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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y11 발리 - 파드마 리조트 우붓

by 장만보

작년에도 우기에 동남아시아 지역을 여행했는데, 리조트에 있는 내내 비가 왔다. 리조트에서 진행하는 아웃도어 프로그램에 참여할 수 없어 우울해하고 있을 때, 마침 우리와 같은 기간에 머물렀던 한국인 가족이 바로 옆 썬베드에서 3일 내내 고스톱을 치면서 즐거워하던 기억이 떠오른다. 장성한 자녀들과 엄마 아빠가 둘러앉아 날씨에 굴하지 않고 신나게 화투짝을 날리는 모습이 참 정겨웠었다. 아무튼, 여행지에서 햇볕의 소중함을 알기에, 이번에는 날이 좋을 때 할 수 있는 야외 활동은 되도록 미루지 않으려고 애쓰고 있다.


숙소 주변 트래킹 코스를 걸어 보았다. 코코넛 나무, 바나나 나무, 커피나무, 위로 자라는 나무, 옆으로 퍼진 나무... 이름 모를 꽃과 나무를 지나 걸어가면 생각지도 못한 대나무 숲이 나온다. 고개를 꺾어 쳐다봐야 끝이 보일 만큼 키 큰 대나무가 무더위 속에 시원한 그늘을 만들어주고 있다. 이 대나무를 잘라 계곡의 다리도 만들고 리조트 인테리어에도 사용하고 악기도 만드나 보다.


식사 시간이 되면 식당 앞에선 대나무로 만든 전통 악기인 앙클룽의 은은한 연주가 시작된다. 발리 다른 지역에서도 현지인들이 이 악기를 연주하던 모습이 본 적이 있다. 멜로디를 내기보다는 함께 치면서 청명한 화음을 만들어 내는 신기한 악기이다. 내게 발리를 떠오르게 하는 소리가 있다면 첫 번째는 닭이 우는 소리이고 두 번째는 앙클룽을 연주하는 소리일 것이다.


리조트의 대나무숲으로 가는 트래킹 코스


앙클룽을 연주하는 악사


리조트의 규모가 크다 보니 일하는 사람도 많은데 마주치면 미소만 짓는 것이 아니라 꼭 영어로 인사를 걸어온다. 숲이나 농장에서 일하는 인부들까지도 편하게 영어를 쓰는 것을 보면서 이 나라의 영어교육은 우리와 어떻게 다른지 궁금해진다. 노르말리, 모어르 앤 모어르... r을 심하게 굴리는 것에만 적응하면 이들의 영어는 원어민의 발음보다 또박또박 귀에 잘 들어온다.


아침 산책을 마치고 돌아오니, 리조트에서 만들어준 수건 코끼리를 소중하게 껴안고 잠들었던 아들이 망가진 코끼리를 붙들고 통곡을 하고 있다. 밥도 안 먹고 침대에 엎드려 서럽게 흐느끼고 있길래 하우스 키퍼에게 다시 한 개만 만들어달라고 부탁을 드렸다. 그놈의 코끼리가 뭐라고 이 난리를 치는지.


또 망가질 때를 대비해서 직접 만드는 연습을 해보았지만 장인의 실력을 따라가는 것은 쉽지 않았다. 어딘지 모르게 다르게 생겼다고 갸우뚱해하는 아들에게 기분 탓이라고 말하며 실패한 코끼리 덩어리들을 품에 안겨주었다.


장인이 만든 코끼리와 어설프게 흉내낸 코끼리


여기 오기 전까지 지냈던 숙소에서는 방 안에서 와이파이 신호를 찾아 돌아다니기도 했고, 축축한 수건을 말려가며 다시 쓰기도 했고, 에어컨이 없어 바람이 드는 문 앞에 쪼그리고 앉아 핸드폰을 보기도 했었다. 그에 비하니 마지막에 머무는 리조트는 우리에겐 사치라고 느껴질 만큼 호화롭다. 이미지 파일이 쭉쭉 업로드되는 인터넷 속도에 새삼 감사함을 느낀다.


리조트 수영장 풍경


여행 기간 동안 아이들에게도 여행 일기를 쓰도록 시켰다. 딸내미는 알아서 그림까지 넣어가며 중요한 기억을 기록으로 남겨 놓았다. 매일 괴로워하면서 꾸역꾸역 쓰던 아들의 여행기를 이쯤에서 한 번 읽어봤다. 평소에도 단순한 나의 아들은 일기도 단순하다. 매일 수영하고 먹고 잔 얘기가 일기의 대부분을 차지한다. 일기만 봐서는 이게 인도네시아인지 한국인지 알 수가 없다.


그 가운데 나름의 놀라운 감정을 표현한 날도 있다. 이런 일이 나에게 발생하다니! 내가 돌고래를 보다니! 배탈이 하루를 망치다니! 한국에 돌아가면 한때 유명했던 야인시대 짤을 아들과 함께 다시 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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