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장만보 May 20. 2020

어떤 일

쇼핑몰에 접속하는 즐거운 시간. 오늘 들어간 스토어에서는 참외를 판매하고 있다.


네이버에서 참외는 과일 검색 순위 10위 안에 드는 인기 과일이다. 배탈이 잦은 탓에 평소 참외를 잘 먹지 않아서 참외가 이 정도로 인기가 높은 줄은 모르고 있었다.


이미지와 가격을 확인하고 상품 소개 페이지를 위에서부터 찬찬히 읽는다. 우리나라 참외의 70%가 생산되성주에서 직배송하는 상품이다. 알칼리성 과일이어서 몸의 염증 완화에 효능이 있다고 한다. 신선하고 맛있는 참외는 노란 표면이 매끈하며 골이 하얗고 깊다.


상품 구매 후기가 많다. 간혹 달지 않아서 배송 중 몇 개가 깨져서 불만을 얘기하는 사람들이 있지만 구매자들의 평균적인 상품 만족도가 꽤 높다.




매 달 중순이 되면 스토어를 들여다보는 일을 한다. 스토어의 매출과 유입수 데이터를 통해 개선이 필요한 점을 찾아 제안하는 일이다. 매출 흐름은 어떤지, 고객들은 어떤 경로를 통해 스토어에 들어오는지, 상품을 찾기 위해 사람들이 검색하는 키워드는 무엇인지 살펴본다. 스토어와 그 데이터를 오랫동안 보고 있으면 얼굴도 모르는 판매자가 친근하게 느껴질 때도 있다.


스토어를 운영하는 판매자들이 공통적으로 궁금해하는 용어부터 설명한다. 판매에 집중하느라 사람들이 챙기지 못하는 데이터 간의 연관성을 찾아 원인과 결과를 정리해준다. 간혹 안타까운 부분이 보일 때는 이렇게 바꿔 보라고 제안하기도 한다. 항목과 분량이 정해져 있으므로 그 범위 내에서 가장 중요한 것에 대해 의견을 말한다. 판매자와 대화를 나눌 수 없고 글로만 의견을 전달해야 하니 누가 읽어도 한 번에 이해되도록 쉽고 간결하게 문장을 써야 한다.


"판매자님, 참외 5kg를 검색하고 들어온 사람들은 전환율이 낮아요. 왜 그런지 아세요? 킬로수까지 정확하게 찾는 사람들은 가격대를 어느 정도 알거든요. 시세보다 여기가 더 비싸서 안 사는 거예요. 다른 스토어보다 가격이 비싸면 우리 상품이 왜 좋은지를 마구마구 자랑하셔야 돼요."


"효율도 낮은데 여기에 광고비는 왜 계속 쓰세요... 광고에 돈 쓰지 마시고 딴 거 하세요."


"지금 참외 한 가지만 파는데 시즌이 지나면 어떡하실 거예요. 참외는 5월 지나면 인기가 시들해진단 말이에요. 농산물 중간 판매자이신 것 같은데 빨리 산지 생산자를 더 찾아서 품목을 늘리세요. 6월에는 블루베리랑 옥수수가 인기가 많아요."


...


이렇게 쓰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지만, 회사를 대표하여 나가는 공식 문서이므로 최대한 업무적인 말투로, 그래프와 숫자를 적절히 사용해서 간결하게 정제된 의견을 적는다.


몇 가지의 데이터를 통해 전체적인 스토어의 상태를 진단하는 것은 사람이 받는 건강검진과 비슷하다. 검사에 시간이 걸리고 체크하는 항목은 많으나 결과지에 적혀 있는 코멘트는 생각보다 간단하다. 건강에 큰 이상이 없으면 결과에 신경 쓰지 않는 것처럼, 스토어의 진단서도 별다른 문제점이 보이지 않으면 판매자는 대충 읽고 파일을 닫아버릴 수도 있다.


나의 문서가 꼼꼼하게 읽힐지 그대로 버려질지는 알 수 없다. 어떻게 사용되던 판매자에게는 진심을 담아 글을 쓴다. 스토어를 진단하는 것은 일이면서 동시에 글을 쓰는 연습이고 가끔은 취미생활이다. 데이터 속에서 몰랐던 사실을 발견하는 기쁨이 있다. 잘 드러나지 않던 보석 같은 스토어를 만나는 재미도 있다. 일하려고 접속했다가 장바구니에 물건을 담는 일도 빈번하다.


오지랖을 꾹꾹 눌러 근엄하게 글로 표현하는 것은 늘 어렵지만 간결한 문장 속에 내 마음의 소리가 최대한 전달되기를 바란다. 글과 함께 스토어의 매출이 꾸준히 상승하기를 기원하는 마음을 담아 메일을 발송한다.




매거진의 이전글 댓글 마케팅 공감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