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버스를 타고 지하철을 갈아탄다.
버스를 타는 것은 항상 눈치싸움이다. 내가 타지 않는 버스가 멈추지 않도록 딴짓을 하며 '난 너를 타지 않을 것이야.'라는 말을 온몸으로 뿜어내야 한다. 고개를 들지 않고 휴대폰만 주구장창 바라본다든지, 도로를 향했던 몸을 빙그르르 틀어버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버스가 내 앞에 서서 출입문을 열어버린다면 눈을 어디다 둬야 할지 모를 정도로 미안하고 난감하다. 드디어 기다리던 나의 버스가 저 멀리서 보인다. 그렇담 이제 '난 너를 기필코 타야 해!!'란 자세를 장착해야 한다. 당장이라도 버스에 탈 기세로 몸을 움직여본다. 휴대폰엔 눈길조차 주지 않는다 혹여나 날 지나치고 갈지 모르니깐 말이다. 버스가 점점 가까워지기 시작하면 들썩들썩 왔다 갔다, 누가 봐도 저 버스를 타야 되는 사람이 된다. 그렇게 올라탄 버스엔 드문드문 승객들이 있다. 버스가 출발하기 전에 얼른 자리를 잡고 앉아본다.
버스가 첫 번째 목적지에 도착했다. 기사님께 감사 인사를 건네고 버스에서 내린다. 답답했던 콧속으로 시원한 바깥의 공기가 들어온다. 상쾌하다. 눈앞에 있는 지하도로 향한다. 천천히 한 걸음씩, 넘어질듯한 발걸음을 가진 아빠와 팔짱을 끼고 계단을 내려간다. 아빠와 팔짱을 꼈던 게 결혼식 입장 때였나... 그 이후로 처음이다. 지하철의 많은 계단 덕분에 십여 년 만에 아빠와 팔짱도 껴본다. 버스를 함께 타고 온 사람의 얼굴도 보인다. 다들 어디를 향해 가는 걸까. 지하철이 들어온다. 앉아있던 사람들이 우수수 일어나고 우리 역시 스크린 도어 앞으로 간다.
지하철 의자에 사람들이 빽빽이 들어차있다. 옹기종기 어깨를 맞대고 앉은 이들을 보면 괜스레 웃음이 나고 귀여워 보인다. 지난달 보았던 지하철 승객은 모두가 까만 사람이었다. 두터운 까만색 패딩을 입고 까만 바지를 입은 채 까만 신발을 신고 어깨를 맞댄 사람들. 나 역시 그들 사이에 끼인 무채색의 사람이었다. 그런 그들의 모습이 조금씩 아주 조금씩 바뀌고 있다. 봄의 무게를, 봄의 색을 가진 이들이 드문드문 보이기 시작했다. 나는 버스에서 지하철로 환승했고, 계절은 겨울에서 봄으로 환승하는 중인가 보다.
햇빛을 받는 등이 따사로워진다. 눈이 부셔 얼굴이 찡그려지지만 싫지 않다. 아무리 늦게 가라 떼를 써도 흐르는 건 시간이고 계절이다. 눈이 내리던 하늘에선 반짝거리는 햇살이 내려온다. 추위에 움츠려 매섭게 패었던 눈가 주름 비탈길이 완만해지고 있다. 완만함은 조금씩 마음으로 내려온다. 작은 뒷동산같이 완만한 내 마음. 달력이 가리키는 날짜 옆엔 경칩이란 글자가 새겨져 있다. 겨울잠을 자던 개구리가 잠에서 깨는 그 순간이 오늘이다. 초록의 개구리가 맞이할 초록의 새순들. 선잠을 깨는 개구리가 떠오른다. 기지개를 쫙 펴보는 개구리가 떠오른다. 봄은 역시 색의 계절이다. 초록, 노랑, 분홍, 다홍. 까만색은 감히 끼어들지 못할.
해가 저무니 바람이 다시 차가워진다. 아직 완벽한 계절의 환승은 이루어지지 않았나 보다. 얇게 입고 나간 겉옷을 움켜쥐어본다. 앙칼진 꽃샘추위도 결국 지나가겠지. 우린 어느새 봄날에 있겠지. 폭닥한 봄의 날 한가운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