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호정 소설<단명소녀투쟁기>
7월 15일에 출간된 따끈따끈한 책을 소개해요. 제1회 박지리문학상을 받은 작가 현호정의 첫 소설 <단명소녀 투쟁기>입니다.
눈빛으로 말을 거는 듯한 남서현 작가의 표지 그림, 단명에 투쟁한다는 강렬한 제목, "필사적으로 살아내고야 마는 슬프지만 아름답고 낯설지만 용감한 투쟁"이라는 띠지 카피에서부터 독자의 시선을 꽉 붙드는 책입니다. 책갈피로 사용할 수 있는 가름끈이 하양과 검정, 두 가지라는 점도 눈길을 끕니다.
살고 싶다는 마음이 안 생기면 죽기 싫다는 마음으로, 순순히 죽어 줄 수 없다는, 이대로 죽을 순 없다는 마음으로 지내 보려고 한다. 솔직히 많이 피곤하고 옷도 불편한데, 또 곰곰 생각해 보면 그렇다. 정말로 초대받지 않았다면 우리는 애초에 여기에 어떻게 들어온 거지. - 2021년 봄, 호정(수상 소감 중)
주인공 구수정은 입시 전문 점쟁이 북두로부터 "야, 넌 스무 살이 되기 전에 죽는다"라는 말을 듣습니다. 곧 목숨을 잃을 운명에 처한 열아홉 수정은 "싫다면요?" 하고 반격하지만 돌아오는 건 남동쪽으로 계속해서 걸어간다면 시간을 벌 수 있다는 말뿐. 그리하여 수정은 두 발로 뚜벅뚜벅 길을 떠납니다. 삶을 향한 여정에는 친구가 만수무강하라며 건넨 백설기 백 조각과 주인 없는 커다란 개 한 마리가 함께합니다. 수정은 포실포실 김을 내는 백설기로 배고픔을 달래고, 개에게는 '내일'이라는 이름을 붙여 줍니다.
"나는 죽지 않을 것이다. 적어도 오늘은 아니다."(p21)라는 결심으로 수정은 사자를 닮은 내일의 가슴에 손을 댑니다. 그 순간 내일의 옆구리에서 날개 한 쌍이 펼쳐지고, 수정과 내일은 하늘로 떠올라요. 멀리 날아갈수록 내일은 점점 더 커지고 강해지고요. 긴 여정의 시작을 알리는 이 대목에서 저는 미야자키 하야오의 애니메이션 <모노노케 히메>가 생각났어요. 이후로는 애니메이션 그림체로 그려진 주인공들이 제 머릿속을 뛰어다니더라고요. 분명 활자를 읽고 있는데도 구체적인 그림이 그려질 만큼 묘사가 세세하고, 이야기가 펼쳐지는 무대는 박진감이 넘친답니다. (언젠가 <단명소녀 투쟁기>도 영상화되길 손꼽아 봅니다!)
이 책의 또 다른 주인공은 '이안'입니다. 죽기 위해 북쪽으로 가는 아이로, 수정과는 동갑내기입니다. 둘은 마음을 나누며 험난한 여행을 함께합니다. 수정은 이안이 왜 죽고 싶어 하는지 차츰 알게 되고요. 이안과 만난 첫 순간은 두고두고 애틋하게 기억해요.
훗날 수정은 이 장면을 수없이 떠올리며 누구와 나눌 수 있는 순간 가운데 가장 소중한 순간이란 바로 이 순간이라고 생각하곤 했다. 서로에 관해 아무것도 모른 채 마주보는 첫 순간. 아직 아무런 말도 주고받지 않은 순간. 각자의 마음속 상처에 관하여 서로가 완전히 무죄인 유일한 순간. (p24)
책을 순식간에 다 읽고 "몽환과 비현실의 세계에 단도직입으로 다가서는 천연덕스러움이 돋보였다"는 구병모 소설가의 심사평에 깊이 공감했습니다. 수정과 이안은 서로를 의지하며 생과 죽음이라는 각자의 목적을 향해 돌진해요. "서로의 몸에 몸을 얽고 서로의 마음에 마음을 얽"고(p90) 저승의 신과 반인반수의 괴물들이 기다리는 냉혹한 세계로 들어갑니다.
과연 수정은 죽지 않고 성인이 될 수 있을까요? 죽음을 바라는 이안의 열망은 변함없을까요? 정소현 소설가가 평했듯 "무슨 일이 일어날지 예상해 봐야 어김없이 어긋"나는 이야기 <단명소녀 투쟁기>에서 확인해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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