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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만보 Dec 02. 2019

프로신고러의 일상

얌체 같은 행동을 좋아하지 않는다. 더 정확하게 얘기하면 좋아하지 않는 정도가 아니라 얼굴이 찌푸려질 정도로 티 나게 싫어한다. 그리고, 타인에게 피해를 주는 얌체들에게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응징을 하기도 한다.


퇴근 시간에 올림픽대로에서 분당으로 진입하는 도로는 늘 줄이 길다. 운전자들은 하염없이 차 안에서 줄이 빠지기를 기다린다. 조금씩 거북이처럼 기어가다 보면 잠깐 틈이 벌어질 때 번개같이 옆에서 끼어드는 차들이 있다. 예전에는 그런 차들을 보며 뭐 저런 인간들이... 하고 한마디 했겠지만, 요즘은 (끼어들기 금지 구간이므로)블랙박스에 녹화된 영상으로 신고를 해버린다.


버젓이 장애인 주차 구역에 차를 대놓은 일반 차량을 발견하고 사진을 찍어 신고 앱에 올린 적도 있고, 한 때 팔로우하던 인스타그래머가 통신판매번호도 없이 건강식품 가루가 지방을 분해한다며 공동구매를 진행하는 것을 보고 식약처에 민원을 넣기도 했다. 일반인으로서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라고 생각하며.


며칠 전 단톡방에서 한 지인이 주차위반으로 신고를 당했다며 흥분해서 하소연을 했다. 밤늦게 아파트 단지에 주차할 자리가 없어서 할 수 없이 장애인 주차구역에 차를 댔는데 누군가 신고해서 벌금 고지서가 나왔다는 것. 어떤 인간이냐, 진짜 할 일 없는 사람이다, 지는 뭐가 그렇게 잘나서...라는 원망을 쏟아냈고, 다른 사람들도 함께 거들며 위로해주는 분위기였다. 그 상황에서 내가 바로 그런 사람이라고 대놓고 말하기도 뭣하고, 다른 사람들처럼 동조해주지도 못하다가 말할 타이밍을 놓치고 지나가 버렸다.


나로 인해 벌금을 물었거나 계도 대상이 된 누군가도 친구와 가족들에게 저렇게 투덜대며 화를 풀고 있을지 모르겠다. 자각보다는 원망과 증오의 감정을 분출하고 있을 지도 모르는 일이다. 그 사람들이 정말 애를 먹다가 하는 수 없이, 정말 급한 일이 있어서 잠깐 끼어들고 주차한 것일 수도 있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신고하지 않을 이유를 찾지 못한 나는 타인에게 피해를 주는 얌체들을 보면 또 신고 앱을 열고 있을 것이 분명하다.


누군가는 지켜보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귀찮음을 무릅쓰고 적극적으로 행동한다는 것을 어떻게든 표현하는 프로 신고러의 일상은 쪼끔 피곤하다.


딸내미가 그린 까칠대마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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