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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noopyholic Aug 24. 2016

RedHotChiliPeppers_ Otherside

Adventure Tours Australia

벌써 십 년도 더 넘은 일이지만 여행 가이드북을 업데이트하는 일을 한 적이 있다.

책에 실린 장소들을 직접 찾아다니며 정보를 수정하거나 없어진 곳이 있다면 대체할 곳을 찾아 채워 넣는 일이었다.

호주는 나름 대륙이었기 때문에 세 사람이 분량을 나누어 취재하기로 했고, 내가 맡은 부분은 중간 부분이었다. 중간 지역이 꽤나 넓은 지역을 포괄하고 있었기에 타스매니아를 포함하는 대신 울룰루 북쪽은 포기했다.

일하러 간 거였지만 나의 피는 뜨거웠고 그 일을 택한 이유도 여행하면서 일할 수 있기 때문이라는 점이었기에 나는 나의 이유에 매우 충실하게 행동했다. 

그때는 무슨 일이 일어나는 건지도 몰랐지만 지금 되돌아보면 정말 스펙타클했던 시간이었음을 부인할 수 없다. 

현지인들과 어울려 놀다가 멜번의 근사한 야경이 한눈에 내려다 보이는 초고급 아파트나 개인 풀장이 있는 저택에서 열리는 프라이빗 파티에 초대된 일이며, 바에서 만난 보트 가진 동네 아저씨랑 배 타고 나가 클레이피시를 건져 올려 집으로 가져와 요리해 한 마리를 앉은 자리에서 해치운 일이며, 말로만 들었던 오리너구리를 이른 새벽 난생 처음으로 카약킹하다가 조우한 일이며, 차 없는 도로에서 투어에 같이 갔던 미국인 친구랑 철퍼덕 누워 데굴거리며 까르르 웃었던 일이며......

그냥 미쳤던 것 같다.

물론 처음부터 이랬던 것은 아니다. 

그때는 아직도 인종차별이 남아 있는 그곳에서 호스텔 주인이 내가 동양인이라는 이유로 AU$2 더 받질 않나 못되게 구는 바람에 대체 왜 날 미워하냐며 엉엉 울은 적도 있었을 정도였다.

하지만 여기서도 적응력 빠른 나의 천성이 빛을 발했다. 

나는 고유의 유들유들한 방식으로 그들의 고약한 차별에 대응했다. 

그러면서 차츰 나의 취재에 웃음과 재미와 스릴과 흥미진진이 가미되게 된 것이다.

자동차 없이 취재를 다니는 일이 쉽지 않았지만 다양한 투어 상품이나 고속버스 시스템이 잘 갖춰져 있어서 나는 내 일을 잘해나갈 수 있었다. 

투어 상품의 경우 버스를 타고 며칠 동안 같은 사람들과 이동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나의 경우 취재하는 동안 타스매니아, 애들레이드에서 캥거루 섬, 앨리스 스프링스와 울룰루까지 총 세 번 투어 버스를 이용했다. 

이동 시간이 긴 만큼 드라이버이자 투어가이드가 틀어주는 음악이 굉장히 중요했는데 이들은 모두 프로들이라서 갖춘 음악의 양도 방대했다.

나는 그 투어들을 통해 다양한 뮤지션에 대해서 알게 됐는데 그중 하나가 Red Hot Chili Peppers였다. 

특히 Otherside의 경우 그 특유의 뭔가 일어날 것 같은 음울한 짧고 굵은 기타 전주 후 바로 이어지는 앤소니 키에디스의 뭔가 호소하는 듯한 목소리가 매력적인 노래였다.



신기했던 건......

투어는 굉장히 다양한 사람들로 구성되기 마련이다. 

유럽인, 북미인, 아시아인, 여자, 남자, 중년, 십대, 청년......어린이 빼고는 다 있었는데 어떤 우연의 일치인지 몰라도 모든 투어에서 이 노래만 나오면 모두들 떼창을 해댔다. 

첫 부분을 따라하다 마는 사람, 후렴을 따라하는 사람 등 다양했지만 열심히들 불렀다. 

사실 노래를 파고들어보면 굉장히 우울한 내용이다. 멤버들이 마약 중독으로 힘들었던 시절의 이야기라고 하니 말 다했다. 하지만 누구나의 인생이든 한번쯤 빠지지 말아야 할 것에 빠져들어 허우적거리는 시절은 있는 법.     

