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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noopyholic Sep 28. 2016

Cure_ Friday I'm In Love

Road trip in America

그건 여름이었고 내 생일 즈음이기도 했다. 

주말이 지나가고 월요일이 됐을 때 문득 이메일을 확인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도서관에 들른 참이었다. 

참을 인忍 자를 몇 개쯤 새기며 로그인에 성공했지만 수신함에는 불길한 제목의 메시지가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아니기를 바랐지만 불길한 예감은 왜 틀리지 않는지...... 

내용인 즉 내 생의 첫 남자친구가 나에게 이메일로 ‘우리 헤어지자’고 통보해온 것이었다.

그러니까 그는 내게 생일 선물로 이별을 안겨준 셈이랄지. 

무척 친절하게 그 끝에는 생일을 미리 축하한다는 말도 덧붙여 있었다.

어디 그뿐인가, 서둘러 쓴 것처럼 보이는 추신에 악한 감정으로 헤어지자고 하는 거 아니니 친구로 지내고 싶다는 말도 잊지 않은 채였다. 

나도 모르게 이를 꽉 물었다.

사실 그와 처음 헤어진 것은 아니었다.

그때가 두 번째였고 처음 헤어졌을 때와 정확히 같은 이유였다.  

   

“넌 여행을 너무 좋아해. 나보다 여행을 좋아한다는 사실을 견딜 수 없어.”     


친구의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다리가 조금은 휘청거렸던 것이 기억난다.

그러다가 가슴이 옥죄어오는 것 같았고 목에 묵직한 뭔가가 쑤셔 박힌 것 같은 느낌이 나더니 코가 찡해지고 마침내 안구까지 그 느낌이 퍼져나가더니 눈물이 터졌다.

날씨는 왜 그리도 좋은지 여름날의 햇살이 눈부시게 서럽게 울며 걸어가는 내 위로 쏟아지고 있었다.

문을 열고 들어가자, 반갑게 나를 맞이하던 친구는 눈물 콧물로 범벅이 된 내 얼굴을 보고 무슨 일이냐고 물었고, 나는 도서관 컴퓨터로 읽었던 메시지 내용을 전달했다. 

그러자 그녀는 즉시 세상에 듣도 보도 못한 육두문자를 속사포로 쏟으며 그런 메시지를 타이핑했을 내 구남친의 열 손가락에까지 저주를 퍼부었다. 

아니, 다 좋다. 헤어질 수도 있다 이거지. 그래, 내가 만리타국에 나와 있었으니 이메일로 통보한 것도 상관없다 치자. 그런데 대체 왜 내 생일 즈음이냐 이거다. 생일 축하한다는 말은 왜 하며 헤어지는 마당에 친구로 지내자는 말은 무슨 거지 똥 싼 바지 같은 말이냐 이거다. 그걸 보낸 손가락은 모조리 ‘분질러’져도 싸다는 거다.

뭔가 그녀의 분노한 목소리를 듣고 있노라니 내 마음은 오히려 조금씩 평온해졌던 기억.

그래, 타이밍이 ‘지랄’ 같아서 그렇지 어쩌겠는가. 

난 정말 그와의 연애보다 여행이 훨씬 더 좋았고 여행을 떠나는 것이 중요했으므로 우리는 언젠가 반드시 헤어졌을 것이다.

나의 성정을 잘 아는 친구는 내 생일 선물로 시애틀로의 로드 트립을 계획해 두었더랬다. 

꼭두새벽부터 솔트 레이크 시티를 출발해서 아이다호에 들러 하룻밤을 청한 뒤, 다음 날 시애틀에 도착하는 여정이었다.

난생 처음으로 하는 로드 트립이라 설렜다.

그간 섭렵해온 다양한 헐리우드 영화와 미국 드라마에서 나온 로드 트립의 이미지들을 떠올리며 달리고 달렸다. 하지만 설렘도 잠시. 영화든 드라마든 같은 풍경이 두 시간 넘게 이어지지는 않는다. 

왜 몇 몇 주인공들이 그렇게 라디오 채널 주도권이나 믹스 테이프 만드는 것에 집착하는지 그제야 알게 됐다.

마음에 드는 음악이라도 없으면 정말 지루한 것이 따로 없는 것이 로드 트립일 수 있는 것이다.

물론 나와 친구는 쉴 새 없이 떠드느라 그럴 겨를이 없었지만 그것도 한계가 있기 마련.

마음에 드는 채널이 없어 껐던 라디오를 다시 틀었다.

