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이틀 면도하는 건 아니지만 새삼스러운 사실을 하나 알게 되었다. 내가 면도를 할 때 너무 힘을 줘서 한다는 것. 깔끔하게 해야 된다는 생각에 힘을 주니 상처도 많이 나고 면도 자체가 힘든 일이 되었다. 오늘은 힘 좀 빼고 면도를 해봤는데 오히려 면도가 더 잘 된다. 상처 하나 없이 깔끔하게 면도할 수 있었다. 힘도 덜 들었다. 물론 매일 면도 안 해도 되는 축복 받은 이에겐 해당 사항 없는 이야기 일지도. 이번엔 세수 할 때 힘을 빼고 해 봤는데. 오호라. 세수가 이렇게 수월할 수가. 머리 감는 것도 힘을 빼고 하니 훨씬 덜 힘들었다. 이 닦는 것도 그렇다. 칫솔질을 할 때 힘을 절반 정도로 줄이니 이렇게 편할 수가. 이 닦기의 새로운 경지에 이른 것 같은 기분이었다. 오히려 힘을 빼고 닦으니 더 구석구석 잘 닦을 수 있었다. 왜 무협지 같은 걸 보면 고수들은 전혀 힘 들이지 않고 싸우지 않는가? 높은 경지에 오르면 힘을 빼고도 상대를 제압할 수 있다.
물론 지금까지 내가 이상했던 걸 수도 있다. 힘줘서 면도하고 세수하고 머리 감고 이 닦는 사람이 나 하나뿐이라면. 그런데 내가 하고 싶은 말은 힘을 빼서 면도 하자. 힘을 빼서 세수하고 머리 감고 이 닦자. 뭐 이런 생활 광고 같은 구호가 아니다. 지금까지 나는 오랜 시간을 힘 안 줘도 될 일에 괜히 힘주고 살았다는 거다. 면도, 세수, 머리 감기, 이 닦기는 매일 하는 일이니 무의식적으로 습관대로 하는 일. 하던 대로 하는 습관이 특별한 일이 없다면 거의 죽을 때까지 가리라. 만약 내가 오늘 떠올린 이 사소한 생각을 실행해보지 않고 그냥 흘려버렸다면 난 죽을 때까지 힘주며 씻어대고 계속 분노의 칫솔질을 하며 살았으리라. 힘을 조금 빼면 새로운 것들이 보인다. 그렇게 힘들이지 않아도 될 만한 일이라는 걸 깨닫고 마음을 편하게 가질 수 있다. 나는 힘 덜 든다는 사실보다 마음이 편해졌다는 게 좋았다. 너무 힘주고 살면 말 그대로 힘들다. 조금 힘 빼고 살아도 괜찮다. 아니 오히려 힘을 빼야 새로운 경지에 이를 수 있다. 108배를 하다보면 저절로 힘이 빠진다. 야구, 축구, 농구, 골프 같은 공으로 하는 스포츠들을 보면 해설자들이 하나 같이 힘을 빼라고 말한다. 때로는 그래야만 자연스러운 동작이 나온다.
사는 게 힘들다고 느껴질 때. 나의 일상과 머릿속 생각들을 하나씩 관찰해보자. 힘주지 않아도 될 일에 힘을 주고, 화내지 않아도 될 일에 화를 내고, 눈치 보지 않아도 될 일에 눈치 본다. 욕심이라 생각하면서도 욕심내는 그 모습. 가만히 관찰해보면 세상에서 내가 제일 어리석다. 자존감 낮은 사람이라 뭐라 해도 어쩔 수 없다. 내가 나를 어찌하지도 못하는데 무엇을 내 마음대로 하리오. 그러니 마음대로 하려고 너무 용쓰지 말자. 굳이 힘을 주려거든 그 마음 다스리는데 힘을 쓰자. 그것도 할 수 있는데 까지만. 한번 더 말하지만 힘들다는 말은 너무 힘을 주니까 힘들다는 말이다.
오늘 밤, 해야 할 것들을 다 내려놓고, 살아 있다는 그 기적 같은 사실에만 집중해보았다. 지난 시간들을 생각해보았다. 어릴 적 설악산에서 미끄러져 떨어질 뻔 했던 일. 바다에서 발이 닿지 않는 깊은 곳으로 들어가 빠질 뻔 했던 일. 자전거 여행 하다 넘어져 차에 치일 뻔 했던 일. 운전하다 아찔한 순간을 경험했던 일. 그 모든 일들이 지금은 그저 지난 일이고 술자리에서 안주 삼아 꺼내놓는 이야기지만 난 정말 죽을 뻔 했다. 죽을 고비를 넘기며 살았고 언제 죽을지 모르는데도 지금까지 살아냈다. 이건 정말 기적이다. 누구 말대로 살아 있다는 게 기적이다. 우리가 겪는 모든 괴로움은 이 기적적인 사실을 망각하는데서 비롯되는 게 아닐까. 기적 속에서도 더 잘 살아보겠다고 자꾸 괴로워하니 어리석은 중생이라는 말을 듣는 게 아닌가. 법정스님의 <오두막 편지>에는 이런 내용이 나온다.
절제된 아름다움은 우리를 사람답게 만든다.
불필요한 것을 다 덜어내고 나서
최소한의 꼭 있어야 될 것만으로 이루어진
본질적인 단순 간소한 삶은 아름답다.
그것은 한 송이 꽃으로 피어난 모습이기도 하다.
살다보면 힘이 들어가고 욕심이 난다. 살아 있으니 잘 살고 싶고 더 나은 인간이고 싶다. 그 마음이 우리를 움직이고 세계를 움직인다. 하지만 살아 있음을 증명하고픈 그 몸부림이 때로는 강박이 되어 우릴 힘들게 한다. 강박이 습관이 되면 삶이 괴롭다. 지금 힘들고 괴롭다면 강박을 똑바로 쳐다보라. 사전을 찾아보면 강박은 ‘어떤 생각이나 감정에 사로 잡혀 심리적으로 압박을 느낀다.’는 뜻이다. 사로잡힌 것들을 해방시키는 방법은 의외로 단순할지도 모른다. 몸과 마음에 힘을 빼자. 가벼워진다. 어려운 것, 복잡한 것들이 떨어져 나가고 쉬운 것, 단순한 것들이 눈에 보인다. 그게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고 믿고 평생 힘주며 살 권리도 있다. 무엇을 선택하든 그게 삶이다. 하지만 선택할 수 있다면 자기 의지를 가지자. 일상의 작은 변화가 성장이다. 변화와 성장은 나에게서 시작되고 나에게서 끝을 맺는다. 이 점을 궁상맞게 기록으로 남기니 면도하고 세수하고 머리 감고 이 닦는 게 힘든 이들을 널리 이롭게 하소서.