_ 그 길 한복판에서 여우를 만나다
12_
혼자 17.8km 정도 된다는 구간을 걷게 됐다.
이바와 요나스는 버스로 다음 큰 도시까지 가겠다고 떠났고 사라도 그들과 함께 떠났다.
루비와 알렉스는 아침에 늑장을 부렸는데 어디쯤 걷고 있는지 모르겠다.
문득 예전에 만났던 모녀도 이 구간은 기차로 지나가겠다고 했던 기억이 났다.
아까 스치듯 만났던 부녀도 이 구간만은 마음의 준비를 하고 걷겠다고 엄살을 피웠더랬지.
그래서 나도 꽤 심각하게 고민을 했는데 우습게도 나의 길을 안내해주는 조가비 모양의 지표와 함께 단단하게 조각된, 17.8km의 긴 구간이 시작되기 직전의 도시의 이름을 발견하는 순간, 의외로 아주 짧은 순간에 단호히 걷는 쪽으로 마음을 굳힐 수 있었다.
‘Carrion'
스페인어 발음으로 읽으면 ‘까리옹’ 정도가 되겠지만 영어식 발음으로 읽으면 ‘캐리온’이 될 테고 ‘carry on’ 즉, 갈 것인가 멈출 것인가를 놓고 갈팡질팡하던 내 마음에게 이 길이 가던 발걸음을 멈추지 말고 계속 이어가라고 던져준 재치 있는 길의 대답이었다고 믿어버렸다면 너무나 비약적일까?
어찌되었든 막상 걸어보니 사람들의 말처럼 건조하거나 지루하지 않았다.
사실 날씨가 흐렸다가 맑았다가 비를 뿌리다가.......
불안한 순례자의 혼을 쏙 빼놓을 정도로 바쁘게 변해서 도무지 길이 어떻다고 평가할 여유도 없었다.
말리려고 옷핀으로 고정시켜둔 젖은 양말 때문에 비가 오면 배낭에 방수용 커버를 씌우고 우비를 입었다가 다시 쨍하고 해가 나오면 씌웠던 커버를 벗기고 우비도 벗고 하느라 몸이 분주하긴 했지만 기분만은 너무 상쾌하고 즐거워 혼자서 소리를 고래고래 지르며 노래를 부르거나 아무데나 그늘이 있는 곳에 철퍼덕 주저앉아 신발과 양말을 아무렇게나 벗어 던져놓고 배낭을 베개 삼아 누워 바람에 흘러가는 구름을 바라보며 물을 마시거나 무거운 짐도 줄일 겸 배낭 속의 간식을 꺼내먹었다.
이건 새로운 즐거움이라며 낄낄거리기까지!
누군가 지나가다가 이런 나를 보면 혀를 끌끌거리며 ‘광년이’라고 여겼을 것이 분명하다는 생각까지 들자 낄낄거림은 하하하 웃음소리로 바뀌었다.
혼자 하도 웃어서 머쓱해진 나머지 다시 배낭을 메고 길을 걷는데 50m 전방에 웬 동물이 하나 포착되었다.
‘뭐지? 혹시 들개 아니야? 들개한테 공격당해서 부상을 입는 순례자들이 있다고 하던데. 아, 왜 하필 이렇게 혼자 걷고 있는데 무서운 들개와 마주친담?’
나는 될 수 있으면 들개에게 내 존재를 알리지 않으면서 내가 그곳에 당도하기 전에 저 녀석이 어디론가 가게 해달라고 마음속으로 간절하게 빌었다.
하지만 아무리 간절하게 빌어도 녀석은 그 자리에서 꿈쩍도 하지 않았다.
혹시 가방 속에 녀석을 유인할만한 햄이 있는지 생각해봤다.
남아있던 마지막 한 조각을 아까 짐 줄인다고 홀랑 먹은 것이 후회됐다.
오금은 저리지만 어쩔 수 없이 앞으로 벌어질 한바탕의 격투를 예감하며 지팡이를 단단히 거머쥐었다.
‘아, 꽃다운 내 인생을 스페인의 아무도 다니지 않는 한적한 길 위에서 들개와 싸우다 마감하는구나!’
