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장만보 Dec 19. 2019

나의 고양이

집 근처에 산책을 하러 나갔다. 평소처럼 걷고 있는데, 내 앞에 가던 여자가 산책로를 벗어나 길이 아닌 곳으로 걸어간다. 여자는 오른손을 번쩍 들고 누군가에게 신호를 보낸다. 갑자기 숨어있던 길고양이들이 모습을 드러내고 여자의 손이 가리키는 곳으로 재빠르게 모여든다. 야생의 길냥이가 사람을 따르는 모습이라니... 고양이들은 여자의 주변에서 꼬리를 빳빳하게 세우고 기다렸다는 듯 애정 표현을 한다. 여자는 아주 익숙하게 고양이들 틈으로 들어가 인사를 나누고 사료를 그릇에 덜었다. 


아무리 밥을 줘도 사람을 따르지 않는 우리집 고양이가 떠올랐다. 이것 좀 잡숴 달라고 애걸을 하면 마지못해 한 번 먹어주는 까다로운 성격에 가족 이외의 사람이 집에 오면 내내 구석에 숨어있을 만큼 겁이 많았다. 그러다가 자기가 심심할 때 홀연히 사람 앞에 나타나 엉덩이를 두드리라고 들이밀기도 했다. 건성으로 두들기면 마음에 안 든다고 손을 깨물고, 만족스러우면 코를 비벼댔다.


까탈을 떠는 한편 빙구 같은 면을 보여줄 때도 있었다. 몸이 반도 안 들어가는 비좁은 상자에 끼어 있기도 하고, 집 안에서 조금 뛰어다녀 피곤한 날은 대자로 뻗어 코를 골며 잠을 잤다. 동물 병원에 데려가면 긴장을 하는 탓에 진료도 하기 전부터 발바닥이 땀으로 축축해져 사람을 놀래키기도 했다. 도도함과 엉성함 사이를 왔다 갔다 하는 매력이 있었다.


이 녀석을 몇 달 전 병원에서 떠나보냈다. 결석 수술로 입원했다가 회복하는 과정에서 예기치 못한 문제가 생겼다. 호흡이 힘들어졌고, 의식이 점점 희미해졌다. 유리장 안에서 엎드려 있다가도 이름을 부르면 힘없이 꼬리를 흔들던 모습이 아련하다. 힘들게 하루하루를 버티던 녀석은 병원에서 안락사 얘기가 나왔던 날 밤 무지개다리를 건넜다.


작은 존재가 떠난 자리는 아직도 허전하고 쓸쓸하다. 반려동물이 늘 그렇듯 체온을 나누며 같이 살다가 짧은 생을 끝내고 먼저 떠난 자리에 슬픔과 그리움이 남는다. 더 오래 함께하고 싶지만 사람의 욕심인 것 같다. 


집사로 불렸던 몇 년은 특별한 시간이었다. 드러내고 애정 표현을 하는 관계는 아니었지만 고양이와 한 공간에 있는 것만으로 정서적인 안정감을 느꼈다. 털을 쓰다듬고, 골골 소리를 듣고, 까끌까끌한 혀와 말랑한 발바닥의 촉감을 느끼면 기분이 좋아졌다. 희한하게도 고양이에게 집중할 때 우울하거나 불안한 마음을 위로받을 수 있었다. 


예전에 찍은 사진을 하나씩 들여다보면 고양이가 만들어내는 각양각색의 포즈를 찍으며 즐거워하는 나의 얼굴이 함께 떠오른다. 사진 속의 고양이는 한결같은 표정이다. 집사인 너도 참 도도한데 엉성하구나 하는 생각을 하며 쳐다보았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같이 지낸 시간을 돌아보니 고양이를 돌보는 것은 나를 돌보는 것과 같았다.



우주같은 눈동자


매거진의 이전글 원리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