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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noopyholic Jul 27. 2016

Eurythmics_ Sweet Dreams

Barcelona

그 아이를 처음 만난 것은 암스테르담 국제공항, 스키폴에서였다.

히피 같은 머리 스타일에 선이 고운 얼굴을 가진 청년이었다. 

하지만 무엇보다 나의 눈길을 끌었던 것은 그의 가방 위에 얌전히 놓인 스누피 인형이었다.

주변 사람들로부터 널리 ‘스누피 덕후’ 인증을 거친 나에게 주황색 티셔츠에 파란색 바지를 입은 스누피 인형은 눈을 떼기 힘든 물체였기 때문이다. 게다가 내 손에는 공항을 스르륵 둘러보다가 예뻐서 거부하지 못하고 덜컥 사들인 스누피 틴케이스 초콜릿 한 상자가 들려 있었다.

어떤 과정을 거쳐 저 근사한 스누피와 여행하게 됐는지 묻고 싶었지만 딱히 낯선 사람에게 마구 말을 거는 것이 부끄럽기도 해서 그냥 가만히 옆에 앉아 흘끗거리며 감상하고 있었다.

때마침 타려던 비행기에 대한 방송이 흘러나왔는데 아무리 기다려도 영어가 들리지 않았다. 

오직 뜻을 알 길 없는 네덜란드어와 스페인어로만 열심히 떠들어댈 뿐. 

나의 혼란스러운 표정을 읽은 히피 청년이 영어 할 줄 아느냐고 묻더니 내용을 설명해줬다. 

자연스럽게 우리 대화의 물꼬도 터졌다.

스누피는 일본의 벼룩시장에서 발견, 데리고 오는 길이라고 했다.

‘대체 이 여자는 왜 나와 스누피를 흘끔거리나’ 했다가 내 손에 들린 틴케이스를 보고 이유를 알았다며 웃는 모습이 참 귀여웠다.


“바르셀로나는 무슨 일로 가는 거야?”

“응, 카미노 데 산티아고라는 순례자의 길을 가려고 하는데, 그 전에 신나게 놀다가 가려고.”

“얼마나 있을 건데?”

“글쎄... 한 나흘 정도?”

“야, 그 정도는 터무니없이 짧은 시간이야. 어디 묵을 곳은 정했고?”

“친구가 재워주기로 했어. 나흘이면 짧은 시간이지. 다시 오지 뭐.”

“말은 쉽지.”


우리의 대화는 냇물 흐르듯 재잘재잘 흘러갔다.

그리고 탑승시간이라는 종점에 닿았다. 자리가 한참 떨어져 있었던 것이다.

마침내 바르셀로나에 닿고 컨베이어벨트를 노려보며 짐이 나오길 기다리는데 그가 내 옆으로 오더니 전화번호가 적힌 종이를 내밀었다.


“심심해지면 전화해. 내가 진짜 바르셀로나를 보여줄게.”


윙크를 날리고 총총 걸어가던 그의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공항에서 나를 마중 나온 친구를 만나 집으로 가면서 7년 만에 발을 디딘 도시의 공기가 반가워 숨을 깊게 들이쉬느라 그 아이는 잠시 잊혀졌다.

처음 이틀은 구엘 공원과 구시가지, 박물관을 둘러보며 혼자서 시간을 보냈다. 조금 쓸쓸한 기분이 들기도 했지만 친구는 너무나도 바빴고 나는 정말 심심해지고 말았다. 그래서 충동적으로 공중전화를 찾아 동전을 넣고는 외투 주머니에 있던 전화번호가 적힌 종이를 꺼내어 번호를 꾹꾹 눌렀다.

그 아이를 다시 만나러 가는 길의 햇살을 기억한다.

주홍빛의 투명한 햇살이 세상을 뒤덮었고 그 빛의 결을 따라 그림자들이 길게 늘어져 저마다의 주인을 따라 움직이고 있었다. 기다란 나의 그림자를 바라보며 나도 저렇게 날씬하고 길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데 다른 그림자 하나가 성큼성큼 다가와 내 그림자와 만났다.


“Hola.”


내 양 볼에 키스하는 그 아이.

우리는 라 람블라스 거리를 걷기 시작했다.

여행객들과 현지인들과 거리의 예술가들이 뒤섞여 이 거리를 더욱 매력적으로 만들었다. 

그 아이는 그저 일반 관광객인 나였다면 가보지도 못했을 골목의 작고 아늑한 바로 나를 이끌었다. 