점점 거리가 좁혀졌다.
지팡이를 꼭 쥔 손에서 자꾸 식은땀이 났다.
녀석은 아직 내가 근처에 있다는 걸 모르는 것 같았다.
만약 순한 녀석이라면 그냥 조용히 지나갈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으르렁거리는 소리와 무시무시한 이빨을 보는 것 보다는 그냥 조용히 나는 내 갈 길을 가는 편이 좋지 않을까 생각했다.
될 수 있으면 멀리 떨어지기 위해서 우선 살금살금 길을 건넜다.
제발 쫓아오지 말라고 혼자 중얼거리며 다가갔다.
그런데 갑자기 녀석이 몸을 휙 돌리더니 말을 걸어왔다.
“안녕?”
너무 깜짝 놀라서 뒤로 벌렁 나자빠졌다.
그런 나를 빤히 쳐다보는 녀석은 들개가 아니라 여우였다.
여우가 말을 할 리가 없는데 나는 분명 ‘안녕’이라는 소리를 들었다.
아니다, 그럴 리가 없다. 그냥 단순히 내가 미쳐가는 것이 분명하다.
다시 들여다보니 살아 있지도 않다. 녀석은 단순하게 박제된 여우였다.
그런데 대체 왜 박제된 여우가 이런 곳에 자리 잡고 있는지는 전혀 이해가 되지 않았다.
허나 그게 무슨 상관이랴? 혹시나 하고 엉덩이만 슬쩍 들고 손으로 어기적거리며 다가가 툭 건드려봤다.
미동도 없는 것이 박제동물이 분명했다.
다시 엉덩이를 털썩 주저앉히고 진심을 담아 놀랐던 가슴을 쓸어내렸다.
너무 오래도록 혼자 걸어서인지 아니면 태양이 너무 뜨거워서인지 모르겠지만 정신이 이상해져 가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에 벌떡 일어나 가는 발걸음을 재촉하려는 찰나, 녀석이 다시 뒤에서 말을 걸었다.
“말을 걸었는데 인사도 안 해주고 가기냐?”
나는 조심스럽게 고개를 돌렸다.
“지금 나한테 말 한 거야?”
“그럼 여기에 너 말고 누가 있다고?”
여우는 아까와는 다른 자세로 앉은 채 나에게 말을 건네고 있었다.
“미치겠네. 세상에 말하는 여우가 있다는 사실을 들은 적이 없어. 지금 내가 환각상태인건가?”
“그림자랑 대화도 나눌 수 있는 길 위에서 여우가 말 좀 걸었다고 유난떨기는. 네가 미친 것이 아니라 이 길이 그런 거니까 안심해.”
“하긴 그건 그래. 한국에선 이런 때 불행 중 다행이란 말을 해. 박제여우가 말을 한다니 황당하긴 하지만 내가 미치지 않았다는 사실은 다행이잖아.”
“어머, 박제여우라니 너무 심한 말 아니니? 내가 그저 솜이나 대팻밥 같은 걸로 채워진 뒤에 여우가죽으로 싸서 만든 무기력한 물건이란 말이야? 그렇다면 내가 어떻게 이렇게 반짝이는 눈을 하고 너한테 말을 걸 수 있었겠어? 말해봐, 말해보라구!”
“이런, 내가 잘못했어. 너에 대해 잘 알지도 못하면서 함부로 말했구나. 미안, 미안. 정중하게 사과할게.”
“험, 험, 정 그렇다면 네 사과는 받아주도록 하지.”
“고마워. 그런데 여우야, 너 나한테 무슨 할 말이라도 있니?”
“글쎄. 난 심심했어. 많은 사람들이 내 앞으로 지나갔지만 다들 그냥 지나쳐갈 뿐이었거든. 나한테 관심을 가져준 건 네가 처음이었어. 넌 내가 커다란 들개여서 너를 공격하고 물어 뜯을 거라고 생각했지? 그래서 네 지팡이를 그렇게 세게 쥐고 있던 거지?”
