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해를 맞아 머리를 깎기로 했다. 아니다. 사실 그냥 머리가 너무 덥수룩해져 보기 싫어서 갔다. 미용실을 다녀오니 뭔가 달라진 느낌이 들었다. 새해맞이를 준비했다는 느낌? 그래서 나도 모르게 새해맞이를 위해 머리를 깎기로 했다는 앞뒤 바뀐 생각이 들었나 보다. 아무튼 오늘은 할 일이 머리 깎기, 집안 청소, 빨래, 송년 모임 참석 이 정도밖에 없다. 오전 내내 여유를 즐기며 뒹굴다가 책을 봤는데 어느 순간 잠들었다. 역시 잠드는 데는 책 읽기만 한 게 없지 말입니다. 꿀 같은 낮잠에서 깨니 벌써 오후 2시다. 뭔가 다급해짐을 느낀 나는 후다닥 일어나 씻고 옷을 입었다. 세탁기에 빨래들을 집어던지고 세탁 버튼을 누른 다음 미용실로 향한다.
횡단보도 2개를 건너면 5분 안에 도착하는 우리 동네 미용실은 가깝고도 먼 곳이다. 이렇게 가까운데 왜 이렇게 한번 가는 게 힘든 걸까? 패션에 별 관심 없는 나로서는 한 달에 한 번 미용실 가는 것도 곤욕이다. 게다가 최근에는 너무 바빠 꽤 오랜만에 갔는데 원장님께서 지난 기록을 보시더니 정확히 2달 만이네요 하면서 놀라시는 게 아닌가? 요즘 좀 바빠서라고 변명해보며 의자에 앉았지만 2달 동안 털 안 깎은 다크 서클 짙은 짐승이 저기 거울에 보인다. 절로 썩은 미소가 나온다.
내가 가는 미용실은 동네 미용실이지만 생긴 지 몇 년 안 되었기에 나름 시스템이 갖춰져 있다. 들어가면 어떤 선생님을 찾으시나요? 하고 물어보는 그런 곳이다. 지난번에 들렸을 때 마음에 들게 깎아주신 선생님의 명함을 꺼내 이 선생님이요 했더니 물어본 사람이 자기가 그 선생님이라 했다. 이런 난감할 데가. 서로 머쓱하게 웃고는 머리 깎기를 시작한다. 머리만 남기고 몸을 가리는 망토를 두르고 사각사각 머리를 깎는다. 존경해 마지않는 선생님의 가위는 능숙한 솜씨로 앞, 뒤, 좌, 우, 위를 종횡무진하며 달린다. 가위가 지나가면 머리가 우수수 떨어진다. 선생님의 예술 같은 가위질을 옆에서 지켜보는 사람이 있었다. 고등학교를 다니다 방금 실습을 나온 것 같은 그분은 떨어진 머리카락을 쓸고 필요한 도구를 선생님께 가져다주었다. 드디어 모든 작업이 끝났다. 이제 머리를 감을 차례다. 나는 이 순간이 가장 어색하다. 누군가 나의 머리를 감겨준다는 게 너무 황송해서. 도저히 적응하기 힘든 황송함이다.
아무튼 난 샴푸실로 이동했고 옆에서 도와주시던 분이 오셔서 머리 감기를 시작했다. 내가 할 일은 그냥 편하게 누워 있는 것뿐이다. 서툰 손놀림으로 머리를 감겨주는 그분은 그 어느 때보다 오래, 꼼꼼히 정성을 다해 머리를 감겨주었다. 나중에는 너무 힘들어 숨을 몰아쉬기도 했다. 황송함이 10배로 증가했다. 나는 그 짧은 순간 생뚱맞게도 이런 생각이 들었다. 사람의 노동에 정말 가격을 매길 수 있는 걸까? 우린 누군가 만들어낸 물건을 사거나 서비스를 받을 때 그에 합당한 돈을 낸다. 하지만 돈만 내면 정말 그걸로 그 사람의 정성에 완벽히 보답한 것이 되는가? 가끔 돈 주기도 아깝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엉망인 물건이나 끔찍한 서비스도 있다. 하지만 돈 내는데 이 정도는 당연하지 라는 생각이 정말 당연한 걸까?
생각해보면 머리 깎거나 감겨주는 일이 아니라도 가격을 매길 수 없을 것 같은 일들은 수없이 많다. 특히 목숨을 걸고 고층 건물의 유리창을 닦거나 건설 현장에서 또는 좁디좁은 어선에서 몸이 부서져라 일하는 사람들의 노동을 돈으로 환산한다는 게 정당한 일인가 싶다. 위험하니까 돈 좀 더 줄게라는 식의 어이없는 계산과 뻔뻔함은 관두자. 그럼, 어쩌라는 건데?라고 묻는다면 내가 머리에 빨간 띠를 두르고 자본주의 타파라 외치고 싶다는 건 아니라고 먼저 말하고 싶다. 자본주의는 타파하기에는 너무 편리한 것이 되었기에 내가 이 자리에서 피를 토한다 해도 상관없이 잘 먹고 잘 살 것이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우리의 노동을 쳐다보는 관점을 바꾸자는 이야기다. 노동의 대가로 돈만 지불하면 그걸로 끝이라는 생각은 슬프다. 사람이 있어 그 사람의 노동으로 우린 잘 먹고 잘 살고 있음을 기억하자. 돈을 낸다는 건 약속의 이행일 뿐이다.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돈을 빌리면 이자를 내듯 사람의 노동으로 편리함을 누리면 돈에 마음을 얹어야 한다. 고맙다, 감사하다는 말 한마디가 당연한 것이 되어 서로 우리의 인간다움을 발견하며 살면 어떨까 싶다. 따뜻한 마음으로 그들의 정성에 답하는 세상이길 바란다.
머리 감기가 끝나고 고맙다는 말을 전했다. 더불어 나를 짐승에서 사람 꼴로 탈바꿈시켜준 선생님께도 감사의 인사를 했다. 오랜 시간 덮어썼던 모자를 벗은 것 같은 시원함을 느끼며 집으로 돌아왔다. 오늘 내가 느낀 황송함과 미안함 그리고 고마움을 글로 남기고 싶어 이러고 있다. 세상에 당연한 것은 없다. 당연한 게 정말 당연해서 더 이상 논할 만한 작은 틈도 없다면 뭣 하러 고맙다, 감사하다 말하겠는가? 우린 본능적으로 당연해 보이는 것들의 당연하지 않음을 눈치채고 있는 것이다. 당연해 보이는 부모님의 헌신도 당연한 것 같은 친구의 도움도 사실은 아주 특별하고도 소중한 마음의 증거다. 어리석게 나에게 주어진 모든 걸 당연하다 여기고 사는 사람은 세상이 지루하다. 그들은 팬더처럼 다크서클 짙은 눈으로 우리 안을 뒹군다. 별 볼 일 없는 당연함이 가득한 곳에 서서 더 짜릿한 것들을 동경하며 산다.
특별하고도 고운 마음은 결코 당연하지 않은 지금 이 순간을 발견하는데서 시작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