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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만보 Dec 02. 2019

억양은 정체성의 표현

비영어권 국가에 살면서 영어는 늘 스트레스이다. 마음은 원어민처럼 표현하고 싶지만 실제로 내 입에서 나오는 문장은 중고등학교 때 배운 어휘에서 조금 발전한 정도에 불과하다. 외국에서 생활해서 영어를 유창하게 구사하는 사람, 특히 원어민 다운 발음을 구사하는 사람은 늘 선망의 대상이었다.


그러던 중 유튜브에서 아시아권 사람들의 발음에 관한 비디오를 보게 되었다. 미국인이 제작한 '왜 아시아 사람들은 R과 L을 잘 구분하지 못할까'라는 콘텐츠였다. 한, 중, 일 세 나라의 발음을 비교했는데, 세 나라에는 미국처럼 R과 L의 구분이 없으며, 일본의 경우 모두 R로 통일해서 발음하고, 한국은 리을이라는 유사한 발음이 있지만 미국인이 따라 하기 힘들다는 것을 조사했다. 중국은 지역에 따라서 R, L, W, ZR 등으로 발음하고, 성조가 더해져 의미가 달라진다는 분석도 들어 있었다. 결론적으로 아시아 사람들이 R과 L을 잘 구분하지 못하는 것은 국가마다 가진 고유의 발음이 미국과 다르기 때문이라고 알려주는 내용이었다.


동영상에 등장하는 한 일본인은 '억양은 정체성의 표현이므로 미국인이나 영국인처럼 발음하고 싶지 않다'라고 말했다. 평생을 원어민 영어의 노예로 살던 내 인생에 얼마나 신선한 충격이었는지... 동영상에는 공감하는 댓글이 많았고, 새롭게 알게 된 사실에 놀라워하는 사람들도 있었으며, 심지어 특이한 영어 억양을 가진 사람은 둘 이상의 언어를 알고 있다는 것을 의미하므로 비웃으면 안 된다는 의견도 있었다.


사람들은 모국어를 기반으로 새로운 언어를 배운다. 발음이 원어민과 비슷해질 수 있을지 몰라도 분명 어떤 부분에서는 내가 가진 특유의 억양이 드러날 것이다. 이를 부끄러워하기보다 당당한 정체성으로 드러내어 표현하는 용기도 때로는 필요한 것 같다.


영어 발음이 좋으면 더 소통이 잘 되는 느낌이 들 때도 있다. 특히 영어가 모국어가 아닌 사람이 발음이 좋으면 사람들은 더 주목한다. 하지만 영어권 국가에서 태어나지 않은 사람이 네이티브처럼 영어 발음을 못한다고 주눅 들 필요는 없다. 본질은 발음보다 콘텐츠에 있는 것이고, 발음이 어찌 됐건 간에 아쉬운 쪽에서는 찰떡같이 알아듣게 마련이니까.


특유의 억양이 듬뿍 묻어났던 무리뉴의 인터뷰 (출처: 토트넘 공식 인스타그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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