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란만장 베트남 열흘

#6 Hanoi Frenzy

by Snoopyholic

라오카이를 떠난 밤기차는 새벽에 하노이에 도착했다.

차장이 깨우는 소리에 부스스 일어나 같은 칸에 탔던 사람들과 시내 쪽으로 돌아왔다.

기차 역을 떠나기 전에 나와 같은 호텔에서 사기를 당한 일행을 만날 수 있었다.

10달러 이상은 결코 되지 않는 방을 20달러에 받았고 투어도 두 배 이상 받았고....그들은 하롱베이 투어까지 사기를 당했다고 했다. 그래서 그곳으로 다시 찾아가 돈을 어느 정도 환불 받을 생각이었다.


이른 아침의 하노이는 참으로 고요했다. 그 흔한 오토바이가 많이 눈에 띄지 않았다는 것이 이른 시간이었다는 증거인가...

아무튼 호텔 앞에서 다시 조우한 우리. 셔터가 내려진 상태라 문을 열 때까지 기다려야 할까 생각하는데 유리 문 너머로 잠든 직원들이 보였고 흥분한 콜롬비아 남자가 셔터를 두드리기 시작했다.


그리고.......두둥~

싸움이 시작됐다.


처음에 내 얼굴을 기억했던 다른 착한 직원이 나는 그쪽과 다른 패인줄 알았는지 나를 호텔 안쪽으로 들이고 뭔가 이야기가 시작됐다. 그러나 목소리가 높아지고 콜롬비안넥타이가 어쩌고 저쩌고......게다가 나중에 나도 한편이라는 것을 알게 되자 상황이 험악해졌다.

나를 호텔로 밀어넣고 그 사이 다른 남자 몇이 달려나갔고 거리에는 패싸움이 시작됐다. 그리고 셔터가 내려졌다. 나는 마치 인질이 되기라도 한 듯 팔장을 끼고 인상을 쓴 남자 둘에 둘러싸여 찌그러져 있었다.


그리고 공안이 나타났지.

정신 차리고 보니 닭장차에 실려 서로 가고 있는 나와 다른 일행들.....아....놔..........꼭두새벽부터 이게 뭔 일인가.....



기분이 더러워질까봐 최대한 유머를 유지하며 같이 가는 일행들과 농담을 주고받았다.

나도 막 이런 일이 언제 또 있겠느냐며 사진 찍고.... ㅡ_ㅡ;;;;;;;;;;;;;;;;

아무튼 그렇게 경찰서에 도착했고 통역이 동참한 가운데...........조서를 작성하기 시작했다.

조금 뒤 호텔 매니저가 왔고 정말 세상에서 그렇게 띠껍고 재수없는 표정은 처음 봤다. 공안 앞에서도 당당했다. 그래도 착한(?) 공안이 조금 몰아치자 뭔가 표정이 어두워지긴 했지만 나중에 둘이 어디론가 슬쩍 나가는 것 같았고 다시 분위기가 바뀌었다.

같이 갔던 통역해줬던 친절한 다른 호텔 직원도 굉장히 황당해하면서 이번 케이스가 진정 혹은 참작으로 접수는 되겠지만 보상을 받기는 힘들 것 같다고 했다.

이렇게 되기까지 장장 9시간 정도가 걸렸다.

지금은 그냥 희미해진 기억에 대충 이렇게 쓰지만.....침침한 공안 건물의 딱딱한 의자에 앉아서 단 한 마디도 알아들을 수 없는 베트남어가 오가고....바뀌어가는 태도들과....아무튼 정말 기분이 더러운 경험이었다.

그렇게 공안에서는 나왔으나 나는 앞으로 호이안으로 가는 버스와 호텔이 걱정이었다.

그런 와중에서도 뱃속에서 울려 퍼지는 장엄한 소리...... '꼬르륵....'

어제 밤기차에서 준 작은 샌드위치 이후 아무 것도 먹지 못한 상황이니 당연한 결과였다.

우리 모두 쓰나미처럼 몰려오는 허기를 처리하기 위해 밥을 먹으러 갔다.



너덜너덜해진 마음을 데워줄 수프와 속을 든든히 채워줄 샌드위치를 먹으며 일행들과 앞으로의 일정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내가 버스와 호텔에 대해 이야기를 하자 고개를 젓던 그들은 마음이 안 좋을 테니 밥 다 먹으면 호텔까지 데려다주겠다고 했다.


