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Snoopyholic Sep 01. 2016

Alice DJ_ Better Off Alone

Seoul서울

그 남자와 헤어졌다. 사귄 지 1년 하고도 반 년 만의 일이었다. 

그는 우리의 마지막 대화에서 이렇게 뭔가 삐걱거리다가 대화로 다시 괜찮아졌다가 다시 삐걱거리다가 하다가 결국 우리가 헤어지고 말 거라고 말했다. 

나는 그에게 세상의 모든 관계가 삐걱거리는 것이 당연한 거라고, 다만 우리에게 필요한 건 관계에 대한 믿음이자 신념이며 대화를 통해 합의점을 찾고 관계를 이어가는 거라고 말했다.

그러자 그가 나에게 되물었다.


“너 지금 나에게 세상에 완벽한 사랑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하는 거야?”


조금 당황스러웠다. 

그래도 나는 참을성을 가지고 차근차근 설명했다. 우리의 관계에 대해서 좀 더 노력해보고 싶다고. 

하지만 그의 의지 또한 확고했다. 자신은 잘 모르겠다고. 너를 놓친 것에 대해 오래도록 후회할지도 모르지만 이제 우리의 미래에 대한 확신은 들지 않는다고. 

막다른 골목이었다. 나는 맥이 탁 풀리고 말았다.

헤어졌다고 말하니 사람들이 괜찮으냐고 물었다. 나는 자연스럽게 대답했다.     


“아니, 안 괜찮지. 이따금 멍하고 무엇보다 가슴이 아파. 아직은 아무 일도 잘 손에 잡히질 않네.”     


정말 그랬다. 특히 처음 며칠은 참 많이 울었다. 눈은 계속 퉁퉁 부어 있었고 방바닥에 굴러다니는 휴지 더미가 점점 세력을 확장해나갔다.

가장 힘든 것은 밤이었다. 

자꾸만 목소리가 너무나도 듣고 싶어지는 거다. 

얼굴이야 사진이 잔뜩 있었으니 그걸 보면 그만이었지만 목소리는 어떻게 해결이 안 됐다. 

이런 때를 대비해서 동영상이라도 찍어놓을 걸 그랬다고 생각했다가도 세상에 헤어진 뒤 그리워질 걸 미리부터 생각해서 준비하는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까, 이런 말도 안 되는 생각이나 하니까 이렇게 헤어져버린 게 아니냐....... 혼자서 이 생각 저 생각에 마음이 더 심란해졌다.

하지만 그 수만 가지 생각들은 깔때기처럼 하나의 결론으로 모아졌다. 

무슨 이유에서든 헤어지기로 결심했으니까 다시 연락하는 일 같은 것은 해서는 안 된다!

책을 읽거나 그림을 그리거나 새로 장만한 귀여운 미니 서예 세트로 글씨를 쓰거나 일기장에 나의 모든 감정을 몇 쪽에 걸쳐 퍼부어 놓거나 평소에 계획만 하고 실행은 하지 않았던 글들을 머릿속에서 끄집어내서 마구 써내려가거나 수년 혹은 수개월 미뤄만 왔던 일들을 착착 진행하거나 평소에 잘 하지도 않던 공부를 열심히 한다거나.......

정말 나의 정신을 어디론가 따돌릴 수만 있다면 그 일을 다 열심히 해냈다.

그랬더니 정말 다행이도 눈물이 조금씩 잦아들기 시작했다. 방바닥에 굴러다니던 휴지들을 싹 모아서 버리고 방바닥을 닦고 구석구석에 쌓인 먼지를 털었다. 먹구름에 그칠 것 같지 않았던 비가 그치고 회색 구름이 갈라진 틈새로 눈부신 은빛 서광이 드러나는가, 했다.

안타깝게도 결론은 그렇지 않다, 였다. 단지 거기까지였다. 마침내 눈물이 멈추자 진짜 문제가 찾아와 내 마음을 두드려대기 시작했다.



1년 반 동안 거의 빠짐없이 함께했던 주말에 완벽하게 혼자가 되었고, 아침에 눈을 뜨면 거기 있었던 하루를 상쾌하게 열게 한 인사들이 없었다. 시시콜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재잘거릴 수 있는 대상이 사라졌다. 밤이면 잘 자라고 속삭여주던 목소리가 사라졌다.

대신 그 자리를 차지한 건 지금쯤이면 일어났겠네, 출근해서 이걸 하고 있겠지, 점심은 뭘 먹었을까, 회사에선 별 일 없었나, 퇴근하면 뭘 하려나, 저녁은 집에서 만들어 먹었을까 아님 밖에서 사 먹었을까, 주말 계획은 다 세웠을까, 지금은 자고 있겠지.......

계속되는 물음표들이 텍사스 소떼처럼 몰려왔다.

물론 그중에는 이런 것도 당연히 들어 있다.


“그래서 너, 헤어져서 행복하니?”


그런 의미에서 Alice DJ의 Better off alone이 떠오른 건 나로선 굉장히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헤어진 것이 너무 슬프지만 그렇다고 죽을 것처럼 지독한 사랑을 한 건 아니었다. 

(그런 것은 일평생에 한 번 있을까 말까 한 일이니 얼마나 다행인가.)

인생의 긴 시간을 서로 의지하며 함께 길을 걸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던 사람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어느 날 생각해 보니 자긴 이 길이 아니라 다른 길이 궁금하다고 한다. 

그럼 난 어째야 하는가, 그냥 알았다고, 행운을 빈다고 말하며 보내줄 수밖에.

다만 나름 나란히 걸은 시간이 좀 있다 보니 같이 본 풍경들과 겪은 일들이 꽤 쌓인 거다. 

그리고 옆에 늘 있던 사람이 사라졌으니 허전한 거고.     


넌 네가 혼자 지내는 게 나을 거라 생각하는 거니

혼자서 가는 것이 나은 거라 생각하냐고

혼자 떠나는 게 낫다고 생각하니

말 좀 해봐     


그와 함께 걸은 길은 몸을 들썩이게 만들고 나에게 생기를 불어넣었더랬다. 

그러다가 그가 혼자 떠나기로 결심했고 나도 그 결정을 존중하기로 했다. 

당연히 한동안 나는 풀이 죽은 채 지내게 될 것이다. 

그러나 내가 Better off alone을 반복적으로 들으며 그 질문을 던질 수 있다면, 언젠가는 그게 결국 나에게 들려주는 대답으로 돌아올 것이라고 믿는다.

You're better off alone.     

매거진의 이전글 RedHotChiliPeppers_ Otherside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