얼마나 더 얼마나 깊이 빠져들어갈까

내 곁을 떠나

난 말이야, 난 그게 나쁘다고 생각하지 않거든

내 목을 그으면 

그게 전부     


중독에 허우적거릴 때 가장 괴로운 건 사실 자신도 나쁘다는 것을 아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죽고 싶다는 생각도 서슴지 않고 하게 된다.     


사진 속에서 네 목소리를 들었어

내 과거를 불러올 거라고 생각했지

네가 다시는 돌아갈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된다면

나는 저편에 있는 게 낫겠지     


힘들 때 사랑하는 사람의 모습을 사진에서 보면 그 사람도 그러지 말라고 충고하는 것 같다.

좋은 시절을 생각해서 그러지 말자고 결심도 해보지만, 이제 사랑하는 사람도 내가 이렇게까지 돌이킬 수 없이 망가졌다는 것을 안다면 이편이 아니라 저편에 있는 게 낫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물론 여기서 말하는 저편이란 죽음이라기보다는 현재 이렇게 허우적거리는 상태가 아닌 다른 어떤 상태를 말하는 것이라고 믿고 싶다. 

그래야 사랑하는 사람을 잃지 않을 수 있을 테니까.     


날 기분 좋게 해줘, 날 거칠게 태워줘

날 타오르게 해줘, 날 저편에 떨어뜨려줘

난 소리치며 그건 내 친구가 아니라고 말하지

난 망가뜨리고 무너뜨리려

그럼 그건 다시 태어나     


노래는 계속 그렇게 중독에서 허우적거리느라 벗어나지 못하는 자신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것이 주는 기쁨과 환희를 이야기했다가도 정신을 번쩍 차리고 그건 친구가 아니라며 그 생각들을 무너뜨리고 망가뜨리며 저항하지만 결국 나쁜 유혹이 고개를 들고 다시 나타난다며 대체 언제 이곳에서 벗어날 수 있을지 모르겠다며 노래는 끝을 맺는다.

어떻게 보면 우리도 다 그렇지 않은가?

혹독한 대가를 치러야 함을 알지만 그 순간만은 황홀함에 젖어 다른 모든 것을 잊게 해주는 존재가 있다면 걷잡을 수 없이 빠져들 가능성이 높은 유약한 존재들이 아닌가. 

이번이 마지막이라고 생각하면서 기왕 그렇다면 더 철저한 쾌락을 느끼고 싶어 하지 않는가. 

그러면서 그 쾌락 속에 계속 남을 수 있다면, 하고 바라지 않는가.

아무리 어두워도 우리가 이 노래를 좋아할 수밖에 없는 건 어쨌든 우리는 ‘저편’에 대한 꿈을 꿀 뿐 여전히 ‘이편’에 남아 유혹들과 밀당하며 생존해 있기 때문이다.

어쨌든 그런 노래를 열심히 떼창하며 호주를 쏘다녔기 때문인지 결국 나는 여행 중독자의 길로 들어서고 말았다.

서호주를 취재하기로 했던 사람이 계약을 파기하고 사라지는 바람에 내가 그곳을 커버하게 된 것이다. 

그때에도 투어 버스를 적절히 활용했는데 Otherside는 여전히 단골 떼창 노래였다.

그리고 이후 십 년은 정말 ‘빡세게’ 어디 정착하지 못하고 떠돌았다.

이제 더 이상 여행이 주는 쾌락만을 추구하며 살지 않는다. 

그렇다고 여행을 포기한 것도 아니다. 

이편도 저편도 아닌 다른 그 어딘가에서 나의 위안을 찾았다고나 할까.

하지만 이 노래를 들을 때마다 광활했던 호주 대륙을 좌충우돌 쏘다니며 지냈던 시간이 그리워지기도 한다.

그립다는 건 다시는 그렇게 똑같이 돌아갈 수 없으리란 걸 알게 됐단 사실임을 어쩔 수 없이 떠올리며 최큼 슬퍼하다가도 그러므로 다행이라고 마음을 쓸어내리기도 하는 건 노래를 들어온 시간의 내공이 내게 남긴 선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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