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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y8 발리 - 로비나(Lovina)

by 장만보

우붓 새벽 시장에 구경을 나갔다. 과일 트럭에서 망고스틴을 조금 담고, 짜낭과 향 스틱도 샀다. 게스트하우스 안에 사원이 있는데, 아침마다 부지런히 사원 곳곳에 짜낭을 올리고 향을 피우는 아주머니 뒤를 따라 꽃이 담긴 바구니를 방문 앞에 가지런히 놓고 향을 피운 뒤 기도를 올렸다. 나는 우리 가족의 평안을 위해 기도했지만, 나중에 들으니 힌두교 신자들은 매일같이 온 세상의 모든 것에 감사하는 내용으로 기도를 올린다고 했다.

우붓 새벽 시장에 모인 사람들


게스트하우스 방 앞에 놓은 오퍼링


이동을 위해 트립어드바이저에서 차량을 검색해 미리 예약해두었다. 쾌적한 택시를 몰고 온 가이드 와얀을 만나 베두굴 사원으로 향했다. 브라탄 산 꼭대기에 있는 베두굴 사원(정식 이름은 울룬 다누 브라탄 사원)까지는 우붓 시내에서 한 시간 반 정도 소요된다고 했다.


브라탄 호수로 올라가는 길에 만난 이국적인 풍경은 아름다웠지만 길이 좁고 구불구불한 데다가 경사로가 많아서 괜히 시내를 떠나 너무 먼 곳까지 일정을 잡았나 하는 생각이 잠시 들었다. 오르막과 내리막이 이어지는 길에서 빠른 속도로 나타나는 차량과 오토바이, 길을 건너는 개와 닭을 피해 운전하는 것은 쉽지 않아 보였다. 와얀은 연륜이 있는 기사이자 가이드였고 능숙한 운전 솜씨로 우리를 목적지까지 안전하게 데려다주었다.


힘들게 돌아 돌아 도착한 베두굴 사원의 입구로 들어서니 이제까지 본 적도 상상한 적도 없는 풍경이 펼쳐졌다. 수만 년 전 폭발했다는 화산 정상에는 커다란 칼데라호가 있고 날씬한 석탑이 물에 띄운 듯한 모양으로 세워져 있다. 산 정상은 화창했고 바람이 시원하게 불었다. 쨍한 태양과 하늘, 구름, 호수, 그리고 그 위에 올려진 석탑은 며칠 동안 머물면서 보아왔던 것과 다른 고요한 발리의 모습이었다. 뭉게구름과 호수를 배경으로 한 탑의 모습은 어린 시절 보았던 만화 속 머털도사가 살던 봉우리처럼 신비로웠다.


브라탄(Bratan) 호수에 지어진 울룬 다누 브라딴 사원(Pura Ulun Danu Beratan)


사원 안에는 힌두교 조형물뿐만 아니라 불교를 상징하는 조각상도 있었다. 와얀은 힌두교가 모든 신에게 자비로운 종교라고 설명해주었다. 그리고, 종교를 믿는 사람들 중 선하지 않은 사람이 있을 뿐 세상의 모든 종교는 선한 것이라는 명언을 남겼다. 여행 전 카페와 인터넷을 뒤적거리며 상상했던 발리 사람들과 달리, 현지에 와서 만난 사람들은 세상의 모든 것과 온 우주에 감사하는 마음을 지닌 선하고 너그러운 사람들로 보였다.


한 시간쯤 지나 눈 앞에 드디어 바다가 펼쳐진 것을 보니 로비나에 도착한 모양이다. 이번 가족여행에 굳이 먼 발리 북부 지역을 포함시킨 것은 순전히 나의 버킷 리스트 하나를 이루기 위해서였다. 오래전부터 바다에서 돌고래가 뛰어오르는 모습을 보고 싶은 소원이 있었다. 반짝이는 수면 위에서 돌고래가 점프하는 광경을 보면, 살면서 힘든 순간에 한 번씩 떠올릴 소중한 기억이 될 것 같았다.


영문도 모르고 발리의 시골 구석까지 따라온 나의 가족들은 게스트하우스와 그 앞에 펼쳐진 논의 풍경에 무척 낯설어하고 있었다. 어렵게 검색해서 찾은 이번 숙소는 한동안 투숙객이 없었던 곳인가 보다. 깔끔하게 관리되어 있었지만 군데군데 거미줄이 있고, 수도꼭지를 돌렸더니 정말 오랜만에 물이 나온다는 것을 냄새와 소리로 알 수 있었다. 숙소 사장님이 식당과 현지 투어를 함께 운영하고 있어서, 식사도 돌핀 와칭도 이곳에서 해결할 계획이었다.

로비나 게스트하우스 Bottelmania


숙소 밖을 나갔더니 아편굴 같은 좁고 어두운 골목에 쓰레기와 뒤엉켜 사는 사람들이 있는 반면, 바로 옆에 현대식 대형 마트가 공존하는 독특한 풍경이 펼쳐진다. 로비나라는 지역에 대해서도 숙소에 대해서도 사전 정보가 별로 없던 터라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이 새롭기만 했다.


짐을 풀고 숙소에서 차려주신 참치 요리를 먹으며 내일의 원대한 계획을 설명하려는데 갑자기 옆집으로 동네 사람들이 하나 둘 모여든다. 집안에 꽉꽉 들어찬 성인 남성들은 함께 노래를 부르며 종교의식을 시작한다. 발리는 힌두교의 섬이라고 알고 있었는데 이 동네에는 이슬람 교회가 있고 많은 무슬림들이 살고 있었다. 우붓, 꾸따 지역보다 본섬인 자와 섬(자바 섬)에 근접한 로비나의 지리적 위치 때문이라고 했다. 남자들이 예배를 진행하는 동안 여자들은 주방에서 기다리며 행사가 끝나기를 기다린다. 30여 분의 예배가 끝나자 무슬림들은 제각각 타고 온 오토바이를 몰고 순식간에 각자의 집으로 흩어졌다.


난생처음 가까이에서 보게 된 이슬람 종교 행사는 이방인에게도 경건함을 느끼게 했다. 눈만 마주치면 웃으며 인사를 걸어오는 이 동네 사람들의 표정과 함께 모든 종교는 선하다고 했던 와얀의 말을 떠올리며 접시의 참치를 싹싹 긁어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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