랑터우 섬에서 느낀 청량한 바람
홍콩 여행 3일째, 월요일이었다. 고맙게도 월차를 내 준 J와 하루 종일 함께 할 수 있는 날이었다. :)
우리는 정오가 조금 넘은 시간에 센트럴(Central) 역에서 만났다. 나는 늦게 일어나서 아무것도 먹지 못했기 때문에 먼저 배를 채우러 얌차(Yam Cha)를 할 수 있는 오래된 식당에 들어갔다.
얌차는 직역하면 '차를 마시다'(drink tea)라는 뜻인데 모든지 나누어 먹는 문화(sharing culture)가 녹아 있다고 친구가 설명해 주었다. 식당은 무지 떠들썩했고 원탁들이 발 디딜 틈 없이 놓여 있었다. 종업원이 음식이 들어 있는 트레이를 끌고 돌아다니면 손님이 그때그때 먹고 싶은 게 나올 때마다 직접 찾아가서 갖고 있는 주문표에 표시를 하고 음식을 받아오는 주문 방식이 특이했다. 완전히 비어 있는 자리는 없어서 우리는 두 자리가 남아 있는 자리에 자연스럽게 합석했다. 먼저 따뜻한 차를 시키고 딤섬, 닭발, 돼지고기가 들어 있는 찐빵을 먹었다. (음식은 시시때때로 바뀌는데 타이밍을 놓쳐서 쇼마이를 먹지 못했다 ㅠㅠ) 간장 소스 같은 짭조름한 양념이 배어 있는 돼지고기 찐빵이 제일 맛있었다.
배불리 먹고 나서 페리를 타러 갔다. 오늘의 목적지는 바로 랑터우 섬(a.k.a. 라마 아일랜드 Lamma Island)! 수공예품을 파는 조그만 가게들과 관광객들을 상대로 해산물을 파는 식당들이 있는 조용한 바닷가 마을이었다. 비가 오지 않고 걷기에 딱 좋은 쨍쨍한 하루여서 우리는 기분 좋게 하이킹을 하기로 했다.
본격적으로 하이킹을 하기 전 작은 상점들을 구경했다. 친환경적인 공예품을 파는 가게가 인상적이었는데 여기서 나 자신을 위해 손가락 한마디 만한 정말 작은 선물을 샀다. 도자기로 만든 강아지였는데, 강아지 모양만 보아도 행복해지는 나에겐 이보다 더 좋은 선물은 생각할 수 없었다.
그리고 간장 소스 맛 떡볶이 같은 '청펀'(CHEONG FUN)과 밀크티를 하나씩 시켜 나누어 먹었다. 조금 걷다가 백발의 쪼글쪼글한 할머니가 만들어 주시는 '두부화'(두부 푸딩)를 먹었다. 야외에 천막을 치고 두부화를 파는 곳이었는데 차가운 순두부에 꿀을 섞은 맛이었다. 개운하고 시원한 맛이었다. (홍콩에서 먹은 간식 중에 가장 맛있었던 건 에그 와플과 바로 이 두부화였다!) 참, 놓칠 수 없는 에그 타르트도 하나씩 먹었다.
간식을 그렇게 많이 맛보고 나서야 하이킹을 시작했다. 1시간가량 섬 주변을 천천히 걸었다. 한적한 곳에서 바다를 바라보며 산책을 할 수 있어서 정말 좋았다.
간간히 이야기를 나누며 천천히 걷다가 J와 나는 센트럴로 돌아가는 페리를 놓쳐 버리고 말았다. 설상가상 다음 페리는 1시간 30분 후에야 온단다. 영화의 한 장면처럼 우리는 페리가 출발하는 광경을 언덕 위에서 멍하니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다행히 섬에서 운영하는 통통배를 탈 수 있었다. 놓쳐 버린 페리보다는 훨씬 규모가 작은 배였다. 그런데 작은 배를 타고 돌아가는 30여분이 랑터우 섬에서 보낸 시간 중에서 가장 좋았다. 여행의 묘미는 예상치 못한 데서 오나보다. 일단 배에 창문이 없어서 청량한 바람과 시원한 바다 색깔을 제대로 느낄 수 있었다. 해가 저물어가는 빛깔을 느끼면서 진짜 이런 게 행복이지 싶었다.
그러고 나서 내 마음을 귀신 같이 알아차린 J 덕에 홍콩 서점을 구경할 수 있었다. 나는 서점의 '서'자도 꺼내지 않았는데 J가 먼저 "넌 책 좋아하니까 서점에 한번 가볼래?"하고 물어보는 게 아닌가! 세심한 홍콩 친구들을 보면서 나도 이렇게 다정한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얼마나 많이 했는지 모른다.
저녁으로는 치킨 핫 팟(chicken hot pot)을 먹으러 갔다. 홍콩 언니 S도 퇴근하고 식당으로 와주어 다시 셋이 된 우리는 더 즐거워졌다! 치킨 핫 팟은 카레 맛이었는데 웬만큼 먹은 후에는 육수를 붓고 각종 야채, 고기를 넣어서 샤부샤부처럼 먹는 음식이었다. 저녁까지 배부르게 먹고 마트로 가서 팩에 든 밀크티를 사고 기화병가에 가서 쿠키와 빵을 샀다.
그렇게 하루 종일 잘 돌아다니고 나니 정말로 헤어질 시간이 왔다. 우리는 나란히 메트로를 탔는데 슬프게도 J가 먼저 내리고, 그다음 S가 내리고, 마지막에는 나 혼자 내려야 했다. 런닝맨 덕후 J와 한국 드라마 덕후 S는 한국어로 대화할 만큼은 아니지만 웬만한 단어들은 알고 있었는데 갑자기 나에게 '하지 마~'와 '하지 말라고~'의 차이가 뭐냐고 물었다. 나는 '하지 말라고~'가 좀 더 짜증 난(annoying) 상태라고 알려 주었다. 내친김에 '가지 마'와 '가지 말라고'의 뜻도 알려 주었다. 친구들은 배운 걸 바로 써먹었다.
"가지 마~"
"가지 말라고~"
애교 섞인 목소리로 말하는 두 친구들이 너무너무 귀여우면서도 이별이 훅 실감 나서 기분이 이상했다. 한 명 한 명 포옹을 하며 친구들과 작별 인사를 했다. 다음엔 서울에서 보자고 다짐하면서. 친구들이 다 내리고나니 덜컹이는 메트로 안에 나홀로 우뚝 서 있었다. 이렇게 진짜 친구들과 함께 하는 여행이 막을 내린 것이다. 나는 밀크티와 쿠키들이 들어있는 쇼핑백을 안고 관광객 티를 팍팍 내면서 숙소로 걸어갔다. 분명 양손 무겁게 기념품을 들고 있었는데 마음은 이상하게 텅 비어 가는 기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