여우는 시선을 내게로 고정한 채 긴 꼬리를 좌우로 흔들다가 몸으로 마는 행동을 반복하며 내 대답을 기다리는 것 같았지만, 전혀 위험하지 않은 여우를 들개로 오해하고 아주 멀리서부터 한 판 붙어보자고 생각했던 나로서는 부끄러워져서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이런, 너를 나무라려고 그러는 거 아니니까 마음 편하게 가져. 난 오히려 고마운걸. 그렇게라도 관심을 가져주지 않으면 나는 그냥 여기에 멍하니 서 있기만 하거든.”
“그래. 그렇게 생각해주니 다행이다. 그런데 넌 어쩌다가 여기까지 오게 됐어?”
“난 메신저야.”
“메신저?”
“중요한 사실을 전달하는 사람 말이야.”
“아, 그래. 그런데 그 중요한 사실이란 게 뭔데?”
“그건 가장 중요한 것은 눈에 보이지 않다는 사실이야.”
“어라, 그거 어디서 많이 들어본 말 같은데. 혹시 셍텍쥐페리의 <어린왕자>라는 책에 나온 말 아냐?”
“잘 아네.”
“야, 솔직히 그 책 안 읽어본 사람이 어디에 있냐? 웬만한 사람이면 한 번씩은 읽어봤을걸. 어린왕자가 길을 가다가 여우를 만나고 대화를 나누기 시작하지. 여우는 자기를 길들여달라고 부탁하고 왕자는 정말 그렇게 했다가 나중에 헤어질 때 슬퍼해. 밀밭 이야기도 나오고 발소리 이야기도 나오지 아마? 길들이면 평범했던 그런 것들조차 특별한 것이 된다면서 말이야. 그리고 마지막에 자신의 비밀이라며 그 이야길 해. 중요한 건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맞지?”
“응 맞아. 넌 정말 세세하게 잘 아는구나. 너와 나 사이에 서로를 길들일 시간이 없다는 사실은 좀 아쉽지만 내가 전달하려던 중요한 사실의 포인트는 그게 다가 아니야.”
나는 눈이 동그래져서 여우의 다음 말을 기다렸는데, 여우는 이 순간을 즐기고 싶다는 듯 다음 말을 잇는데 꽤 뜸을 들였다. 대체 무슨 말을 하려는지 궁금해서 약간 조바심이 일기도 했지만 또 다시 여우가 토라지는 것을 보고 싶지는 않아서 참을성을 가지고 기다리기로 했다.
이윽고 여우가 다시 천천히 입을 열었다.
“난 네가 가장 중요한 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는 사실 말고도 길들인 것에 대한 책임을 져야한다는 사실을 잊지 말았으면 해.”
“난 또 무슨 말이라고. 이봐, 이래 뵈도 난 언제나 내가 길들인 것에 대해 책임을 져왔다고.”
“그래? 정말? 천천히 잘 생각해봐. 아니다, 내가 도와줄게. 한 사람과 사랑에 빠졌다가 둘이 헤어졌다고 서로를 길들였던 시간이 사라지는 건 아니야. 미소 지을 수 있는 추억조차 슬픈 추억으로 만들지는 마.”
“너 혹시 지금 제이미 이야기를 하는 거야?”
“그 사람 때문에 이 길에 올 결심을 한 것 아녔어?”
“이봐, 그건 경우가 달라. 심장을 꺼내서 줘도 괜찮다고 생각했을 정도로 사랑했던 사람이 어느 날 갑자기 나에게 헤어지자고 하는데, 그래서 이제 더 이상 그곳에 사랑이 없는데 어떻게 슬퍼하지 않을 수가 있어? 그쪽에서야말로 길들였다면 그딴 식으로 헤어지면 안 되는 거 아냐? 책임을 쓰레기통에 쑤셔 넣는 거나 마찬가지라고.”
“틀렸어. 예를 들어볼까? 넌 언젠가 이 길의 끝에 서게 될 거야. 여태까지 그래왔듯 앞으로도 이 길은 끝까지 네게 기쁨과 슬픔과 좌절 흥분 등 수많은 감정을 불러일으키겠지. 마침내 너는 길의 끝에 서게 될 테고 집으로 돌아가겠지. 일상으로 돌아간 너는 나빴던 기억은 잊고 이곳에서 봤던 아름다운 풍경이나 즐거웠던 시간을 회상할 거야. 어려웠던 시간도 아름다운 추억의 일부로 간주되겠지. 네 추억 속에서 이 길은 언제나 근사하고 놀라움으로 가득할 거야.
