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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만보 Dec 02. 2019

마지막 한 덩어리

여자들끼리 밥을 먹거나 디저트를 먹을 땐 이상한 공통점이 있다. 접시에 여지없이 한 조각의 음식이 남는다는 것. 늘 궁금했다. 여자들은 왜 마지막 남은 한 덩어리에는 손을 대지 않는지. 모두 식사가 끝난 것 같은 분위기에서 나 혼자 아쉬운 티를 내지 않으려고 음식을 그대로 둔 채 일어서는 경우가 많았다.


여자들이 모이면 1인 1접시를 주문하기보다는 음식을 골고루 시켜서 나눠먹는 경우가 많다. 수다를 떨면서 앞접시에 덜어 먹다 보면 금세 배가 불러오고 젓가락이 가는 빈도가 뜸해진다. 그런 상황에서 끝까지 기를 쓰고 음식을 뜨는 것이 먹성 좋은 사람으로 비칠까 봐 신경이 쓰이기 시작한다. 나 혼자 접시를 뒤적거리면 뭔가 부족하다는 느낌을 줄까봐 괜시리 미안하다. 이런 상황에서는 배가 덜 불러도 수저를 내려놓는 것이 낫겠다는 판단을 한다.


모든 사람이 분위기를 의식해서 입이 짧은 것은 아닐 테고, 한편으로는 우리가 딸들이라서 엄마의 모습을 무의식중에 닮는 것 같다는 생각도 해보게 된다. 어머니들은 식탁에서 가족들이 먹는 모습을 지켜본다. 무엇이 부족한지 살피고 그릇에 음식을 더 채운다. 인기 있는 반찬은 아버지와 자식들이 한 입이라도 더 먹을 수 있게 배려한다. 공감을 잘하고 눈치가 빠른 딸들에게 엄마의 그런 모습이 체화되어 있는 것이 아닐지.


인터넷을 검색해보면서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서양에도 마지막 남은 음식을 기피하는 미신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마지막 남은 음식을 먹으면 살찐다, 혹은 마지막 하나를 먹으면 딸(아들)을 낳는다는 우스갯소리를 하는 것처럼, 서양에는 마지막 남은 음식을 먹으면 결혼을 못 한다는 속설이 있다고 한다. 마지막 기회를 잡는 행동이 미안하고 뻘쭘한 것은 사람들에게 공통된 감정인가 보다.


X세대라는 이름이 붙을 정도로 주목을 받았던 진보적인 세대에 속해 있지만, 여전히 나는 속마음을 노골적으로 드러내는 것에 익숙하지 않고, 상대의 심기를 살피는 사람이다. 식당이나 카페에서 나보다 어린 세대들의 모습을 보면, 주변의 시선에 상관없이 감정이나 욕구를 표현하는 것에 자유로운 특유의 분위기가 있다. 낯설게 느껴지는 모습에 놀랄 때도 있지만 나에게 없는 그들의 솔직함이 부럽고 응원해주고 싶다.


이거 먹으면 살찌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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