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곳에서는 알람 시계가 필요하지 않았다. 정확하게 새벽 4시 50분이 되자 모스크의 확성기를 통해 온 마을에 쩌렁쩌렁 이슬람의 기도가 울려 퍼진다. 이방인도 얼떨결에 경건한 아침을 맞는다.
5시 30분. 별이 보이는 깜깜한 새벽에 돌핀 와칭을 위해 해변으로 나갔다. 숙소 아주머니가 챙겨주신 간식 바구니를 들고 한 명씩 배에 올랐다. 1인용 좌석이 일렬로 붙은 가늘고 긴 배였다. 보트를 운전할 젊은 청년이 배의 맨 뒤에 올라앉았다.
산 위로 천천히 해가 떠오르고 시원한 바닷바람을 맞으며 우리는 돌고래가 나타난다는 포인트를 향해 달렸다. 먼저 온 배 몇 척이 바다 한가운데에 멈춰있는 것이 보였고 여기가 바로 그곳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해 뜰 무렵 돌고래를 보기 위해 모여드는 배
잠시 후 조용한 수면 위에 지느러미 같은 것이 잠깐씩 보이기 시작했다. 돌고래들은 떼를 지어 다녔고, 여러 개의 지느러미가 나타난 다음 검은색과 회색의 미끈한 등이 올라왔다.
조금 있으니 물 밖으로 튀어 오르는 돌고래들이 여기저기서 나타난다. 어느새 모여든 수십 척의 배에서는 관광객들이 소리를 지르며 사진을 찍는다. 배를 운전하는 선원들은 배 뒤편에 조용히 앉아 매서운 눈으로 먼바다를 주시한다. 멀리에서 돌고래 떼가 보이면 재빠르게 배의 방향을 바꾸어 이동한다. 배를 몰다 말고 바닷속을 손으로 가리킬 때면 배 아래 바닷속에 희끗한 돌고래들이 떼 지어 이동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바다 위로 튀어 오르는 돌고래들
돌고래가 떠오르는 포인트를 향하지만 돌고래들과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는 배도 있고, 관광객들을 돌고래에 바짝 붙이기 위해 무섭게 달려드는 배들도 있었다. 배가 돌진해오면 점프하던 돌고래들은 겁을 먹고 금세 바다 밑으로 숨어버린다. 그리고는 한동안 밖으로 나오지 않다가 멀리 떨어진 곳에서 다시 모습을 드러낸다.
이러다 쟤네들 몸살 나겠네... 돌고래들을 따라다니며 드는 생각이 딱 그랬다. 떼로 나타나면 환호하고, 높이 점프하면 좋아하고. 돌고래 가족의 아침운동은 인간을 기쁘게 하는 공연이었다.
언젠가 돌고래가 자주 눈에 띈다는 제주도 고산리에 갔을 때, 해안가 편의점 사장님이 편의점에 앉아 있으면 먼바다에서 애들이 뛰어노는 모습이 보인다는 얘기를 해주었다. 딱 그 정도의 느낌을 기대했다. 애들이 뛰어노는 모습을 흐뭇하게 바라보는 것.
돌핀 와칭은 숨을 쉬기 위해 물 위로 올라오는 돌고래들을 쫓아가는 일종의 오락과도같았다. 우리는 도망가는 짐승을 기를 쓰고 따라가 카메라에 담는 야만적인 인간들이었다. 아침해를 받으며 점프하는 돌고래는 아름다웠지만 지켜보는 내내 마음이 불편했던, 복잡한 감정이교차하는 순간이었다.
무리를 벗어나 한적한 곳으로 이동했다. 잠시 배를 멈춘 청년이 바구니에서 커피와 바나나 튀김을 꺼내 준다. 파도가 없는 잔잔한 바다 위에서 보온병에 담긴 커피를 마시면서 흥분을 가라앉혔다. 코랄빛 바다에 식빵 부스러기를 떼어 던지며 몰려드는 귀여운 물고기들을 한참 구경했다. 돌고래들을 보고 난 뒤의 평온했던 이 순간이 내게는더 따뜻한 기억으로 남아있다.
파도가 거의 없는 로비나의 바다
숙소로 돌아왔더니 아주머니가 밝게 웃으며 다시 아침을 차려주신다. 배부르게 먹고 한숨 자고 일어난다. 새벽에 바다 좀 나갔다고 몸이 피곤해서 종일 숙소를 벗어나지 않고 뒹굴거렸다.
시골 마을회관의 안내 방송처럼 확성기를 통해 논두렁 사이로 퍼지는 무슬림의 기도문을 들으며 밀린 빨래를 하고 일기를 쓴다. 특별한 일을 하지 않아서 더 편안한 진정한 휴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