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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만보 Dec 09. 2019

한식조리사

어릴적 TV에서 봤던 예능 프로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연예인 출연자들이 요리를 맛보고 즉석에서 어떤 재료가 사용되었는지 맞추는 프로그램이 있었다. 출연자들은 음식을 꼼꼼하게 먹어 보고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답을 맞히려고 애썼지만 주재료와 부재료를 모두 맞추는 것은 쉽지 않았다. 그때, 당시에 요리 잘한다고 알려졌던 가수 진미령 씨가 나와서 음식을 몇 번 떠먹고는 주재료며 양념 가루 하나까지 정확하게 맞춰 사람들을 깜짝 놀라게 했다. 어릴 때 봤던 그 장면이 워낙 충격적이어서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이 난다. 뭐든 할 거면 저 정도 경지는 되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결혼을 하고 한식조리사 공부를 했다. 음식에 관심이 많았고 한식 상차림에 대한 약간의 자부심도 있었다. 지인들을 초대해서 음식을 대접하는 것이 취미였는데 제대로 요리를 배워두면 좋을 것 같았다. 자격증반에 등록하고 퇴근 후 학원으로 직행해서 클래스를 들었다. 한식조리기능사 자격증 시험을 위해 50여 개의 요리를 하나씩 만들어보는 수업이었다. 시험장에서는 그중 2개의 요리가 무작위로 출제되므로 조리 과정을 달달 외워야 했다.


메뉴 중에는 친숙한 음식도 있었고, 시험이 아니었더라면 평생 해먹을 일 없겠다 싶은 음식도 있었다. 우둔살을 채 썰어 육회를 만들고, 찹쌀가루를 익반죽해서 화전도 빚었다. 징그러워 손을 대본 적도 없었던 동태의 비늘을 걷어내고 내장을 손질해 찌개를 끓였다. 불 쓰는 것에 익숙해지고 칼질이 빨라졌다. 음식을 만드는 동안은 잡생각도 들지 않을뿐더러 한 가지 일에만 몰두할 수 있어서 좋았다. 


연습은 즐거웠으나 실기 시험은 생각보다 어려웠다. 한 시간 동안 2개의 요리를 순서에 맞게 만들어 동시에 제출해야 하는데, 한 시간이 그토록 짧을 수가 없었다. 서두른 탓인지 평소보다 모양이 잘 나오지 못해서 애가 탔다. 첫 번째 시험에서는 떨어져도 연습이라고 생각했다. 두 번째 시험에서 떨어졌을 때는 세 번째에 꼭 붙을 것 같다며 다시 의욕을 불태웠다. 세 번째로 시험장에 들어간 날, 한식 실기 메뉴 중 최고로 어렵다는 '어선'이 출제된 것을 보며 가슴을 쳤다. 이 자격증은 나와 인연이 없나 보다 생각하며 3수생 생활을 끝으로 도전을 중단했다.


바쁘다는 핑계로 외식에 의존하는 날이 많지만, 어쩌다 한 번씩 요리할 일이 생기면 괜히 각 잡고 칼을 써본다거나 음식에 윤기를 입혀보기도 한다. 마법의 주문처럼 외웠던 기본양념 '파마후참깨간설'은 여전히 어떤 음식을 만들어도 한식 고유의 맛을 내게 해준다. 


요리의 기본도 배웠고 실력도 늘었으나 중간에 포기했던 선택에 여전히 미련이 남는다. 이 찜찜함이 싫어서 내 성격에 언제고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서 이번엔 끝을 보려고 할 것 같다. 흔히 '독한 것'으로 불리는 못 말리는 성격을 하필 내가 가지고 있다.



동태 포를 떠서 내용물을 감싸는... 어선 (출처: 만개의레시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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