 다 그런 거인 듯.

이제는 화가 날 여유도 기운도 없다. 그래서 더 마음이 놓이는 면도 있다.

너무 수많은 스트레스가 나를 짓누르니까 이제 이게 스트레스인지 뭔지 무감각해지는 것.

9월의 시작은 25년 된 친구들과 보냈다.

더 늙기 전에 추억 하나 만들었다고 깔깔대며 웃었다.


#170 Believe it or not it's a half avocado

아마도 문법은 틀린 것 같다. half of an avocado가 맞지 않을까 싶음.

아무튼 뭔가 간단하고 휘리릭 그림을 그리고 싶다고 생각했고 갑자기 한밤중에 잘 익은 아보카도 반을 갈라 꿀을 넣어 척척 비벼서 먹고 싶다고 생각했다.

아보카도가 없으니 그림이라도...

뭐 그러며 그려봤다.


#171 Looks like half of an apple

여기에도 like 앞에 a를 넣느냐 마느냐를 고민하다가 창작의 고통도 아니고 문법 때문에 이러고 있다니 이러다가....ㅋㅋㅋㅋ

아보카도 반쪽을 그리고 보니 사과 반쪽도 그리고 싶어서 그렸다.


#172 COLOUR TEST

병원에서 또 스트레스에 대한 이야기를 들은 날이었다.

슬퍼서 근처의 친구들을 소환했으나...원래 만나고자 했던 녀석은 급작스러운 일로 응급실에 있었고 그 동네 살아서 어디 안 가는 애는 하필이면 그날 그때에 종로에 있었다.

뭔가 거부당하는 날인가 싶어 다시 휘비적 휘비적 흔들리는 발걸음이 멈춘 곳은 호미화방.

괜스레 이것거젓 사이로 돌아다니다가 나도 모르게 지갑을 열고 말았던 미니팔레트.

문교 거였는데 만원인 거라.

하루 편의점 맥주 안 마신다 생각하고 나니 결단을 내리기 수월했다.

그냥 질렀음. 그간 써왔던 1.5유로 짜리 장난감보다 훨씬 발색도 좋고 이래저래 만족했다.


#173 Faces

팬텀 싱어를 보며 거기 가면을 그려보겠다고 출발했지만 뭔가 잘못되는 바람에 울상이다가 그럴 게 아니라 다른 얼굴도 그려보자 해서 좋아하는 백제의 얼굴도 그렸다.

번지는 느낌을 잘 살리고 싶었는데 그런 기법은 언제 익숙해질지 모르겠다.

그래도 열심히 그리다 보면 언젠가는 되겠지.

일단 지금의 스케치북은 너무 얇아서 그게 적절하지 않은 면이 있다는 것에서....언젠가 두꺼운 종이를 사용하는 날을 기약해보기로.


#174 내일은 월요일

25년지기들과 꿈결같이 즐거웠던 여행을 마치고 서울로 돌아와 고요해진 밤.

내일이 월요일이라는 생각에 어찌나 우울했던지.

시무룩한 표정이 됐는데 갑자기 그런 내 모습이 웃겨서 그려보기로 했다.

ㅋㅋㅋ

그림을 그리면서는 지금은 좀 우울하지만 또 이번주만 빡세게 잘 하면 나로서는 프로젝트의 끝에 한 걸음 다가간 거라고 생각을 바꿨다.

그랬더니 즐거운 마음으로 잠들 수 있었음.

하지만 세상의 많은 회사원의 일요일 밤은 저런 얼굴이 아닐까 멋대로 생각해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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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다는 것.

웃긴 것.

25년을 관통하는 시간 동안 적당한 거리에서 함께 그 시간을 걸어온 친구들.

우리가 1박 2일 동안 웃고 떠들며 한 이야기 중에 하나가 그거였다.

25년 전에 이렇게 살고 있을 줄 몰랐다는 것.

정말 그렇다. 다 알고 있고 그렇게 될 것만 같은데도 전혀 그렇지 않고 결과적으로는 아는 게 하나도 없었던 것이 그 시간들이다.

그래서 우리는 더 이상 미래를 말하지 않는다.

지금을 이야기하고 다음 만남에만 집중해서 이야기한다.

아마 우린 다음 만남에 이태원에서 밥을 먹겠지.

그땐 이번 여행때 쌓인 에피소드와 추억으로 왁자할 것이다.

벌써부터 기다려지는 그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