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벽 미 션
몹시 추운 어느 날
나는 사무실에서 일을 하다가 잠시 휴식 시간을 가졌다.
사무실 히터가 신통치 않아서 그런지
윗쪽 공기는 따뜻한데 아랫쪽 공기는 차가웠다.
건강하게 살려면
발은 따뜻하게 하고
머리는 차갑게 하라고 했거늘
정반대의 상황이다.
함께 일하는 직장 상사이자
대학 시절부터 알고 지냈던 형이 말한다.
"추운데 잠시 차나 한잔 하자~~"
머그컵에 따뜻한 한라봉차를 한잔 타서 테이블에 마주 앉았다.
머그컵 감싸쥔 손으로 온기를 품은 다음 시린 발을 주물러댔다.
또 그 손으로 차를 마셨다는 이야기는... 안 하는게 낫겠다.
아무튼 그렇게 마주 앉아서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다
서로에게 한가지씩 제안을 해보기로 했다.
나는 그 형에게 새벽에 일어나
서로 미션 수행을 해보는게 어떻겠냐고 제안했다.
요즘 나는 새벽에 일어나 생산적인 일을 하고 싶은데
생각보다 쉽지 않아 함께 할 사람을 찾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 형은 이미 새벽에 일어나 많은 일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별 다른 저항없이 순순히 제안을 수락했다.
다만 그 형도 나에게 한 가지 제안을 했다.
'미내사(미래를 내다보는 사람들)'라고 하는 모임에서
통찰력 게임이라는 걸 하는데 같이 참가하자는 거였다.
나도 별 저항없이 순순히 제안에 수락했다.
그 날부터 우린 새벽마다
영어공부, 미술공부, 독서, 새벽산책, 코어운동 같은 활동을 하며
서로에게 카톡으로 인증샷을 날려댔고
그런 우리의 모습을 지켜보던 내 아내는
남자끼리 새벽마다 뭐하냐고 놀려댔다.
두 남자의 새벽 작당은 순조로웠다.
새벽은 나에게 새로운 에너지를 주었고
혼자만의 시간을 가지면서 했던 활동은
오늘 하루를 특별하게 만들었다.
내가 특별한 사람이 된 것 같았다.
내가 나에게 엄지척 하는 느낌이랄까.
아무튼 그렇게 좋았다.
밤에 미친듯이 잠이 쏟아진다는 것만 빼곤..
밤마다 시체가 되고 새벽에 부활하길 반복했다.
통 찰 력 게 임
그렇게 시간은 흘러 드디어
통찰력 게임을 하기로 한 날이 되었다.
대구에는 통찰력 게임을
진행할 수 있는 딜러가 없어 안동까지 차를 타고 갔다.
현직 교사이신 딜러분과 인사를 하고 게임을 시작했다.
통찰력 게임에 대해 잘 모르시는 분들을 위해 간단히 소개하자면
이 게임은 언뜻보면 부루마불 같은 보드게임과 비슷한데
게임의 목적 자체는 완전히 다르다.
보드게임은 경쟁을 통해 마지막까지 살아남거나 승리하는 게 목적이지만
통찰력 게임은 게임을 하는 과정에서
자신의 문제를 해결하거나
삶의 비젼을 구체화시키는데 목적이 있다.
물론 직접 해보는 게 가장 이해하기 쉽다.
게임 참가자는 나와 그 형 그리고 다른 한 분 이렇게 3명이었고
딜러분의 진행에 따라 우린 게임을 시작했다.
우선 이 게임을 통해 해결하고 싶은 자신의 문제를 종이에 적어보았다.
나는 소원쪽지를 적듯이 '내가 잘하는 일이 무엇인지 알고 싶다'고 적었다.
그리곤 주사위를 굴릴 때마다 '내가 잘하는 일이 무엇인지 알고 싶습니다' 라고 외쳤다.
그러다보니 별 생각없이 시작했던 나도 그 문제에 대해 계속 집중하게 되었다.
'난 뭘 잘하는 걸까? 무슨 일이 나의 적성에 맞는 거지? 확신이 필요해!'
주사위를 굴려 나온 자리에서 해당하는 카드를 뒤집으면 그 카드에 적힌대로 해야 했다.
'용기', '배려', '나눔', '풍요' 같은 아름다운 키워드가 제시되고
이 키워드를 보고 느껴지는 감정을 사람들에게 이야기했다.
나는 내 감정을 이야기한답시고 장황한 이야기를 했다.
그런데 딜러분이 그건 감정이 아니라 이 키워드에 대한 생각일뿐이라고 하셨다.
느껴지는 감정을 솔직하게 이야기해달라고 했다. 그 때 난 느꼈다.
내가 내 감정을 잘 모른다는 걸.
감정이 느껴지더라도 그걸 설명하기가 너무 어려웠다.
생각보다 난 내 감정에 무딘 사람이었고 익숙하지도 않은 사람이었다.
