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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찻잔의 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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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noopyholic Oct 25. 2017

Halloween특집: Trick or treat?

:: 스파이스를 더한 홍차 + PEANUTS Halloween

스누피 덕후가 핼러윈에서 빠뜨릴 수 없는 중요한 의식이 있다면 피너츠의 <위대한 호박이야, 찰리브라운It's the Great Pumpkin Charlie Brown>을 다양한 매체로 감상하는 것이다. 수십 년 동안 보고 읽어왔지만 늘 귀엽고 재미있다. 특히 평소에 그렇게 똑똑하고 세상 근심걱정에 대한 모든 해답을 알고 있는 듯 행동하는 라이너스가 보여주는 ‘위대한 호박’에 대한 지속적이고 전적인 믿음은 아직 아무것도 모르고 순수한 어린아이들이 ‘산타 클로스’를 믿는 것에 버금가는 모습이기에 더 재미있게 느껴진다. 라이너스가 자신을 짝사랑하는 샐리를 꼬셔 함께 호박 밭에서 위대한 호박을 기다리는 동안 다른 아이들은 저마다 유령으로 분장하고 집집마다 돌아다니며 캔디나 초콜릿 같은 것을 회수한다. 물론 우리의 운 없는 찰리 브라운은 돌만 한가득 받았을 뿐이지만.

어렸을 때는 왜 우리나라엔 저런 재미있는 문화가 없을까 시무룩하기도 했다. 어른이 되니 나처럼 생각하고 자란 어른들이 꽤 있었는지 저렇게 똑같이 동네를 돌아다니는 건 아니지만 재미있고 기괴한 모습으로 분장하는 걸 아이들에게 해주기 시작했고, 젊은이들은 밤에 파티를 하게 됐다. 그리고 요즘은 우리나라에서도 핼러윈이 상업화에 꽤 성공한 듯하다. 미국처럼 요란하게 집 전체를 공포체험실로 꾸미거나 하지는 않지만 시즌마다 호박과 마녀 모자, 거미줄, 박쥐, 해골 같은 것으로 분위기를 낸 상점들이 심심치 않게 눈에 띈다. 나도 한때는 분장 좀 하고 홍대며 이태원을 누비기도 했지만 언제부터인가 다 귀찮아졌다. 그런데 올해는 무슨 조화인지 뭔가 분위기를 내고 싶어서 핼러윈 특집 티타임을 가지기로 했다.



우선 소품을 좀 구해봤다. 안타깝게도 동네에서 구할 수 있는 건 굉장히 한정적이었다. 속에 캔디 등을 넣을 수 있는 핼러윈의 대표주자 잭오랜턴 통 선택. 그리고 몇 가지 과자랑 젤리, 사탕을 골랐다. 스누피가 지붕 위에 잠든 집 모양 포트를 꺼내고, 잭오랜턴들을 배치하고...... 여기에 라이너스랑 샐리 피규어만 있었으면 더 딱이었겠구나 아쉬운 마음은 내년 핼러윈 기념 티타임의 힌트.



그나저나 대체 이 축제는 어디서 기인했을까? 본래는 고대 켈트족의 축제로 이들 달력에 있는 한 해의 마지막 날인 10월 31일에 치러졌던 사윈축제에서 기원한다고. 추수를 마무리하고 기르던 가축도 불러들였던 날로 망자들의 영혼이 내세로 떠나기 전 인간세계를 찾는 날이라고 여겨졌는데, 이때 열리게 된 지하세계의 문을 통해서 악마, 악녀, 유령 등이 부록으로 딸려 온다고 믿었다. 따라서 사람들은 이 모든 존재들을 위무함과 동시에 자신들에게 해코지를 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아 모닥불을 피워 제의를 올리고 집 앞에 음식과 술을 차려놓았다. 또한 그들이 인간을 자신들의 일부로 여기도록 기이한 복장을 하고 다녔다. 이런 켈트족의 풍습이 그리스도교에 흡수되는 과정에서 이방인의 풍습을 그리스도교화하라는 방침에 따라 모든 성인의 대축일인 11월 1일 전날인 10월 31일에 점차 현대의 핼러윈 풍습으로 자리하게 된 것이다.

