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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noopyholic Sep 14. 2016

JulieLondon_ILeftMyHeartInSFO

San Francisco

나는 샌프란시스코에 1년 간격으로 두 번 다녀온 적이 있다. 그것도 모두 여행이었다.

미국으로 가는 길이 그렇게 어렵지 않은 요즘이야 그럴 수 있겠거니 하겠지만 미국 땅 한번 밟아보겠다고 비자 전쟁을 치른 경험이 있는 사람들이 많았던 그 시절에는 왜? 라고 반문하는 사람들이 꽤 많았다.

간략히 이유를 말씀드리자면 ‘스누피 박물관’이지만 눈물 없이 들을 수 없는 그 이야기는 언젠가 다시 드리기로 하고.......

그 이유가 무엇이었든지 어떤 도시를 다시 방문한다는 것은 꽤 매력적인 일이다. 다시 그곳에 발을 디딘 순간 느껴지는 익숙함이라는 감정이 마음을 따뜻하게 데워주는 것이다. 낯선 곳으로 떠난다는 흥분이 아예 없는 것도 아니다. 어쨌든 그곳이 여행지 혹은 타향임은 부정할 수 없으니 말이다.

그게 내가 두 번째로 샌프란시스코에 도착했을 때 느꼈던 감정이었다.

호스텔에 짐을 풀고 장이라도 봐서 저녁을 만들어 먹을까 하는데 신지로를 만났다.

그는 도쿄 출신의 과학 선생님이었다. 우리가 정확히 어떻게 만나게 됐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하지만 첫날 저녁 그가 구워준 기가 막히게 맛있는 스테이크를 먹었다는 사실만은 또렷하게 기억하고 있다. 그렇게 죽이 맞기 시작한 우리는 거침없이 샌프란시스코를 접수해나가기 시작했다.

둘 다 박물관을 무지하게 좋아하고 아름다운 것을 경외하는 마음가짐이 같았다. 나는 그에게 그래도 한 번 왔었다고 익숙한 샌프란시스코를 힘껏 보여줬고, 그는 나에게 과학이 얼마나 재미있을 수 있는 학문인지, 우리의 삶 속에 얼마나 많은 과학이 연관되어 있는지를 가르쳐줬다.

혼자 여행하다 보면 밤에는 숙소에 처박히기 쉬운데 그와 함께 다닌다는 건 밤의 샌프란시스코를 만끽한다는 뜻이기도 했다. 우리는 밤마다 조명으로 환한 거리를 활보했고, 인적이 드문 부둣가를 거닐었다. 쌀쌀했던 밤공기에서 살아남겠다고 마치 연인처럼 백허그를 한 채 앉아 바다가 일렁이는 소리를 배경 삼아 그가 조곤조곤 설명해주는 별자리를 들었던 밤도 있었다. 나보다 일찍 떠나야 했던 그의 마지막 날 저녁, 그는 나를 근사한 이탈리안 레스토랑으로 데려가 만찬을 선물해줬다. 그의 이탈리아 옛 연인 이야기를 들었다. 지금은 어떻게 사는지 알 길이 없지만 자신의 가장 강렬한 사랑이었다고 했다. 뭔가 숙연한 분위기가 형성됐는데 서비스 정신은 투철하고 눈치는 없는 웨이터가 두 연인의 추억을 남겨주겠다며 다짜고짜 내 카메라를 가져가 사진을 찍어준 덕분에 웃었더랬다.

나는 보답으로 그를 케이블카에 태워 부에나 비스타 클럽으로 데리고 갔다.

그리고 그곳에서 이 노래를 만나게 된다.     



파리의 사랑스러움은 어쩐지 서글프게 행복해 보이고

영광은 로마의 차지였지만 그건 다른 날의 이야기지

맨해튼에서는 끔찍하게도 외롭고 혼자였어

난 이제 부둣가 옆 내 도시, 내 집으로 돌아간다네     


남들은 다 아름답다 칭송하던 파리는 날 배신했고, 로마는 아름다웠지만 로마의 휴일 같은 로맨스는 영화 속의 이야기일 뿐.

맨해튼은 가본 적 없지만 가게 된다면 나도 끔찍하게 홀로 외로울 것만 같다. 그래서 나도 샌프란시스코로 돌아왔지.     


나는 샌프란시스코에 내 마음을 남겨두었지

높은 언덕 위에서 그 마음이 나를 부르네

자그마한 케이블카를 타고 별까지 반 정도 올라갈 수 있다네

아침의 안개가 공기를 차갑게 하겠지만, 상관 없어     


샌프란시스코는 마음을 남겨둘 만한 도시다. 높은 언덕을 오르락내리락하면서도 그저 마음이 상쾌하고 행복해지니까. 케이블카를 타고 신지로와 나도 여기까지 왔으니 그럼 우리는 별까지 닿는 길의 반 정도는 올라온 셈인가?     

아이리시 커피를 홀짝이며 노래에 흠뻑 젖어 혼자 감상에 젖어 있자니 옆에 있던 신지로가 심심했던지 냅킨에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그 모양이 마치 검은색 물방울 같아서 그의 펜을 뺏어 옆에다가 ‘검은 눈물’이라고 적었다.

신지로는 한참을 내 눈을 들여다봤다. 그러더니 다시 펜을 가져가더니 거기에 이상한 그림을 덧붙이기 시작했다. 마치 에도 시대의 사무라이 머리 모양을 위에서 내려다본 모습 같았다. 그는 이미 나의 답을 기다리겠다는 듯 펜을 내 앞으로 스윽 밀어둔 상태였다.

나는 조금 고민하다가 떠오른 말들을 스르륵 적어내려가기 시작했다.     


‘검은 눈물이 사무라이 머리 위로 뚝뚝 떨어진다.’     


우리의 콜라보레이션으로 완성된 냅킨 위의 낙서를 바라보며 흡족하게 웃던 신지로의 얼굴이 이따금 떠오를 때가 있다.

그때의 인연으로 우리는 이따금 도쿄에서 만나곤 했다. 요즘은 페이스북으로 서로의 근황을 묻는다. 내 기억으로 여행이 끝나고 일상으로 돌아간 신지로는 삶을 재미있게 채우려는 진중한 일본인이었다.

하지만 샌프란시스코에서 나를 만났을 당시에 오래도록 사귀어온 여자친구(지금은 어여쁜 아내)가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됐을 땐 ‘하여튼 남자들이란....... 그땐 그렇게 철저하게 은폐하더니! 별자리 설명해줄 때 키스할 뻔했는데 안 하길 잘했다’며 얼마나 마음을 쓸어내렸던가!     


내 사랑이 샌프란시스코에서 기다리고 있어

파랗고 바람이 부는 바다 너머에서

샌프란시스코, 내가 나의 집인 너에게 갈 때엔

너의 황금빛 태양이 나에게 빛나리     


하지만 지금도 이 노래를 들으면 이따금 신지로와 쏘다녔던 샌프란시스코의 기억이 떠오른다.

거대한 금문교를 바라보며 맞았던 바람의 시원함이 떠오른다.

그때 만나 지금까지 이따금 안부를 물으며 지내는 수많은 친구들이 떠오른다.

덜컹거리는 케이블카 뒤에 매달려 와아, 하고 탄성을 질렀던 시원한 바다의 풍경이 떠오른다.

그곳으로 다시 돌아가 눈을 감은 채 바람을 만지고 황금빛 태양을 온몸으로 맞이하는 내가 떠오른다.

남겨둔 내 마음 만나러 한번은 다시 가야 할 곳....샌프란시스코가 그리운 오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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