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조한 사람

by 서효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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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보면 난 참 이상하게 살았던 것 같다. 대학을 졸업할 때쯤 안정적으로 살고 싶어 취직을 했는데, 그렇게 취직 한 곳은 늘 경영난에 시달렸다. 망할 듯 망하지 않았고, 흥할 듯 흥하지 않았다. 안정적으로(?) 월급은 나왔지만 여행이라는 불안한 활동이 주된 일이었다. 매주 다이내믹하게 살았고, 별의별 일들을 다 겪었다. 한데 그것조차 반복이 되니 안정적 일상이 되더라. 결국 난 안정적으로 살고 싶다는 목표를 이룬 걸까?


직장 다니는 동안 글 쓰고 싶어 글을 썼고, 그걸로 책까지 냈지만, 엉뚱하게도 이런 생각이 들었다.


'근데, 이게 아닌 거 같아.'


핫바 사달래서 힘들게 사줬더니 이게 아니라며 투정 부리는 애처럼 입이 삐쭉 튀어나왔다. 그 녀석에 대해 오랜 시간 고민해본 결과 글을 쓰고 싶다는 건 맞는데 그 글이, 그 글이 아니었다. 그러니까 무슨 이야기냐면 쓰기 편하고, 남들이 좋아할 만한 글이 아니라 내가 쓰고 싶은 글, 나에게 좋은 글이 필요했다는 이야기. 그래서 그게 뭐냐고 더 묻는다면 '음.. 예를 들어 소설 같은 거?'라고 대답할 것 같다. '근데, 그게 확실치 않아'라는 속 터지는 말도 뒤따라 오지만. 아무튼 그렇다는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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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소설 쓰면 되지!'라고 누가 이야기해줘서 또 그렇게 해보려 했다. 소설책 몇 권을 읽고, 작가들의 비법이 담긴 듯한 책도 사서 주르륵 읽었다. '이제 쓰기만 하면?' 되는데, 당최 그것이 되지 않는다. 소설 따위 그냥 쓰면 되지 뭐 그렇게 자꾸 재냐며 욕을 해도 어쩔 수가 없다. 왜냐면 '안 되는 걸 어떡해!' 하고 속에서 자꾸 짜증 내는 사람이 있다. 그 사람이 지금 키보드를 두드리고 있다. 문제는 그 사람 없으면 글이 써지지 않는다. 뭐라도.


이렇게 까다로운 사람에게도 여행은 참 다정한 것이었다. 여행은 굳이 그것이 무슨 글이라고 구분하지 않아도 괜찮다고 말했다. 그저 느낌대로 쓰고, 쓴 것으로 다시 여행하면 된다고 했다. 쓰는 것처럼 살라고 했다. '아무래도 괜찮아'라고 말해 준 여행 덕분에 난 그런대로 살았다. 이것도 쓰고 저것도 쓰며. 여기도 기웃거리고, 저기도 기웃거리며. 때로는 미친 것처럼, 때로는 지난한 시간을 거쳐. 어쨌거나 쓰면서, 조금씩 채워가며, 살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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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여행이 힘든 시기를 거치고, 안정적이라 믿었던 삶에 금이 가면서 이제는 그렇게 살기 어려움을 깨닫게 되었다. 언제나 변화는 사람을 불안하게 만든다. 불안에 스스로를 가둔다. 풍경이 바뀌지 않으면 눈 앞에 문제들은 더 커 보인다. 언제까지고 그렇게 살 것 같고, 내내 그런 마음일 것 같은 이상한 믿음이 생긴다.


그냥, 초조하다고 말하고 싶었다. 초조하다고 말하고 나면 조금 덜 초조해지는 걸 아니까. 영원히 초조하지 않을 수 있다면 그렇게도 살아보고 싶지만, 그게 안 된다면 그냥 초조함이 몸을 통과하도록 내버려 둘 것이다.


이렇게 비 오는 날이면, 이것도 뭐 그리 나쁜 것 같진 않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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