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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noopyholic Oct 09. 2016

Cake_ Sick Of You

Deep cave inside of myself

날이 쌀쌀해졌다. 

어느 순간 싸늘해진 공기에 놀라 몸을 움츠리게 되는 나를 발견하게 되는 그런 날. 

멍해진 채로 하늘을 바라보고 있으니 구름이 빠르게 움직이고 하얀색 달이 선명하게 보이기 시작하더니 뭐가 그리 급하다고 해도 금세 넘어간다.

하늘이 너무나도 눈부시게 푸르고 하얀색 구름도 선명하고 아직 곳곳에 남아 있는 초록의 징후가 이렇게나 뚜렷한데도 바람의 온도는 계속 떨어질 것이고 방금 걸었던 그 길에 다음 날 다시 찾아가면 나뒹구는 잎사귀들의 숫자가 늘어나 있을 것이다.

초록은 점점 시들해지고 노랑과 붉은 빛들이 점차 갈색으로 고동색으로 변해갈 것이다.

뭔가 이런 예감으로 싸해지는 순간이 찾아오면 나에게는 의식처럼 찾아서 듣는 노래가 하나 있다. 

가장 좋아하는 밴드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Cake의 Sick of you.     



나 너한테 질렸어, 나한테 질렸어, 너랑 같이 있기 싫어

나 너한테 질렸다구, 나한테 질렸다니까, 너랑 같이 있기 싫어 죽겠어

어디 멀리 날아갔으면 좋겠네

어디 멀리 날아가버린다면 얼마나 좋을까     


오호라, 시작부터 세다. 

경쾌한 멜로디에 입혀진 가사는 꽤 다크하시다. 

너도 필요 없고 심지어 나조차도 끔찍하다는, 모든 것에 질렸다는 선언. 

그리고 드러나는 진실은 어디론가 뿅 사라지고 싶다는 것.     


나 일하는 거에 질렸어, 노는 것도 질려, 이런 날은 하루도 더 필요 없어

나 일하는 거에 질렸다구, 노는 것도 지겨워, 이런 날은 하루도 더 필요없다니까

난 어디론가 사라져야 해

난 어디론가 숨어버릴 필요가 있어     


그게 금수저의 삶이든 흙수저의 삶이든 지루한 일상이라는 덫에 걸려 이 풍진 세상에서의 삶을 사는 누구든 그렇지 않을까? 

하지만 애써 누르고 또 누르고 어르고 달래고 해서 날뛰는 마음의 자아는 어두운 동굴 깊은 곳에 넣어둘 뿐.

누구든 더 강렬하고 더 짜릿한 자극을 원한다. 

그게 가능하게 하려면 나를 방해할 것이 아무 것도 없는 어디론가 숨어들 필요가 있다. 

나의 존재가 어디에 있다는 것을 지인에게 들키면 다 소용 없는 일일 테니까. 

    

처음에 네게 기쁨을 줬던 모든 반짝이는 장난감들에 결국은 징징대고 짜증내게 될 거야

그 어떤 카메라도 그 어떤 전화기도 네가 가진 그 어떤 음악도 네가 결국 혼자라는 사실을 바꿀 수는 없어(혼자야!)     


모든 땅덩이도 네가 계획한 도시도 모래 속으로 사라져버릴걸

처음에는 너를 반짝이게 했던 그 모든 것이 결국에는 똑같은 재앙으로 변하고 말걸(같은 재앙이라고!)     


처음에 어떤 물건 혹은 대상에 대한 갈망이 생기게 됐을 때는 그것만 내 손에 들어오면 세상을 다 가진 것이 될 거라고, 나는 영원히 행복할 거라고 생각하지만 막상 그 물건을 가지게 되거나 일을 이루게 된 후 일정 시간이 지나면 금세 그 반짝이던 기분은 사라지고 다시 공허가 그 자리를 대신하게 된다.

전화기를 들어 이 공허한 마음을 나누며 따뜻한 온기를 느낄 친구를 찾아보지만 선뜻 누구에게도 전화를 걸지 못하는 스스로를 발견한다. 그들은 각자 자기의 인생을 사느라 바쁘거나 나의 이런 푸념을 듣고 싶지 않을 테니까. 그러니까 결국 인생이란 ‘독고다이’로 홀로 살다 가는 것이라는 깨달음이 스산하게 내 안으로 스며든달지.

도시를 세울 계획을 세우면 뭐하나, 사막의 모래 속으로 혹은 밀림의 정글 속으로 사라져간 눈부신 문명을 가졌던 도시가 도대체 몇이던가.

인생에 뜻대로 흘러가는 것이 있던가.

나는 반짝이는 눈으로 계획이라는 것을 세우고 새로운 즐거움을 발굴해내지만 인생이라는 장난꾸러기는 순진함으로 무장하고선 난폭하게 내가 공들여 세운 계획과 즐거움의 탑들을 순식간에 무너뜨린 뒤 이렇게 외치지.


“어머, 미안해, 일부러 그런 건 절대 아니야.”


허허, 절로 쌍시옷 문자가 마구 입 밖으로 쏟아져 나오는 순간들.     


어디 멀리 날아갔으면 좋겠네

난 어디론가 사라져야 해

나 너한테 질렸어, 나한테 질렸어, 너랑 같이 있기 싫어     


그러니 이 얼마나 지겹고 힘겨운가. 

사라지고 싶다. 

아주 멀리 정말 아무 것도 거치적거리지 않는 그런 미지의 세계로.     


그 어떤 춤도

그 어떤 몰래하는 사랑도

결국 혼자(혼자야!)     


클럽에서 밤새 음악과 낯선 사람들 사이에 어우러져 춤을 춘다 한들, 그 누구도 모르게 스릴 넘치는 사랑으로 나를 위로해보려 한들, 다 소용 없다는 말이다.

우리는 그냥 혼자니까. 

그리고 그 스릴도 일탈도 반짝이는 기분도 심지어 미지의 세계로의 탈출이 성공한다 한들 우리는 일상이라는 무서운 덫에 다시 잡힐 수밖에 없으므로.     

솔직히 저런 기분이 드는 날이 꽤 잦지만 나로선 가장 위험한 때가 가을이 무르익어가는 이 시간과 겨울이 마침내 끝나고 봄이 스르르 올라오는 시간이다. 

다른 때는 아주 잘 견디고 잘 참는데 그땐 정말 나도 모르게 일을 저질러버리곤 했거든. 

뭐, 인생에 그런 일이 없으면 또 너무 심심한 것이 아니냐고 생각해주신다면 감사한 일이기는 하나 그러기에 현재 내 인생의 자리가 사고를 감당할 수 있지 않으므로 어쩔 수 없다. 

Sick of you를 열심히 들으며 나의 깊은 동굴 속으로 내려가 눈을 시퍼렇게 뜨고 나에게 으르렁거리는 나의 어두운 자아를 어르고 달래줄 수밖에 없다. 

쿰쿰한 그곳의 공기도 환기시켜주고 먼지도 닦아준다.

그럼 그녀석도 한동안은 얌전히 그곳에 머물러줄 것이므로.


하지만 내가 진정 바라는 것은 나의 깊은 동굴에서 녀석이 뛰쳐나와 나와 함께 신나게 사고를 치며 다니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날이 꼭 오길.

아직은 아니지만. 

언젠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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