중세 때 제의적 의미가 사라진 핼러윈에서는 이웃에게 음식이나 동전을 베푸는 소울링 풍습이 있었다고 한다. 아이들이나 가난한 사람들이 찾아와 노래를 부르고 망자를 위한 기도문을 읊어주면 답례로 준 것. 19세기 말 스코틀랜드에서 발견된 기록에 의하면 이것이 점차 변형되어 특히 아이들 중심으로 변장하고 집집마다 다니면 음식, 동전, 사과, 견과류 같은 것을 주었다고 한다. 집 주인이 거부하면 더러운 것을 놓거나 낙서나 가벼운 장난을 치고 도망갔다.



핼러윈에 대해 자세히 들여다보고 있자니 우리나라에도 이런 비슷한 문화가 존재했다는 사실을 떠올렸다. 충남 서해안 일대에 있는 섬들에서 이뤄졌던 등불써기놀이가 바로 그것이다.

섣달그믐날, 즉 한 해의 마지막 날이 되면 아이가 있는 집에서는 아이에게 정육면체의 등불을 만들어준다. 해가 기울어지기 시작하면 동산에 올라 일제히 등에 불을 켜고 동네 공용우물로 몰려가 노래를 부르며 물이 마르지 않고 늘 충분하기를 기원한다. 그리고 이때부터 동네의 집집을 돌며 떡과 사과 같은 음식을 자루에 받고 대가로 우물로 가서 축원과 덕담을 해준다. 아 이들은 다시 모여 등을 막대기로 두드리고 노래를 부르며 다시 동산에 올라 납작한 돌로 제단을 쌓고 그 위에 사과와 떡을 잘 차려놓고 풍어를 기원하는 제의를 드린다. 제의가 끝나면 다시 마을로 내려와 남은 음식을 돌려주거나 가난한 집에 골고루 나눠주고 그 집에서는 국과 밥을 지어 아이들에게 대접하며 놀이가 마무리된다.

등불써기와 핼러윈은 절기상 한 해의 마지막이라 여겨진 날에 치러졌다는 것, 전자는 섬에서 생존에 필수적일 물의 풍요와 풍어를 후자는 영혼의 위안을 기원하는 축원의 일종이라는 것, 집집마다 다니며 음식을 얻었고 나중에는 가난한 사람들과 나누는 전통이 있었다는 것, 등불과 잭오랜턴이라는 불의 상징성이 존재한다는 것 같은 공통점을 가졌다.

핼러윈이 미국 문화의 상징이 된 것은 1840년대 중반부터 1850년대 초반까지 아일랜드 기근으로 유입된 1백만 이민자들과 함께 퍼져나가면서부터였다. 초기에는 ‘미국 소년들은 구걸하지 않는다’ 같은 제목의 논설이 발표되는 등 부정적이었지만 현대에 이르러서는 상업적 측면에서도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행사로 자리 잡았다. 우리나라에서는 핼러윈이 점차 상업적으로 중요한 의미를 지녀가지만 등불써기놀이의 전통이 이어지고 있지 않다. 사실 핼러윈 또한 가난한 사람들과의 나눔이라는 의미는 많이 퇴색했고 요즘 세상이 하도 험해서 범죄의 위험도 도사리고 있다니 그런 의미에선 공평한지도 모르겠다.

이런, 티타임 한번 하려다 너무 심각해졌다.


차는 핼러윈 때 향신료를 첨가한 사이다를 마셨다는 전통을 따라 향신료를 첨가한 홍차를 골랐다. 

이제 나만의 핼러윈을 즐길 시간!



너무 상업적으로 의미가 퇴색했다고도 하지만 어찌됐건 미국에서 흥한 이 방식의 문화가 점차 다른 문화권까지 널리 퍼져 나가는 걸 보면 사람들에게 매력적으로 다가가는 것이 분명하다. 만약 내 생에 첫 핼러윈 파티 때 만났던(그는 드라큘라였고 나는 검은 마녀였다) 첫 남자친구랑 헤어지지 않았다면 지금쯤 뭐하고 있었을까 따위의 쓸데없는 생각을 하다가 화들짝 놀라 도리질을 해대고 정신을 차렸다. 



잔을 들어 한 모금 머금은 홍차에선 다채로운 향기와 달콤함이 느껴졌고 티푸드는 잭오랜턴 속에서 골라 쏙쏙 빼먹는 재미가 있었다. 그리고 내년 핼러윈엔 더 ‘늙기’ 전에 나도 무언가 친구들과 기이한 것으로 차려 입고 몰려다니는 파티에 나가봐야겠다고 스리슬쩍 생각하며 티타임을 정리했던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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