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마음 쓰다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서효봉 Mar 31. 2016

제한 시간 30분

생활이 내게 남긴 것 10

글을 쓴다.

오늘은 뭘 써야 할지 몰라 오랜 시간 방황했다.

시간을 낭비하고 이 일 저 일을 찔끔거리다 키보드 앞에 앉았다.

글을 쓸 시간이 없어 일상에 허우적댈 때는

'마음 놓고 글 쓸 시간이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고 생각했다.

막상 글 쓸 시간이 주어졌는데 시간이 충분한데

난 엉뚱한 일을 하고 엉뚱한 생각을 하고 엉뚱한 삶을 산다.

그저 '아마도 그렇지 않을까?' 하고 막연하게 생각했던 것들은 현실과 많이 다르다.


세상의 수많은 책에 수많은 현자들의 수많은 지식과 지혜가 깃들어 있지만

그 모든 걸 읽고 알게 되어도 내가 변하지 않으면 아무짝에도 쓸모 없는 게 된다.

난 통제가 안 된다. 생각은 이 길로 가지만 행동은 저 길로 간다.

생각대로 독하게 행동하면 지쳐버리고, 생각보다 자유롭게 놓아지면 분열한다.

철학자 세네카는 말했다.


"사람들은 언제나 시간이 없다고 불평하면서 행동은 시간영원한 것처럼 한다."


이 글은 정확히 제한시간 30분 안에 끝내야 하는 글이다.

지금 현재 14분이 지났다. 난 시간에 쫓기고 있다.

뭘 써야 할지 몰라 방황하다 갑자기 생긴 제한시간에 난 채찍질 당하고 있다.


제한시간 30분.

이 시간은 생각보다 짧다.

드라마 한편도 제대로 다 못 보는 시간.

책도 한권 제대로 다 못 보는 시간.

밥도 마음 편하게 먹기는 힘든 시간.

잠자기도 힘들고 운동하기에도 애매한 시간.

설거지나 청소를 열심히 하면 그 안에 끝낼 수 있지 않을까?


이제 10분이 남았다.

난 나에게 주어진 30분도 제대로 쓰지 못해 안절부절한다.

30분 동안 똥줄 타는 마음으로 키보드를 두드려대고 있지만

뭘 써야 하는지, 얼마나 쓸 수 있을지 확신도 없고 자신감도 없다.

내 인생의 30분은 이렇게 끝을 향해 내달리고 있다.


우리의 인생.

지구가 태어나고 생명이 자라온 그 긴 시간에 비한다면

우리의 인생은 정말 짧다.

있었는지 없었는지도 모를 정도로 존재감 없이 사라져가는 게 인생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린 다들 시간이 영원한 것처럼 살아간다.

오늘 참고 내일 참고 모레 참아 다음 해, 그 다음 해에 안녕과 평화를 보장받고 싶어한다.

짧다면 너무 짧은 우리 인생을 긴 호흡으로 대하기 시작할 때 우린 사소한 것에 목숨 건다.

제한시간을 느끼지 못하는 우리의 어리석음이 온갖 집착, 욕심으로 다시 태어난다.


제한시간 2분.

이제 마무리할 시간이다.

시간이 끝나면 난 더 이상 글을 쓸 수 없다.

마지막 유언을 생각해본다.

뭔가 멋진 말이 떠오르지 않는다.

시간은 흘러만 가는데 아직도 머뭇거리기만 한다.

난 유언을 남긴다.


"이렇게 끝이다. 그 이상은 없다. 그게 우리 삶이니 더는 괴롭히지도 화내지도 울지도 말자.

 모자람 없이 끝까지 웃고 떠들고 즐거워해도 마지막엔 결국 모자란 듯 느껴지는게 生이니."

 

매거진의 이전글 힘에 대한 착각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