감정을 억압하며 살아왔고 그렇게 살아야 남 보기 좋은 사람이라 여겼다.
감정 초보자인 나는 기껏해야
'초조하다' '불안하다' '설렌다' 정도의 표현으로 감정을 설명했다.
게임을 진행하시던 딜러분은 그 감정과 내 문제는 어떤 관계가 있는지 물어보았다.
갑작스런 질문에 초조해진 내가 손가락을 꼼지락거리자
내가 질문에 손가락을 꼼지락 거린 것과 내 문제는 어떤 관계가 있는지 물어보았다.
갑자기 셜록 홈즈가 나타나 나에게 질문을 해대는 것 같았다.
결국 나는 내 문제에 대한 답을 스스로의 입으로 말하게 되었다.
결론을 이야기하면 내가 잘하는 일을 찾아다니는 이유는
다른 사람과의 비교, 다른 사람들의 시선을 의식하는 초조함과 불안감이 원인이었다.
어디선가 통찰력 능력치가 +1 향상되었다는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함께 갔던 형과 다른 한 분도 그들의 문제를 이야기했고
그 문제에 대한 나름의 답을 자기 입으로 이야기하며 능력치를 향상시켰다.
게임은 거의 3시간 정도 진행되었고 나를 비롯한 다른 2명의 참가자들은
무의식 속에 있던 많은 이야기들을 쏟아냈다.
나는 갑작스레 등작한 '성(性)적특질'이라는
아름답지 못한 키워드에 당황했고
무슨 감정이 느껴지는지 설명해야 했다.
무슨 말을 했는지는 굳이 밝히지 않겠다. 별 이야긴 아니다. 진짜로.
나 자 신 에 대 해
2주 정도 했던 새벽 미션과 인상적인 통찰력 게임.
피곤하기도 하고 당황스럽기도 했지만
나 자신에 대해 조금 더 알게 된 시간이었다.
그동안 여행을 다니면서 많은 고민을 했고
그 고민의 결과로 나는 내 자신에 대해 잘 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건 그저 내 생각일 뿐이었다.
나는 내 생각만큼 아름답지도 않았고
내 생각만큼 훌륭하지도 않았다.
나는 연약했고, 불안했고, 초조했다.
그렇지만 뭔가 해보기 위해 꿈틀거렸고
상처 입지 않을만큼 나 자신을 가꾸었다.
난 내 자신을 사랑했지만
내 모습 그대로를 인정하지 못했고
나와 남을 속이면서 곁눈질해왔다.
그렇게 남의 눈치와 아는 사람들의 기대 속에
내 삶이라는 집을 지었고 난 그 집에서 호의호식한다.
스스로에 대해 알게 된다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많은 시간과 노력 그리고 용기를 내야 한다.
그리고 그렇게 한다고 해서 온전히 스스로를 알게 되는 것도 아니다.
어쩌면 평생을 다해도 이루기 힘든 과제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내 자신에 대해 조금 알게 되면서
그만큼 행복과 가까워졌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리고 예상치 못한 질문도 하게 되었다.
새 로 운 질 문
내가 내 자신의 모습이라 여겼던 것들.
누군가에 의해 이름 붙여진 나의 생각과 나의 감정.
그건 정말 나인가?
나에게 큰 충격을 준 책 에크하르트 톨레 <삶으로 다시 떠오르기>에는 이런 내용이 나온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삶의 내용물을 통해 자신이 누구인가를 정의내린다. 지각하고, 경험하고, 행동하고, 생각하고, 느끼는 모든 것이 내용물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 내용물이 관심을 완전히 차지해 버리며, 그들이 동일화되는 것이 그것이다. '나의 삶'이라고 생각하거나 말할 때 당신은 '당신 자신인 삶' 이 아니라 자신이 가진, 혹은 가진 것처럼 보이는 삶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당신은 내용물을 언급하고 있는 것이다. 자신의 정신상태와 감정상태는 물론 나이, 건강, 관계, 경제력, 일, 생활환경 등을. 사건들, 즉 일어나는 모든 일들과 마찬가지로 당신 삶의 외부환경과 마음의 환경, 당신의 과거와 미래 모두가 이 내용물의 영역에 속한다. 그렇다면 내용물 외에는 무엇이 있는가?
그 내용물의 존재를 가능하게 하는 것, 바로 의식이라는 내적 공간이 있다.
새로운 질문이다.
나의 내적 공간이라는 것.
나는 누군가의 눈에 비친 '내 자신에 대해서'도 잘 몰랐지만
그 삶의 내용물들을 존재하게 하는 나의 내적 공간에 대해선 더 모른다.
해가 지고 어둠이 찾아왔다.
이 밤이 지나 내일 아침이면 다시 해가 뜰 것이다.
도 닦는 사람처럼 그 햇살을 맞으며 정좌할 순 없겠지만
번잡한 일상 속에서도 내 마음의 한 가닥은 어둠을 뚫고 계속 질문해 볼 것이다.
'나는 누구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