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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noopyholic Aug 03. 2016

Dreams Come True_ LoveLoveLove

奈良Nara

그의 직업은 라디오 사운드 엔지니어였다. 

사실 그게 정확한 표현인지는 잘 모르겠다.

기계와 소리가 연관된 영역이었고 스팅, 에미넴, 마돈나, 매시브 어택...... 이름만 들어도 알 만한 뮤지션들과 작업을 했다는 것 정도가 내가 아는 그의 경력이었다. 

다양한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소리를 만지는 그의 기술을 원했기에 그는 자주 인도나 호주 같은 곳으로 출장을 다니곤 했다. 

나는 잘 모르는 어느 뮤지션과의 작업이 그에게 골든 디스크 수상의 영광을 선사하기도 했는데, 그의 벽 어느 한 면에서 홀로 반짝이던 음악 관련 영화나 다큐멘터리에서나 볼 수 있었던 액자 속의 금색의 둥근 그 물체가 지금도 꽤 또렷이 기억난다.

원래 그의 꿈은 작곡가이자 프로듀서였다. 

다른 누군가가 이미 만들어놓은 소리를 더 나은 형태로 만지는 것이 아니라, 직접 곡을 만들고 벼락처럼 찾아드는 영감에 써두었던 가사를 붙이고 그걸 가장 아름다운 형태로 매만져 세상에 내놓는 것 말이다. 

아마도 그는 자신의 음악이 세상을 감동시키고 더 많은 금색의 둥근 디스크를 자신의 벽으로 불러들일 수 있을 것이라고 믿었던 것 같다.

한참 지난 뒤의 일이었지만 그는 내게 어떤 영감을 가지고 히드로 공항의 게이트 벤치에 앉아 한 시간 만에 노래 가사를 완성하고 뭄바이로 향하는 비행기 안에서 곡을 붙여 하나의 노래를 완성했는지에 대해서 들려주었다. 노래에 피쳐링으로 들어갈 래퍼를 찾다, 찾다 못 찾아 자신이 직접 랩을 넣었다는 이야기는 그 곡을 들을 때마다 생각났다. 

그러고 보면 내 귀에 들리는 래퍼의 목소리와 내가 아는 그의 목소리의 교차점을 찾느라 골몰했던 시절이 있기는 했구나.

하지만 삶의 현실이란 우리들이 가진 대부분의 꿈에 대해 난폭한 폭군에 가깝다. 

그가 만들어 세상에 내놓은 음악은 끝내 사람들로부터 선택받지 못했다.

그는 자신의 꿈을 관철시키려고 노력을 계속하는 대신 음악 다음으로 열정을 키워왔던 사진으로 경로를 변경했다. 

그쪽에도 꽤 재능이 있었는지 전자제품 S사, 영국 공기업, 자동차 F사 같은 유명한 회사들이 그에게 사진 작업을 의뢰해왔다. 

그는 이런 상업적인 사진 작업을 진행함과 동시에 여행을 통한 자신만의 작품세계를 만드는 데 노력을 아끼지 않았다.

내가 그와 만나게 된 것도 그 즈음의 일이었다.

그가 찍은 근사한 작품들에 홀딱 반하게 됐고 스리슬쩍 그의 일본 여행에 동참하게 됐다.

당시의 나는 비밀리에 포토그래퍼의 꿈을 키워오고 있었기 때문에 굉장히 좋은 기회라는 생각이 들었다. 

언어와 문화를 전혀 모르는 그를 도와주고, 나도 좋아하는 사진을 실컷 찍으며 유능한 작가의 영업비밀을 캐내겠다는 의지에 불타올랐다고나 할까.

사진을 찍는 여행이니만큼 발이 자유로워야 한다는 생각에 한 달이라는 시간 동안 우리는 차를 렌트해서 다녔다. 

차를 빌릴 때 우리가 가장 먼저 본 것이 CD 플레이어가 장착되어 있는가, 였다. 

로드 트립에 음악이 빠지면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어느 도시나 마을을 통과할 때에 하나씩은 꼭 있던 중고 CD 숍(그렇다, 이때는 디지털 카메라의 시대가 아니라 필름 카메라의 시대였고, MP3가 이미 막강한 힘을 자랑하고 있었지만 그래도 CD를 사려는 사람들이 여전히 많던 시절이었다)에서 각자 취향에 맞는 것들을 골라 번갈아가며 틀고 다녔다.

사람이나 문명의 흔적이 별로 없는 산골짜기이거나 환상적인 일몰이 예상되는 어느 도로 한복판에서 보내야 하는 시간이 많았던 만큼 차에서 기다려야 하는 시간도 많았기에 차에서 음악을 들으며 낮잠을 자거나 에어컨을 틀어 놓고 시간을 견디는 일이 종종 있었다. 

그래서 듣고 또 듣다 보니 CD들은 자주 싫증이 났고 그런 때에 우리는 라디오를 틀었다.