그런데 만약 네가 이 길을 걷다가 중간에 포기해버렸다면?
그 이유가 너를 괴롭히는 신체적 문제일 수도 있고 계속 비가 내려 무거운 배낭을 메고 빗속을 걷는 것은 지긋지긋해졌기 때문일 수도 있지. 어쨌든 넌 실망을 안고 집으로 돌아왔어. 이 길을 떠올릴 때마다 넌 걷기를 포기했던 이유와 실망에 더 비중을 두겠지. 암울하고 힘들었던 시간이 실패로 이어졌단 사실이 가장 먼저 생각날 거라고.
이제 잘 생각해봐. 그럼 네가 중도포기를 했으니까 너는 이 길을 걷지 않은 걸까?
아니야. 네가 떠올리는 실패조차 설사 중간에 멈췄다고 해도 이 길을 걸은 뒤에 얻은 결과야. 사실 네가 산티아고로 가는 길을 다 걸었느냐 중도포기 했느냐는 보이는 것에 지나지 않아. 여기서 중요한 건 네가 이 길 위에서 보낸 시간이야. 네 눈으로 들어왔던 풍경, 네가 느꼈던 바람, 네가 사람들로부터 받은 미소, 네가 했던 사색들 심지어 분노와 좌절까지! 그런 것들이 중요한 거야.”
“......”
여우는 속사포처럼 자신의 말을 쏟아냈고 졸지에 총알받이가 된 나는 녀석이 쏟아내는 말들을 피하지 못한 채 휘청거렸다.
머릿속이 윙윙거리고 속이 매스꺼웠다.
대체 녀석이 쏘아댄 말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 걸까.
“그러니까 네 말의 요점은 비록 그와 나의 사랑은 끝났지만 아름다웠던 시절은 여전히 존재한다, 뭐 그런 거니? 그래. 네 말이 맞다 치자. 그럼 이별 후에 내가 받은 상처는 어쩔 건데?”
“그 부분이 사람들이 잘 받아들이지 못하는 부분 중에 하나야. 모두들 어린왕자와 여우의 이야기를 인용하며 자신이 공들여 이루어진 행복한 시절에 대해서만 집중하며 그게 서로를 길들이는 근사한 과정이었다며 흥분할 뿐이야. 길들인다는 건 고통을 감내한다는 것도 포함된다는 걸 자꾸 간과해. 그리고 길들인 것의 책임에는 이별할 경우에 닥칠 슬픔도 포함된다는 사실도 인정하려 하지 않아.
어린왕자에서도 여우는 헤어지는 순간에 괴로워하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행복하다고 말한다고. 네가 받은 상처는 길들여졌기 때문에 생긴 거야. 네가 누군가와 함께했던 시간이 아무 것도 아니었다면 너는 애초부터 상처 받을 일도 없었을 거야. 사랑이 끝난 건 너와 그가 함께 걸을 수 있는 기간이 그만큼이었던 것이고. 너 혹은 그가 무얼 잘못했기 때문이 아니야. 어쨌든 네게는 그와 함께한 3년이라는 행복한 시간이 있잖아.”
“......”
“그리고 한국의 집에도 연락 좀 해라. 가족들이 네 생사여부를 알 권리는 있다고 생각해.”
여우가 다시 속사포를 쏘아대는 동안, 이번에는 소름이 돋아 아무런 대꾸도 할 수 없었다.
나 역시 여우가 지적하는 사람들 중에 하나였기 때문이다.
<어린왕자>는 내가 좋아하는 책 중의 하나라서 자주 읽으며 감동해온 책 중에 하나였음에도 불구하고 결국 나는 그 책을 나에게 맞추어 편파적으로 이해해버리는 실수를 범하고 말았던 것이다.
