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새소리가 하도 요란해서 잠이 깼다. 일찍 일어난 김에 바닷가를 산책하러 나갔다. 이른 아침의 해변은 어제와 달리 활기차다. 산책로를 따라 조깅하는 사람, 바닷가에 앉아 뜨는 해를 마주하고 요가를 하는 사람, 개와 함께 산책하는 다양한 사람들이 있었다.
산책로를 걷는데 유난히 키가 큰 서양인들이 많다. 신체 비율이 우월하면 대부분 호주 사람이더라는 말을 들었는데, 실제로 만난 그들의 신체 비율은 상상을 초월한다. 한 지구 상에 살지만 우리는 전혀 다른 종인 듯했다. 이 사람들은 바지를 사서 길이를 줄여본 적이 있을까. 쓸데없는 생각을 하며 한 시간 정도 산책을 하고 허기진 배로 조식을 먹는다.
이곳의 날씨는 참 신기하다. 밤에는 마른하늘에 번쩍거리며 번개가 치다가도 아침이 되면 마술처럼 하늘이 쨍해진다. 오후에 가끔 한 번씩 비가 내린다. 어제는 우울해 보였던 빌라의 정원이 햇볕을 받아 반짝거린다. 정원사들은 새벽부터 부지런히 정원의 나무들을 손질하고 있다.
정원 뒤편에 작은 규모의 수영장이 있는데, 이용하는 사람이 없어 조용하고 깨끗하다. 아무도 없는 뒤뜰에서 우리 가족이 물놀이를 하며 소음을 만들었다. 선크림 대충 바르고 물속에 몇 번 들락날락했더니 금세 등이 빨갛게 화상을 입었다. 적도의 햇살을 너무 만만하게 봤던가보다.
사누르에도 큰 쇼핑몰이 있다는 정보를 사전에 입수해두었다. 구글맵에 저장된 위치를 찾아갔다. 쇼핑몰에는 어마어마하게 많은 공예품과 생필품이 있었다. 구경만 해도 몇 시간은 훌쩍 지나겠다. 하지만 동대문처럼 옷을 쌓아놓고 파는데 품질에 비해 가격이 너무 비싸다. 아마도 이 지역을 방문하는 유럽인들을 겨냥한 쇼핑몰인 듯하다.
의류, 잡화, 식료품을 구입할 수 있는 사누르의 쇼핑몰 Hardy's
숙소에 돌아오니 관리인 아저씨의 강아지가 드넓은 숙소 정원에서 털을 휘날리며 뛰어다니고 있다. 발리의 길에 흔하게 보이는 동물들이 개와 닭이다. 심지어 차도에 드러누워 잠을 자는 개를 본 적도 있다. 날이 더우니 개들은 아무 데나 누워 내내 잔다. 그러다가 이렇게 활기차게 뛰어다니는 개를 보니 신기하다. 정원을 돌던 강아지가 갑자기 객실로 뛰어들어가자 지켜보던 사람들이 웃음을 터트렸다. 개도 사람도 어릴 때는 어떤 행동이든 허락이 되는 특권이 있다.
잔디 위에서 뛰는 솜뭉치
저녁으로 소꼬리 수프를 해치우고 방바닥에 우리 가족의 취미생활 루미큐브를 펼친다. 얼마 전까지도 지는 것이 분해 게임을 하며 숱하게 울던 녀석들이 요즘은 칩 하나 내려놓지 못한 채 게임이 끝나도 능청스럽다. 눈물 많고 여리던 아이들도 때가 되면 단단해지는데 괜히 일찍부터 엄하게 몰아친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 미안하고 뭉클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