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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noopyholic Aug 18. 2016

Daft Punk_ Get Lucky

Amsterdam

나는 그해의 여름을 암스테르담에서 보냈다.

이전까지 내 기억 속의 암스테르담이란 약을 한 건지 술에 취한 건지 무언가에 의해 동공이 풀린 서양인이 나를 뚫어지게 쳐다보며 지나가거나, 키가 커다란 흑인이 잔돈을 달라고 해서 없다고 하자 달려서 쫓아오던 기이한 공포의 도시였다. 마약과 매춘이 법적으로 허가된 나라라니 순진했던 이십대 초반의 나에겐 버거울 정도의 자유가 있는 곳이라는 생각이 똬리를 틀고 들어앉았었는지도 모르겠다. 나쁜 첫인상과 공포스러웠던 체험의 결합은 꽤 강하게 오래도록 자리 잡아 굳이 다시 찾고 싶지 않은 도시라는 결과를 도출해서 머릿속에 각인시켰다.

하지만 인생이란 재미있는 장난으로 가득 찬 시간의 주머니가 아니던가!

나는 암스테르담으로 돌아가게 됐다.

그것도 삼 개월이나!

그곳은 내가 사랑하게 된 사람이 사는 도시였던 것이다.   


  

불사조의 전설처럼

모든 끝에는 시작이 있지

행성을 계속 돌게 할 정도의

사랑의 힘이 시작되고 있네     


모든 연인들의 이야기에는 시작과 끝이 있다.

내가 그를 만난 건 먼지를 뒤집어쓰고 남들은 샬랑거리는 트렌치코트를 입고 다닐 때 홀로 파카를 껴입고 종일 일한 뒤였다. 비릿한 땀 냄새가 나는 것 같았고 입술은 부르텄고 손가락에는 먼지 떼가 껴서 누가 봐도 막노동하다가 들어온 사람의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다.

친구는 딱 한잔만 하고 들어가자고 했다. 이런 ‘꼴’로 가야 할 곳은 집밖에 없다고 정중히 거절했지만 그녀는 막무가내였다. 결국 그날이 금요일이라는 유혹에 넘어갔다. 그냥 집으로 들어가기엔 아까운 불금이 아니냐고 하는데 금요일 밤, 힘들고 고된 노동의 끝에 맥주 한잔 정도 하고 들어가는 것은 나쁘지 않을 것 같았다.

훗날 그는 우리가 만난 그 순간을 이렇게 묘사했다.

‘어둡고 침침했던 술집에 한 줄기 빛을 따라 화사하고 향기로운 꽃송이들이 피어난 것만 같았다.’

지금 생각해보면 저게 말인지 소인지 싶지만......

모든 전설에는 시작이 있기 마련이지 않은가. 나는 그렇게 남자를 만나 사랑에 빠지기 가장 희박한 가능성의 옷차림으로 칠 년 만의 남자친구를 만났다.     


우린 너무 멀리 왔어

원래의 우리를 포기하기엔 말야

그러니 우리 수위를 높여보는 건 어때

그리고 별을 향해 건배하자     


우리는 급격하게 서로에게 빠져들었다. 시간의 한계가 한몫했을 것이다. 여행이 끝나면 그는 암스테르담으로 돌아가야만 했으니까. 그리고 마침내 그 날이 왔을 때 내가 우리의 관계를 끝내려 하자 그가 말했다.

“그러기엔 우리의 이 감정이 너무 뜨거워. 그러니 우리 일단 이 열정이 어떻게 되는지 지켜보는 게 어때? 너는 서울에서 나는 암스테르담에서 우리의 사랑을 이어가보자.”     


그녀는 해가 뜰 때까지 깨어 있었지

나는 무언가를 얻기 위해 밤을 지새웠지

그녀는 재미있게 즐기려고 밤새도록 있었지

난 행운이 찾아오길 바라며 밤을 지새웠지     


우리는 자주 서로의 밤이 아침이 될 때까지 깨어 있곤 했다. 그것이 즐거웠기 때문이다.     


우리는 해가 뜰 때까지 깨어 있었지

우리는 무언가를 얻기 위해 밤을 보냈지

우리는 재미있게 즐기려고 밤을 샜지

우리는 행운이 찾아오길 바라며 밤을 새웠지     


그렇게 해가 뜨는 걸 몇 번이나 보게 된 이후 우리의 바람이 이루어지게 됐다. 내가 암스테르담으로 가게 된 것이다.          


현재란 선물엔 리본이 없어

네 선물은 계속되고

내가 느끼는 이 기분은 뭐지

네가 가고 싶다면 나도 가겠어     


마침내 우리는 함께할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너의 아침, 나의 밤이 아니라 동시에 암스테르담의 아침과 낮과 밤을 함께했다.

그가 직장으로 떠나고 나면 나는 언제나 라디오를 틀어두었는데 매일 다프트펑크와 퍼렐 윌리엄스가 작업했다는 이 노래가 흘러나왔다.     

Get lucky.

위에는 말랑하게 해석했지만 사실 저 말의 뜻은 야하다. 특히 남성들이 무언가 섹슈얼한 행위가 이루어졌다는 뜻으로 사용하기도 하는 말인 걸 생각하면 조금만 비틀어서 들어도 온통 음란한 말로 가득한 노래지만 정신없이 사랑에 빠져 지구라는 행성의 반 바퀴를 돌아서 온 나라는 여자에겐 그저 신나고 흥겨운 노래였다.

특히 ‘We've come too far to give up who we are’라는 대목이 나올 때마다 We를 I로 바꾸고 ‘원래의 우리를 포기하기엔 너무 멀리 왔다’고 정직하게 해석하는 대신 나는 ‘원래의 나를 포기하기 위해 아주 멀리 왔다’고 해석하며 사랑 찾아 삼만 리 떠난 나의 처지를 낭만적으로 해석하곤 했다. 이 노래를 너무나도 자주 들었기 때문에 나중에는 그게 원래의 뜻이라고 생각하게 됐을 정도였다.

일을 끝내고 돌아올 그를 기다리며 저녁식사를 준비하는 중에도, 잠정적 보스를 만난 뒤 암스테르담의 운하를 따라 걸으며 앞날에 대한 분홍빛 그림을 멋대로 그려보면서도, 폰델 공원을 낡은 자전거를 타고 뱅뱅 돌면서도, 잔디밭에 누워 도시락을 까먹고 멋대로 해괴한 그림을 그리면서도 ‘Get lucky’는 나와 함께였다.     


우리는 행운이 찾아오길 바라며 밤을 새웠지

우리는 행운이 찾아오길 바라며 밤을 새웠지

우리는 행운이 찾아오길 바라며 밤을 새웠지

우리는 행운이 찾아오길 바라며 밤을 새웠지

우리는 행운이 찾아오길 바라며 밤을 새웠지

우리는 행운이 찾아오길 바라며 밤을 새웠지

우리는 행운이 찾아오길 바라며 밤을 새웠지     


불사조의 전설에도 끝이 있다고 했던가.

칠 년 만에 사귀게 된 남자친구와의 전설도 여름의 끝과 함께 끝났다.

내 몸이 암스테르담을 떠나 서울로 돌아오는 동안 그의 마음이 내 곁에서 떠나버린 것이다.

그렇게 우리는 함께 그리고 따로 어디론가 가버렸다.

‘Get lucky’만이 불사조의 전설처럼 암스테르담에서 보낸 그해 여름의 전설로 내게 남아 있을 뿐.

아, 시원한 하이네켄 한 잔이 간절한 서울의 뜨거운 여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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