그리고 나는 이 노래를 만나게 된다.   


  

월요일이야 우울하거나 말거나

화요일은 잿빛이고 수요일도 그러네

목요일아 난 너는 신경 쓰지 않는다

금요일이야, 난 사랑에 빠졌네     


월요일아 넌 멋대로 망가져도 된다

화요일, 수요일엔 맘이 아파

목요일은 시작도 안 했는데

금요일이야, 난 사랑에 빠졌어     


토요일이 기다려

일요일은 늘 너무 늦게 오지

하지만 금요일은 망설이는 적이 없어     


그의 이별 통보 이메일을 열었던 월요일은 우울했다.

화요일과 수요일엔 멍하거나 마음이 아팠지.

마침내 로드 트립의 목요일이 돌아왔지만 나는 종일을 길 위에서 보낼 뿐.

오, 금요일에 난 이름도 유명한 시애틀에 도착할 것이다. 

그리고 즐거운 주말을 보내게 될 거였다. 생일 밤, 시애틀의 바에서 한잔 걸치고 클럽에서 춤을 추며 파티를 한다면 신나겠지.

사실 나의 시애틀에서의 주말은 상상 속의 환락과는 거리가 멀고 먼 건전하기 짝이 없는 시간이었다.

스타벅스 1호점을 그냥 지나쳐 아무 스타벅스에나 들어가 러시아에서 놀러 왔다는 얼굴이 동그란 금발의 청년과 아무렇지 않게 합석해서 마시지도 못하는 커피를 마시고, 바늘이라는 애칭을 가진 스페이스 니들에선 시카고에서 왔다는 훤칠한 청년 둘과 수다를 떨며 시애틀을 내려다봤다. 

체리 한 봉지를 사서 종일 걸어 다니면서 우물우물 먹다가 씨는 아무데나 뱉어댔다.

밤에는 친구의 친구 아이가 아픈 바람에 조용히 집에서 버드와이저를 두 병 마시며 생일을 자축했다.     


월요일이 시커멓대도 상관없어

화요일, 수요일엔 마음의 상처가

목요일엔 절대 뒤돌아보지 마

금요일이야, 난 사랑에 빠진다네     


월요일엔 머리를 들어

화요일, 수요일엔 침대에서 머물러

아니면 대신 목요일에 벽이나 쳐다보던지

금요일이야, 난 사랑에 빠졌다오     


머리부터 발끝까지 차려 입었군

그건 꽤 괜찮은 놀라움이지

네 신발을 보며 네 기분이 좋아지는 것

찌푸린 얼굴은 갖다 버려

대신 소리에 맞춰 미소 지어봐

그리고 멋지게 소리 질러

빙글빙글 돌아봐

늘 크게 한 입 베어 물어

그건 정말 근사한 장면이야

네가 한밤중에 뭘 먹는 걸 보는 것 말야

넌 절대 만족하지 못하지

충분한 이것으로도

금요일이야,

내가 사랑에 빠지는     


로드 트립이 끝나고 집으로 돌아와서도 한동안 내 머릿속엔 Friday I'm in love가 재생되곤 했는데 그건 아마도 시애틀에서 조금은 맥 빠지는 생일 밤이 미안했던지 친구가 모든 나머지 금요일에는 나를 끌고 클럽과 파티에 데려갔기 때문일 것이다.

잘생긴 이웃집 남자들과 데이트도 하고 클럽에서 나오는 신나는 음악에 몸을 맡긴 채 금요일 밤을 불태웠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한껏 치장하고 향수까지 뿌려 단장을 마무리하고 친구의 낡은 빨간색 세단을 타고 가로등이 밝게 비추는 길을 달릴 때 라디오에서 이 노래가 흘러나오면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었다.

노래처럼 금요일마다 새로운 사랑에 빠진 건 아니었지만 그렇게 금요일마다 조금씩 이별의 아픔에서 멀어져갔으니까.     


월요일이야 우울하거나 말거나

화요일은 잿빛이고 수요일도 그러네

목요일아 난 너는 신경 쓰지 않는다

금요일이야, 난 사랑에 빠졌네     

월요일아 넌 멋대로 망가져도 된다

화요일, 수요일엔 맘이 아파

목요일은 시작도 안 했는데

금요일이야, 난 사랑에 빠졌어


잿빛도 아픈 마음도 다 지나가겠지.

사랑에 빠지고 싶은 금요일이 기다려지는 수요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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