그곳에서 시원하게 맥주를 마시며 그의 일본 여행 이야기를 들었다. 다음으로는 고풍스럽지만 시끄러운 바로 들어가 예술가들이 즐겨 마셨다는 압셍트를 마시며 인생과 예술에 대해 떠들었다.

독주를 채웠던 잔이 비워지자 우리는 디스코떼까로 흘러들었다.

텅 빈 댄스 플로어는 꽤 인기 스포트라는 그 아이의 말을 무색하게 했다. 

어깨를 으쓱하며 바라보자 내가 무슨 말을 하려는지 안다는 듯 그가 귀에 대고 말했다.


“지금부터 한 시간 동안 사람들이 들이닥치기 시작할 거야. 잘 지켜보라고!”


솔직히 나야 댄스 플로어가 들어차든 말든 크게 상관없는 일이었다. 

그냥 의자에 앉아 음악을 들으며 레드불 위스키를 홀짝이는데 DJ가 마음에 드는 음악을 틀었다. 



몽환적인 신디사이저의 연주 위로 파워풀한 여성 보컬이 달콤한 꿈에 대해서 말하는 노래였다. 

몸이 저절로 일어나 춤을 추며 텅 빈 댄스 플로어로 나아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흐느적거리며 달콤한 꿈에 젖어드는 걸 몸으로 표현했다. 

파랑과 보라가 쉴 새 없이 반짝이는 조명과 어둠 어느 사이에서 사라져버린 것 같은 기분......     


달콤한 꿈은 이런 걸로 이뤄졌지.

내가 누구에게 반박할 수 있겠어?

난 세계와 7대양을 여행했어.

다들 뭔가를 찾고 있지.     

그들 중 누군가는 널 이용하고 싶어 하고,

그들 중 누군가는 너에게 이용당하고 싶어 해.

그들 중 누군가는 너를 악용하려 하고,

그들 중 누군가는 악용당하고 싶어 하지.     


나 또한 많은 바다를 건너며 넓은 세계를 봤다. 

길 위에서 만난 모든 사람들은 그곳이 어디냐와 상관없이 저마다의 무언가를 갈구했다.

나를 도와준 사람도 있었고 내가 도움을 준 사람도 있었다.

나를 곤경에 빠뜨린 사람도 있었고 내가 민폐를 끼친 사람도 있었다.

결국 인생은 그런 것 아니겠는가? 

무언가를 갈구하는 인생들이 부딪히면서 수많은 일들이 일어나고 좋은 일도 나쁜 일도 다 생기기 마련.

이런 현상은 살아 있는 동안 계속 반복될 일이 아니던가.

유리드믹스는 그러니까 머리를 들고 깨어 있으라고, 멈추지 말고 앞으로 나아가라고 충고했다.

그러니까 결국 그들이 이야기하는 달콤함 꿈들이란 인생 자체가 아니었을까.

세계와 7대양을 돌고 보니 세상 사람들이 하는 일이란 결국 다 같은 거더라고.

다들 뭔가를 찾고 있으니 그걸 이루기 위해서는 널 이용하고 악용하는 것도 서슴지 않을 거라고. 

그리고 너 또한 무심코 누군가를 이용하거나 악용할 수 있다고.

그러니까 고개를 세우고 정신 바짝 차리고 나아가라고. 

모든 것을 초월한 사람마냥 노래로 불러주는 그들의 메시지가 너무나도 강렬하게 내 머릿속으로 날아와 박혔다.

어느새 음악이 바뀌었고 주위를 둘러보니 댄스 플로어는 그 아이 말대로 정말 많은 사람들로 가득 차 있었다. 

우리는 서로를 마주본 채 그야말로 밤새도록 수많은 음악에 맞춰 춤을 췄다. 

하지만 그 밤의 기억은 ‘Sweet dreams are made of this’ 하나로 이루어져 있을 뿐.

그날 이후 나는 그 아이와 함께 바르셀로나라는 아주 달콤한 꿈을 무려 열흘이나 더 꿨다.


세월은 무심히도 계속 흘러가고 무언가를 갈구하는 사람들과 어우러져 나 또한 무언가를 갈구하는 인생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 

그 시간의 길 어디쯤 ‘Sweet dreams are made of this’를 다시 만나면 어느새 스누피 인형을 가방 위에 올려두었던 그 아이와 텅 빈 댄스 플로어에서 춤을 추던 바르셀로나의 밤으로 돌아가게 된다.

그리고 슬쩍 (마음으로만) 안부를 묻는 것이다.


‘헤이, 잘 지내?’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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