아마 그 날도 어디선가 사진을 실컷 찍은 뒤에 나라로 향한 길이었을 것이다. 

사실 일몰 지점을 찾을 수 없어서 나라의 분위기를 파악해보자며 달려온 참이었다. 

하지만 러시아워에 걸려들고 말았다. 

우리가 나라를 시골의 어느 한 도시겠거니 무시(?)해버린 벌을 받은 것이라고나 할까. 

작은 도시의 안쪽 좁은 길이었는데도 자동차들이 꽉 들어차 있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태양이 주홍빛으로 물들어가고 있었고 고즈넉한 도시의 분위기와 어우러져 어디 위치만 잘 잡으면 꽤 근사한 사진을 건질 수도 있을 것 같았다. 

옆에서 긴 길을 운전해온 그는 기다란 손가락에 신경질을 담아 운전대를 두드렸다.

옆에 앉았던 나는 그저 어깨를 으쓱하곤 조용히 창밖의 풍경을 바라볼 수밖에.

길 한가운데로 조용히 냇물이 흐르고 그 양쪽으로는 올벚나무들이 부드럽게 가지를 내리고 바람결을 따라 흔들리고 있었다. 

그 사이사이를 홍시빛깔 햇살이 들락거리며 어루만졌다. 

봄이 오면 저 가지가지마다 하얗고 분홍인 벚꽃이 피어날 거라고 상상하니 너무 아름답다는 생각에 혼자 기분이 좋아져 눈을 감은 순간, 라디오에서 백파이프 소리가 들리더니만 어떤 노래가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있잖아, 대체 왜 진짜 정말로 좋아한다는 사실을

그저 전하고 싶을 뿐인데, 루루루루루

잘 말이 나오지 않는 걸까?     


너무나 사랑하는 사람에게 그저 사랑한다는 것을 표현하고 싶은데 그게 잘 되지 않고 엉뚱하게 표현될 때 정말 속이 상했다.     


있잖아, 적어도 꿈속에서는 만나고 싶다고 기도하는

밤이라도, 한 번도, 루루루루루

나타나주지를 않네     


옆에 있어도 보고 싶고 그립다는 말을 처음으로 이해하게 해준 사람. 온종일 붙어 있어도 꿈에서 다시 만나고 싶었던 사람.     


있잖아, 대체 왜 너무나 사랑하는 사람에게

사랑한다고 말하는 것만으로도, 루루루루루

눈물이 터져버리는 걸까?     


사랑한다고 말하면 도망가버릴 것을 알았기에 나에게 그 말은 금기어 중에 하나였다.

그래서 나 혼자 그가 곤히 잠들면 그런 그를 향해 혼자서 사랑한다고 정말 사랑한다고 고백하곤 했다. 

어떤 날은 쓸쓸한 고백 뒤에 눈물이 터져 퉁퉁 부은 눈으로 아침을 맞이하기도 했지.     


우리가 처음 만났던 날이 조금씩 추억이 되어도,

사랑해, 사랑해, 루루루루루     


처음 눈이 마주치고 우리의 얼굴에 미소가 떠오르던 그 날, 이제는 마치 먼 옛날에 일어난 일같이 느껴지는 날.


요시다 미와는 자꾸만 사랑한다고, 사랑한다고, 그런데 왜 눈물이 나는 거냐고 물었다.

내 눈에도 뜨거운 눈물이 고이기 시작했다.      


LOVE LOVE 사랑을 외치자, 사랑을 부르자     


사랑을 외치는 대신 나는 눈물을 흘렸다.

사랑하지만 사랑을 표현해서는 안 됐으므로.

눈물을 보일 수 없어 나는 창 쪽으로 몸을 웅크리고 눈을 감았다.

하지만 좁은 차 안에서는 무엇이든 숨기기가 쉽지 않았다.   

  

“너 우는 거야? 괜찮아?”

“아, 어, 봤구나. 그냥 이 노래 엄청 슬픈 노래라서.”

“그래? 뭔가 Love라는 말이 들리기에 사랑 노랜가보다 하긴 했지. 무슨 내용이야?”

“한 여자가 한 남자한테 사랑한다고 말하지만 그 남자는 그냥 떠난다는 이야기야.”

“좀 그렇다. 여자는 정말 마음 아프겠네.”

“응......”     


LOVE LOVE 사랑을 외치자, 사랑을 부르자

LOVE LOVE 사랑을 외치자, 사랑을 부르자     


이 노래가 끝나자 나긋한 목소리의 DJ가 전혀 기억이 나지 않는 다른 노래를 틀었다. 

앞 유리창을 가득 메운 하늘은 자꾸만 더 붉게 물들어갔다.

기나긴 자동차의 행렬은 여전히 움직일 기미를 보이지 않았던 어느 해질녘의 기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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