돌아간 그곳에는 첫날 나를 호텔로 데려다준 택시 기사가 다른 사람들과 어울려 놀고 있었다.

허허허....


그쯤 되니.......거 참.......


마음 같아서는 상종도 하고 싶지 않았지만 이미 이런 저런 일로 돈을 많이 털린 관계로(내가 사기 당한 금액은 약 200달러에 달했다. 어떤 사람들에게 그 정도의 돈은 크지 않을 수도 있겠지만 박봉의 회사원에게 그건 큰 돈이었고 이 사건은 벌써 수 년 전의 일이므로 당시의 베트남의 물가를 생각해도 꽤 큰 금액이었을 것이다.) 버스와 호텔에 대해서 확인할 필요가 있었다.

띠꺼운 웃음을 지은 그 재수없는 남자가 사파도 제대로 다녀오긴 하지 않았으냐며 버스도 호텔도 거기에 있을 거라고 했다. 호텔은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보일 거라고.


뭔가 기운이 빠져 망연자실 앉아 있는데 호텔 주인이라는 사람이 나타났다.

한국 안산에서 쌀국수집을 한다는 아주머니였다. 그나마 여기에서 가장 맘씨 좋아 보이는 사람이라 뭔가 내 상황을 호소해보려 했지만 그녀는 계속 한국말로 "내 동생 나쁜 사람 아니야"라고만 했다. 한국말도 영어도 못하는 것 같았다.

뭔가 갑자기 서러움에 복받쳐 나도 모르게 아줌마를 붙잡고 엉엉 울기만 했다.

내가 울음을 그치자 아줌마는 물을 한 병 건네며 이것 좀 마시라고....그리고 있다가 버스 시간 되면 짐 맡아 줄 테니까 다시 오라고 했다. 잠시 이런 곳에 짐을 맡겨도 될지...생각했지만 다시 배낭을 메고 맡길 곳을 찾고 이러기엔 이미 내 심신이 너무 만신창이라 그냥 고개를 끄덕이고 밖으로 나갔다.



휘적휘적 걸으며 시장 구경.

그나저나 날씨가 좋지 않았다. 반짝이던 사파의 태양이 그리워졌다. 그리고 여기저기 다니다가 내가 가려는 훼, 호이안 쪽에 태풍이 왔다는 사실도 알게 됐다. 나짱 쪽인가 거기에선 그 이유로 몇 사람 죽었다는 것도.

허허....대체 이게 무슨 일이지.....하기사 경찰서까지 다녀온 마당에 뭐가 두렵겠는가....그러니까 결론은 뭐, 어떻게든 되겠지.....



짐을 찾아 다시 미니 버스에 어디론가 실려가더니 저런 버스에 몸을 실었다.

난생 처음 타보는 이층 침대 버스였다.

헐.

이러다 굴러 떨어지는 것 아닌가?

하기사, 부상을 당하더라도 지금 이 여행의 흐름으로 봐서 하나도 이상할 것 같지 않았다.

버스가 출발한다는 건 태풍이 진정된 것이라는 생각이 들자 이 지긋지긋한 하노이를 드디어 떠날 수 있다는 생각에 뭔가 마음이 안정되기 시작했다.

정말 최대한 빠른 속도로 내가 꿨던 하노이의 악몽으로부터 벗어나고 싶을 뿐이었다.

기사가 불을 끄기 전까지는 앉아서 그날의 나름 광란에 대해서 적어뒀다. 기사가 불을 꺼도 잠 못 들면 어쩌지 떨어지면 어쩌지.........라고 생각하는데 그냥 바로 기절했다.

그.리.고.



눈을 떴을 때 저런 풍경을 마주했다.

나는 내가 아직도 악몽을 꾸는 줄 알고 고개를 흔들었지만 저건 실제상황이었다.

버스가 도로 한복판에 멈췄다.

기사가 뭐라고 막 큰소리로 이야기하기 시작했고 사람들이 일사분란하게 버스에서 내렸다.


밖으로 나가 바라본, 우리가 앞으로 달려가야 할 도로는 창 너머 풍경처럼....

찰랑찰랑 황토 빛 물에 잠겨 강을 이루고 있었다.



to be continu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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