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Walking around in Hanoi
호텔에 도착했다.
우선 방을 보고 결정하자고 하고 방을 봤는데 그렇게 나쁜 것 같지 않았다.
하룻밤에 20달러. 비록 창문은 없었지만 나름 트윈룸에 청결 상태도 좋아 보였고......앞으로도 계속 자주 등장할 '그땐 몰랐기에 자연스럽게' 적당한 가격이라고 생각하고 묵기로 했다.
문제는 거기서부터 시작됐다. 기사는 가방을 로비에 꺼내다주더니 갑자기 돌변해서 돈을 더 달라고 했다.
내가 당황한 듯 보이자 정의의 사도가 되어 등장하는 우리의 호텔 매니져.
베트남어로 막 소리를 지르며 그와 싸우더니 나에게 원래 합의한 가격이 얼마냐고 물은 뒤 그 돈만 달라고 하더니 그 돈을 막 던지고 난리를 치더라고. 기사는 허겁지겁 그 돈을 주워 깨갱 밖으로 퇴장.
나는 꽤 당황했지만 고마운 마음도 좀 들었다.
가방을 방에 던져놓고 나오니 급 다가와서는 투어에 대한 이야기를 늘어놓기 시작했다.
나는 하롱베이는 딱히 땡기지 않았고 사파라는 곳에 가고 싶다는 생각이 있었기에 그와 마주앉아서 투어에 대해 이야기하기 시작했고 이미 아까 보여준 기사도 정신의 모습에 무한 신뢰를 하는 (물론 지금에 와서야 깨달았지만) 크나큰 실수를 저지르고 말았다.
사실 여행에서 특히 자유여행에서 사기 안 당하는 방법은 두 가지다.
1. 돈이 엄청 많아서 그냥 비싸고 좋은 것을 선택할 것.
2. 엄청나게 발품을 판 뒤 비교분석 뒤 자신에게 맞으며 최대한 저렴한 것을 선택할 것.
나라는 인간은 1번도 2번도 선택하지 않았다.
그냥 눈앞에 있는 사람을 믿기로 하고 지갑을 활짝 열고 사파 투어 + 호이안까지의 버스 + 호이안에서의 호텔 1박까지 예약하고 말았다. 즉, 나 스스로 굉장히 자발적으로 호구가 되기로 선택한 것이나 다름 없는 것이다. 뭐, 이때까지만 해도 앞으로 이어질 도미노 재앙에 대해서는 전혀 감지하지 못했으니 당연한 일인지도.
그나마 호이안에서의 호텔 1박까지만 예약한 자신을 기특해하며....이제 앞으로 나흘은 걱정 없이 여행을 오롯이 즐길 수 있으니 얼마나 좋은가!! 따위의 가벼운 발걸음으로 하노이 산책에 나섰다.
홀로 칠렐레 팔렐레 다니는 길은 즐거웠다.
모든 풍광이 이국적이었고 매캐한 공기마저도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정처없이 계속 돌아다니며 사진을 찍어댔다. 길거리의 이발사 같은 것은 우리나라에서 보기 힘든 직업이지 않은가. 기념품으로만 존재하는 줄 알았던 논은 여전히 실생활에서 사람들이 많이 쓰고 다니는 물건이었고 빛 바랜 건물의 모습은 그 모습 그대로 연륜을 풍겼다.
그런데 갑자기 과일을 바구이네 지고 가던 아주머니 둘이 나를 붙잡더니 그 바구니를 내 어깨에 얹고는 손에 있던 카메라를 뺏어 들고 가더니 사진을 찍은 뒤 돈을 달라고 한다.
잔돈이 없다고 했지만 카메라를 돌려줄 기색이 아니어서 일순 십만 동을 털렸다.
(기분이 참 더러웠는데 아이러니하게도 그 사진이 나는 싫지만 사람들은 좋아하는 내 베트남 여행 사진이 됐다.)
쓰라린 마음을 부여잡고 도착한 곳은 호암끼엠 공원이었다.
뭔가 크고 아름다운 공원 같았지만 도저히 사진을 찍을 기분이 안 났다.
자꾸 짜증나는 아줌마들이 떠올랐다. 거기다가 나에게 덤탱이 씌우려 했던 짝퉁 택시 아저씨의 능글맞은 미소의 시커먼 이빨까지 떠올랐다.
그때 뒤에서 영어로 혹시 한국인이냐고 물어왔다. 돌아보니 웬 서양인이었다. 알고 보니 한국에서 영어를 가르치는 청년으로 태권도에 심취했다고 한다. 하지만 이제 계약이 끝났고 이 휴가가 끝나고 한국에 가면 고국으로 귀국할 예정이라는 말도 덧붙였다.
그와 함께 공원을 걸으며 방금 멀쩡히 눈 뜨고 당한 이야기를 했더니 카메라 같은 것을 허술하게 들고 다니지 말라고 조언하더니 포나 먹으러 가자고 했다.
도마뱀이 우리는 반기는 포집에서 후루룩 촵촵 배를 채우(피시볼 포였는데 진짜 맛있었음)고 또 괜히 이곳저곳을 기웃거렸다.
하지만 시간이 가면 갈수록 이 청년과의 이야깃거리가 떨어져갔다.
태권도에 대해서는 쥐꼬리만큼도 모르는 한국 여자와 태권도 외에 중요한 게 없고 미국에서 사범을 하는 것이 꿈인 서양인 남자 사이에는 커다란 간극이 있었던 것.
날도 슬슬 저물어가고 나의 체력도한계에 다르고 있었다.
생각해보면 부상(?)까지 당한 후 서너 시간 자고 베트남으로 날아와서 이미 택시 기사와 파인애플 아줌마들에게 사기를 당한 참이었다. 그저 에어콘을 매우 빵빵하게 틀어놓고 푹 자고 싶었다.
그리하여 태권도 미국 청년에게 인사를 하고 후다닥 호텔로 돌아왔다.
그리고 에어콘을 빵빵하게 틀어둔 뒤 뜨거운 물로 한참 샤워한 뒤 침대 속으로 미끄러졌다.
미묘하게 짜증나는 하수구 냄새가 방을 채우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피곤을 빙자해 그야말로 꿀잠을 잤다.
to be continu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