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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noopyholic Sep 07. 2016

Deen_ 瞳そらさないで

Good bye, Summer!

그렇게나 뜨거웠던 여름이 가고 있다. 

정 떨어졌다고 확 떠날 것처럼 그러더니 요즘은 낮에 더운 걸로 봐서 스리슬쩍 돌아와 미적거리는 것 같다는 기분이 든다. 

문득 이 여름과 제대로 된 이별을 치러야 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 어떡해야 하나 고민하는데 이 노래가 찾아들었다. 

결국 종일 리플레이.


언젠가 일본에서 우연히 이 노래를 처음 들었을 때 그 멜로디와 내가 이해했던 ‘파란 여름의 두근거림 한가운데에서’ 같은 가사들의 조합이 너무나도 마음에 들어서 거의 꽂히다시피 했다. 

그리고 한국으로 돌아와 제목도 가수도 모르는 이 노래에 대해서 수소문하기 시작했고, Deen의 瞳そらさないで(시선 돌리지 마)가 담긴 테이프를 입수할 수 있었다.

(그때는 노래를 틀면 알아서 음악을 찾아주는 앱이나 대충 빠바바밤 빠바바밤 이런 노래 뭐예요? 물어볼 수 있는 포털 사이트가 있던 시절이 아니었음을 참고해주시기 바람)

가사까지 찾아내어 사전을 뒤적여가며 일일이 한자를 찾아내어 노래의 뜻을 해석해낸 밤을 기억한다. 

눈동자, 쓸쓸하다, 확인하다 같은 말이 일본어로 뭔지 알게 됐던 밤.    


 

항상 이 시간에는 집에 있었는데

최근 넌 자주 집에 없네

겨우 연결된 전화의 목소리도

예전과 다른 느낌으로 변했어

아직 네 맘속에 내가 어느 정도 있는 건는지

확인해보고 싶어(너의 눈을 들여다봐)     


연인들이 꽤 집착하는 것 중에 하나가 서로에게로 향한 연락의 빈도수다. 

다 그런 건 아닐 수도 있지만 전보다 답이 뜸하고 목소리도 달라진 것 같은 느낌이 들면 바로 불안해지는 건 예나 지금이나 그리고 앞으로도 마찬가지일 터.     


시선 돌리지 마

푸른 여름의 두근거림 속에서

여름의 바람이 마음을 간질여

독차지하고 싶어서 끌어안았던

뜨거운 오후     


연인이 만난다. 

남자가 왜 요즘 연락이 안 되냐고 묻는다. 

여자는 시선을 피한다. 

남자는 그러지 말라고 하며 여자를 꽉 끌어안는다. 

그들 사이로 바람이 한줄기 시원하게 스쳐 지나간다.     


“지금 이대로라면 시야가 좁아지고

뭔가 끝나버릴 것 같아” 하고 그녀가 말했어

그편이 너에게 있어 꿈이 있는 거라면

나도 그럴께

‘약속이었으니까 바다에 온 거야’, 란 느낌에

함께 있어도 쓸쓸하네 (내 눈을 봐)     


말을 아끼던 그녀가 한참 만에 입을 떼고 더 넓은 세상을 보고 싶다고 말했다.

남자는 그런 거라면 나도 동참할 수 있다고, 연락이 뜸해져도 견딜 수 있다고 대답한다. 

하지만 그녀의 마음이 그게 아닌 것 같아서 불안하기만 하다. 

둘이 좋았던 봄과 여름의 초입에 계획했던 이 바다로의 여행을 취소할 수는 없어서 오긴 왔지만 사실 그렇게 좋지만은 않다는 말은 숨기고 있는 것 같아서 쓸쓸해졌다.     


말 돌리지 마

푸른 여름의 두근거림 속에서

여름날들이 추억으로 끝나지 않기를

그때쯤의 네가 지금도 마음속에서 웃고 있어     


아, 둘은 바다에 온 거구나. 

푸른 바다를 앞에 두고 해풍을 맞으며 이런 이야기들을 하는 거구나. 

남자는 차라리 여자가 진심을 말해줬으면 좋겠다고 바라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물론 그가 듣고 싶은 진심이란 것이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너를 사랑한다, 라는 말이겠지만.     


다시 한 번

시선 돌리지 마

푸른 여름의 두근거림 속에서

여름의 바람아 마음 좀 전해줘

언제까지나 네가 곁에 있어줄 거라고 믿고 있어

언제까지나 네가 곁에 있어줄 거라고 믿고 있어     


사실 나는 짝사랑 전문가다. 

만약 세상에 그런 학문이나 분야가 있다면 단번에 훌륭한 논문을 써서 박사학위를 따낼 자신이 있다. 

모든 연인들의 관계에는 역학관계가 존재하는데 나는 더 많이 좋아하는 쪽의 마음 상태를 너무나도 잘 이해할 수 있다. 

이 노래를 오랜만에 무한반복해서 듣고 난 뒤에 찾아온 깨달음도 그런 것이었다. 

아, 이 사람이 그녀를 더 좋아하고 있구나. 

하지만 그녀의 마음은 푸른 여름의 어딘가를 떠돌고 있구나.

왠지 둘이 있는 바다가 지금 이맘때의 오키나와 같은 곳일 것 같았다.

절정이 지나도 눈부시게 하얀 모래와 푸르고 투명한 하늘색과 사파이어의 색을 닮은 바다를 앞에 두고 여자를 꼭 끌어안은 남자.

여자는 먼 곳을 바라보며 마음이 흔들리고 있을 것이다.

이 여름의 끝과 함께 그를 떠나보낼 것인지 아니면 다시 한 번 관계를 이어나가기 위해, 그의 바람대로 그의 곁에 남아야 하는 것인지. 

여름 바다의 바람은 과연 그의 간절한 바람대로 그녀를 곁에 붙잡아둘 수 있었을까?


이 노래 연인들의 향후 행방을 가늠하다가 그토록 뜨거웠던 용광로 속의 여름을 고이 보내드릴 방법을 떠올렸다. (실현 가능성이 있을지는 논외로 치고) 어떻게든 셍코하나비(線香花火)를 구하는 거다. 

그리고 어두운 밤이 찾아오면 옥상으로 올라가 셍코하나비가 타닥타닥 타오르는 모습을 보며 이번 여름을 회상한다. 점차 불꽃이 잦아들면 “여름아, 잘 가” 인사를 건네는 거다.

시원하고 상큼한 바이젠을 한 잔 마시면서 이 일을 한다면 더 완벽할 것이다.

셍코하나비라는 말이 일본에서는 쉽게 달아오르고 쉽게 식는 모습이라든지 덧없는 사물이라는 뜻으로 사용된다는 것은 덤으로 떠올리며 여름을 보내는 이 쓸쓸한 기분을 고조시켜도 좋겠다.

다 타버린 불꽃놀이의 잔해를 들고 나의 방으로 돌아와서는 따뜻한 루이보스 밀크티 한 잔을 마시며 일기를 쓸 것이다. 

주저리주저리 여름과의 이별을 고한 끝에 나올 마지막 문장은 이미 생각해뒀다. 


‘가을아, 반가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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