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란만장 베트남 열흘

#7 Hoian Escape

by Snoopyholic

버스에서 내린 남자들은 짐칸을 열고 모든 짐을 꺼내 버스 안으로 넣었다.

아무래도 저 강(?)을 뚫고 갈 생각인 듯했다. 하지만 상대적으로 낮은 곳에 위치한 짐칸에는 물이 들이칠 것이었으므로 젖지 않게 하려고 옮기는 것이다.



저 너머로 보이는 마을은 침수되어 물에 잠겨 있었고 사람들은 배를 타고 이동하는 수준이었다.

다른 외국인 여행자들이 이 근방의 어느 도시에서 수십 명의 사상자가 나오고 어느 마을은 반 이상이 파손됐다는 등 속속들이 피해상황에 대한 이야기를 주고받는 걸 귀동냥으로 들었다.

짐을 안전하게(?) 안쪽으로 다 싣자 버스가 다시 출발했다.



강이 됐던 도로를 잘 따라 나아간 결과 다시 건조한 도로를 만날 수 있었다.

훼는 물에 잠긴 적도 없는 것 같았다. 그래, 호이안은 이번 여행의 하일라이트이자 내가 가장 보고 싶던 베트남의 도시였는걸. 나는 훼가 이 정도라면 호이안도 괜찮겠거니...... 그냥 안심하고 있었다.

푸하하, 안심이라니.............이번 여행에서 안심 같은 말은.........정말 어울리지 않는 말이었다.


마침내 버스가 호이안에 멈췄고 나를 내려줬다.


나는 지도에 표시까지 된 호텔 바우쳐를 들고 호텔을 찾으려 했다. 문제는 그런 곳이 없어 보인다는 데 있었다.

근처에 보이는 아무 호텔에나 들어가 물어봤지만 이런 곳은 없다고 했다.

하는 수 없이 하노이 호텔에 전화를 걸었다. 그는 갑자기 영어를 못 하는 척했다. 나는 답답해서 전화기를 호텔 프론트에 건넸다. 그리고 대화가 오갔다. 뭔가 내 앞의 직원 목소리가 높아졌다. 그러더니 전화를 쾅 끊는 것이 아닌가!

"이런, 미안해. 재수없게 질 나쁜 사람한테 걸린 것 같아."

"무슨 소리야?"

"그 호텔은 없는 호텔이라는 거야. 그래서 그게 무슨 소리냐고, 그럼 이 사람은 어떡하냐고 물었더니......"

"뭐래? 말해줘."

"그게 무슨 상관이냐고, 알아서 하겠지....그래서 내가 뭐라고 하니까 이 사람이 오히려 왜 한국 사람을 돕느냐면서......."

"......."

"나쁜 베트남 사람이었어....정말 너무 미안해......"

그녀는 말끝을 흐렸다.

나는 무슨 소리냐고 미안해하지 말라고 하면서도 머리를 한 대 쾅 얻어맞은 것 같았다.


끝까지.................................................................................................아..........................놔......


방이 있느냐고 했더니 지금 수해를 입어서 방이 없다고 했다.

이건 또 뭔 시츄에이션인가......

내가 울 것 같은 얼굴이 되자 우리 집에라도 와서 묵겠느냐고 했다.

나는 찬밥 더운 밥 가릴 겨를이 아니었다. 그래서 알겠다고 하고 숙소를 정했다.


"지금은 전기가 안 들어와.....물은 나왔다가 안 나왔다 하는데..... 저녁쯤엔 복구 될 거라고 했는데 어떻게 될지 모르겠다. 짐 내려놓고 좀 다니다가 네시쯤 이쪽으로 와. 그럼 바로 방으로 안내해줄게."



우선 밥부터 먹었다.

이때만 해도 상황이 그렇게 나빠 보이지는 않았다.

아무튼 음식점이 운영중이었고...음식과 맥주는 맛있었으니까.



하지만 다니면 다닐수록....자연의 난폭함이 할퀴고 지나간 잔해로 뒹구는 도시는 내가 상상했던 보름달 아래 풍등을 날리거나 불이 붙은 등들이 강을 떠다니는 낭만적인 모습과 거리가 멀어 보였다.

