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로 돌아간다면 해보고 싶은 일이 있다. 풀이 과정에서 막히는 수학 문제가 있을 때 원리를 확실하게 이해하고 다시 푸는 것. 내가 수학을 잘 못했던 이유는 이렇게 하면 될 것 같다는 감으로 문제를 풀었기 때문이었다. 모든 과정이 이해되지 않아도 이렇게 저렇게 풀다 보면 답이 나올 때가 있었다. 하나도 이해가 안 될 땐 풀이 과정을 통째로 외었다. 운이 좋으면 답을 맞혔고 그렇지 않으면 틀렸다.
1박으로 놀러 간 자리에서 누군가 와인을 준비해왔다. 펜션에 마침 T자형 코르크 스크류가 있었다. 날개형 오프너는 사용해봤지만 T자형은 사용해본 적이 없었다. 요즘은 뭐든 찾아보면 나오니까 유튜브에서 와인 따는 방법을 검색했다. 동영상을 적당히 건너뛰며 대충 방법을 파악하고, 비슷하게 따라 해봤더니 와인 코르크가 쉽게 빠져나왔다. 따는 데 애를 먹었더라면 동영상을 다시 찬찬히 봤겠지만, 운 좋게 한 번에 성공하는 바람에 나는 이제 날개형 오프너가 없어도 와인을 딸 수 있는 사람이라고 믿었다.
최근에 집에 손님을 초대하고 와인을 따야 하는 상황이 생겼다. 예전 경험을 떠올리며 당연히 내가 할 수 있다고 자신 있게 말하고 기억을 되살려 오프너를 잡았다. 분명 그때 했던 대로 흉내를 내서 스크류를 꽂았는데, 코르크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모양 빠지게 와인병을 붙잡고 씨름하다가 결국은 다른 사람의 도움으로 와인을 간신히 '해체'해서 마실 수 있었다.
손님을 보내고 나서 오래전에 봤던 와인 따는 법 동영상을 다시 찾아보았다. 그 당시에는 띄엄띄엄이지만 끝까지 봤으니까 이해했다고 생각했는데, 내가 건너뛰고 빼먹은 부분에 중요한 포인트가 숨어 있었던 것을 발견했다. 스크류를 꽂을 때의 기울기, 당기는 방향, 걸이의 위치 같은 것들. 핵심을 이해하지 못한 채 얼렁뚱땅 넘어가고, 이후 비슷한 상황을 만나도 여전히 헤매는 나의 모습은 학창 시절이나 지금이나 똑같다. 문제를 처음 풀던 그 순간에 원리를 확실하게 이해했다면, 어려웠던 수학 문제도 한 단계씩 미션을 클리어하듯 재미있게 풀 수 있지 않았을까.
이루어질 리는 없지만 다시 학생이 되어 수학을 배운다면 단연코 선행보다 개념을 충실하게 학습할 것이다. 마음먹은 김에 수학 학원을 운영하는 이웃집 엄마에게 어른이 등록해도 되냐고 진지하게 물었다가 바로 퇴짜를 맞았다. 뭐든 할 수 있을 때 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