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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y10 발리 - 낀따마니(Kintamani)

by 장만보

숙소에서 아이들과 포켓볼을 치는 동안 운전기사인 와얀이 미리 도착해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이제 여행의 마지막 숙소가 있는 파양간으로 간다. 날씨가 좋으니 낀따마니 지역을 거쳐 이동하는 것으로 합의했다.


발리의 옛 주도였다는 싱가라자를 지나 산길을 타고 오른다. 싱가라자는 큰 도시라고 하더니 발리에 온 이후로 여기서 처음 신호등을 봤다. 어디에서든 신호등 없이 우회전을 하고 신호등 없이 무단횡단을 하는 모습은 이제 익숙하다. 일단 끼어드는 것이 요령이다.


낀따마니 지역에서는 두리안이 많이 나고 더 높은 지대에서는 오렌지도 재배된다고 한다. 제주도 길가에 늘어선 감귤 판매점처럼 이 곳의 산길에는 곳곳에 두리안이 수북이 쌓여있다. 자꾸 보니 두리안과 잭프룻이 이제 조금 구분이 되는 듯하다. 나무에 다닥다닥 붙어 있는 모습은 비슷하지만 두리안이 더 동글동글하고 돌기가 뾰족하다.


정상에 올라오니 박소를 파는 노상 식당과 작은 구멍가게들이 빽빽하다. 현지 관광객들이 많이 방문하는 곳인가 보다. 우리는 호수가 한눈에 들어온다는 식당에 차를 대고 들어갔다. 식당 홀을 지나 테라스로 나가는 순간 오 신이시여, 입이 자동으로 벌어진다. 뷰 맛집이라는 간지러운 말로는 이 벅찬 감정을 형언할 수 없다. 나의 빈약한 어휘력이 원망스럽다.


맞은편에 보이는 바뚜르 화산과 아방산 위에서 구름이 뻗어 나오고, 바로 아래 화산 분화구였던 움푹한 지대에는 마을과 농지와 호수가 있다. 눈 앞에 펼쳐진 그림 같은 풍경에 압도되어 한동안 말없이 서있었다.


와얀은 고지대의 날씨가 변덕스러워서 늘 이런 풍경을 볼 수 있는 것은 아니라며 오늘 우리가 운이 좋았다고 말했다. 와얀, 난 정말 이런 날씨를 허락해준 당신의 신에게 감사한다!


칼데라 레스토랑의 테라스에서 바라본 낀따마니 (킨타마니, Kintamani) 화산 지대


메뉴판을 탐색한 뒤 바뚜르 호수에 양식한다는 희귀한 물고기 무자이르(mujair)를 주문했다. 생선살에서 나는 흙 맛을 좋아하지 않는 편이지만, 산지에 왔으니 경험 삼아 먹어보기로 했다. 모양은 그럴듯했는데 생선보다도 소스가 더 입에 맞지 않아 결국 생선 살만 대충 발라 먹었다. 피자와 파스타를 주문한 아이들이 부러웠다. 와얀이 나시고랭을 남긴 것을 보면 요리가 맛있는 식당은 아니었던 것 같다.

무자이르 생선 요리


밥을 먹고 나오다가 길을 지나는 사람들의 긴 행렬을 보게 되었다. 사람들이 음악에 맞춰 퍼레이드를 하는 것인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이들은 장례식을 하는 중이었다. 상여를 받치고 몇 사람이 앞에서 걸어간다. 그리고 그 뒤를 천천히 따르는 트럭에 사람들이 자유롭게 걸터앉아 마이크를 들고 큰 소리로 노래를 부른다. 길을 가던 오토바이들도 앞지르지 않고 속도를 맞춘다. 잔칫날 같은 힌두교의 장례 행렬이 바로 맞은편 차도에서 지나가고 있었다.


육신을 보내는 것은 슬픈 일이지만 힌두교의 장례식은 영혼이 새로운 생명으로 탄생하는 것을 축하하는 의미가 크다고 한다. 마을 사람들은 슬퍼하는 대신 더 고귀한 존재로 태어나기를 기도하며 망자의 새로운 시작을 축복해주고 있다. 이 지역에서 만났던 사람들의 온화한 표정은 윤회를 믿는 세계관에서 비롯된 것 같기도 하다. 한 번 살고 끝나는 것이 인생이라고 생각해서 이번 생에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해보려는 욕심이 자꾸 생기는 것이 아닐지. 타지를 여행하면서 그 지역 사람들의 종교와 생활을 관찰하다 보면 여행의 잔잔한 재미가 느껴진다.


낀따마니에서 파드마 리조트는 멀지 않았다. 여행은 끝이 좋으면 전체적으로 좋았다고 기억되는 경향이 있다. 가장 화려한 숙소를 마지막에 거치도록 모든 여정의 동선을 맞춘 것은 이번 여행의 빅픽쳐였다.


테이블에 애프터눈 티가 세팅되고 체크인을 시작한다. 리조트 수영장의 길이가 무려 80미터가 넘는다고 자랑하는 버틀러의 표정이 귀엽다. 이 리조트는 먼저 다녀온 지인의 추천으로 선택하게 되었는데, 룸 컨디션 또한 듣던 대로 훌륭하다. 체크인 전에 베개의 충전재를 선택해서 알려 달라는 이메일을 받고 이런 것 하나까지 챙기는 세심한 운영에 놀랐었다. 침실에는 내가 선택한 것 외에도 라텍스 베개가 추가로 준비되어 있었다.


파드마 우붓 리조트 수영장 / 객실


마지막 숙소에 도착하니 긴장이 조금 풀린다. 삼대가 함께 하는 가족여행 프로젝트는 기획과 운영을 거쳐 슬슬 평가 가능한 단계에 들어서고 있다. 그러나 끝까지 방심해서는 안된다. 긴장이 느슨해지고 피로감이 쌓이는 여행의 말미에 종종 크고 작은 충돌이 생기던 것을 떠올리며 마음을 다잡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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