내 눈앞의 풍경을 믿을 수가 없었다.

마치 누군가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겠다고 휴가 내서 여기까지 와서 이런 꼴을 당하고 있느냐고 약올리는 목소리로 속삭이는 것도 같았다.



관광 중심지 쪽으로 가니 그나마 도로의 쓰레기는 치워졌지만 전기는 들어오지 않은 상태였다.

그래도 다들 살아보겠다고 잔해를 치우기 위해 어두운 상점 안에서 고군분투 중이었다.

동네 개들만 지금 일어나는 상황이 자신들과는 상관 없다는 듯 꽤 느긋해 보였다.



저녁이 되니 전기가 들어왔다!

내가 묵게 될 집은 꽤 근사한 주택이었다. 저녁을 때우려는 심산으로 산 바나나 잎 밥이랑 리치랑 망고로 포식하고도 시간이 너무 일러 뻘줌한 기분이 들었고 혼자 있자니 뭔가 우울한 기분도 들어서.....밖으로 나왔다.

집 근처에 쿵쾅거리는 음악 소리를 따라 가니 바에 나 같은 여행자들이 북적북적...

맥주 두 병 마시며 네덜란드와 프랑스에서 온 여행객들과 어울려 놀다가 귀가했다.

너무 더워서 창을 열어둘 수밖에 없었는데.....선풍기도 틀고.....밤새도록 점점 늘어나는 파리와 모기에 시달렸다. ㅠㅠ



밤새 해충(!)들에 시달린 뒤 창이 밝아오는 것을 보며 퀭한 눈으로 밖으로 나와 아침을 먹으러 갔다.

도시는 여전히 복구에 정신이 없어 보였다.

뭔가 슬프고 우울함은 틀림없는데 기이하게도 음식이 끝내주게 맛있었다.

너무 너무 너무 맛있어서 위장이 하나밖에 없는 것이 슬펐을 지경이었다.



일에 집중하는 사람들을 바라보다가.....다시 또 한참 황폐한 느낌의 도시를 거닐다가.....

내 다리고 팔이고 모기에게 꽤 많이 뜯겼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그러고 보니 파리들이 나를 귀찮게 하는 횟수도 전날보다 훨씬 늘었다. 파리와 모기의 창궐인가.....

가려움과 통증이 나를 공격했고 모기독 알레르기가 있는 나는 괴로움에 몸을 부르르 떨며 사파에서 산 초록색 기름을 붓다시피 해서 발랐다.

점심쯤 호텔에 돌아왔는데 다들 밥을 먹고 있는 것이 아닌가!!

분명 아침을 푸짐하게 먹었는데 위장은 염치도 없이 음식을 요구해댔다.

다행이 다정한 그녀들이 나를 식사에 초대해줘서 베트남의 가정식을 맛볼 수 있었는데..................

으아......................

진짜 내가 여태 먹은 베트남 음식은 가짜였다고 말하기라도 하는 듯.................

음청나게 맛있었다.

식사를 마친 후, 처음 이곳에 도착했을 때 나를 도와줬던 베트남 천사 그녀에게 다시 도움을 요청했다.


아무 비행기나 있으면 알아봐달라고....


난 너무 지쳐버렸다. 솔직히 이번 여행에 있어서 하일라이트가 되길 바랐던 곳이 이 호이안이었다. 랜턴 축제를 보고 나도 예쁘게 불을 붙인 랜턴을 강물로 흘려 보내며 힐링하고 싶었다. 하지만 원상복구가 시급한 이 도시에서 그런 아름다운 축제를 기대하는 것은 불가능해 보였다. 이쯤되니 사이공으로, 호치민으로 그냥 가고 싶었다. 거기서 그냥 푹 쉬다가 돌아가고 싶었다.

당연히 당일에 사는 비행기는 비쌌지만.....그래도 재해 속에 남아 있는 것보단 탈출이 나은 옵션으로 보였다. 그래서 나는 비행기를 예약하고, 그녀가 불러준 '정상적인' 택시를 타고 공항으로 갔다.



잘 있거라, 호이안....

너도 나도 서로 만신창이가 된 모습만 보여줬구나....

우리 다음에 멀쑥한 모습으로 다시 만나자!!!



to be continu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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