만약 이곳이 권투경기의 링이었다면 분명 나는 상대 선수로부터 결정적인 한 방의 주먹을 맞고 쓰러져 얼굴을 찌그러트리며 링 바닥에 부딪히자마자 약 7cm 정도 튕겨져 올라왔다가 다시 쓰려져서는 KO패를 당하는 선수였을 것이다.
링 위의 이 모든 장면이 슬로모션으로 머릿속에 펼쳐졌다. 글러브를 단단히 낀 여우는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관중들의 환호에 오른손을 번쩍 들어 화답하고, 나는 한동안 심판의 카운트다운 소리를 들으며 상상 속의 링 위에 무기력하게 늘어져 있었다.
“좀 외람된 질문이긴 한데 너 어떻게 내 이야기를 알고 있는 거야?”
“별다른 비법이 있는 건 아냐. 나처럼 여기 가만히 있으면 바람이 참 많은 이야기를 실어다 주거든. 그러니 혹시 알리고 싶지 않은 이야기가 있으면 속삭일 때조차 조심해야해. 바람에게는 아주 미세한 소리조차 감지해내는 특별한 능력이 있거든. 아무튼 네 걸음으로 알베르게까지 가려면 아직 한참을 더 가야하니 태양이 네 길을 비춰줄 힘이 있을 때 얼른 가.”
“뭐야, 내 다리 짧다고 놀리는 거야?”
“그렇게 들렸음 그런 뜻이지 뭐! 하하하.”
내가 토라졌다고 생각했던지 사실은 내 걸음의 속도를 두고 한 말이었다고 둘러대는 여우에게 잘 있으라고 인사를 하고는 돌아서서 몇 발자국 가다가 갑자기 물어보고 싶은 것이 생겨서 발길을 멈추고 돌아봤으나 녀석은 이미 처음 만났던 자세로 돌아가 굳어져 있었다.
“고마워. 너와 나눈 대화 잊지 않을게. 나 정말 간다. 잘 있어.”
이건 순전히 나의 착각일 확률이 높지만 무표정하던 박제된 여우가 내 인사를 듣고는 살짝 웃는 것 같았다.
아무튼, 믿거나 말거나, 내가 그날 여우와 긴 대화를 나눴다는 사실만큼은 분명했다.
그렇게 다른 사람에게는 함부로 물을 수 없는 이 길에서의 비밀 하나가 더 생겼다.
여우의 말대로 알베르게는 꽤 먼 것인지 영원히 나올 것 같지 않았다.
제법 붉어진 햇살과 길게 늘어난 그림자 때문에 마음이 조급해져서 열심히 걸었지만 길이 그림자와 함께 늘어나기라도 한 건 아닌지 걱정이 되어 답답해진 가슴에서는 한숨만 쏟아져 나왔다.
그 지루하고 길기만 할 줄 알았던 길에서 롭을 만났다.
“흠, 어디서 많이 본 남잔데? 이봐요, 혹시 나 알아요?”
“세라!”
“그래, 나야. 그간 어떻게 지냈어? 나 없이 걸으니 재미있더냐?”
“하하, 설마. 네가 재잘거리는 목소리가 그리웠지. 만나서 반갑네.”
“그러게. 나보다 한참 앞서 있는 줄 알았더니.”
“또 인터넷이지 뭐. 이메일 몇 개만 보내고 뉴스 몇 개 읽으면 몇 시간은 금방 가버리잖아. 게다가 갑자기 다리 상태가 악화되어서 천천히 걷고 있어.”
“저런. 조심해. 참, 너 혹시 오는 길에 여우 한 마리 못 봤어?”
“그 박제된 여우? 봤지. 처음에 발견했을 땐 들개인줄 알고 정말 깜짝 놀랐다고.”
롭이 자꾸 무슨 말을 하려다 말아서 혹시나 하는 마음에 여우가 말을 걸어오지 않더냐고 물어보려다가 말았다. 결국 서로에게 알베르게는 도대체 언제 쯤 나오느냐는 말만 멋쩍게 되풀이했다.
우리가 봉착한 결론은 하나였다.
‘걷다 보면 나오겠지.’
to be continued.....
******* 이 글은 픽션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